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아내와 나는 매주 1만원어치씩 로또를 산다.
그간의 전과를 간단히 말하자면 5만원 짜리가 된 게 6번쯤 되고
5천원은 20,30번 정도 됐다.
전체 투자한 금액에 비하면 회수율이 낮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뭐, 괜찮은 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아내가 당첨되는 걸 보면 로또도 미모를 타는 게 아닌가 싶다)
천안에 와서도 계속 로또를 사는데,
지지난주 로또 1등이 천안에서 나왔다.
1등이 혼자여서 130억쯤 되는 당첨금을 혼자 탔는데
그것도 우리 부부가 주말마다 차를 세워놓고 로또를 사던 바로 그곳에서 산 거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얘기를 해주는데
나를 태우고 로또 가게를 지나다가
"이번에 로또 1등이 저기서 나온 거 아세요?
22살이고 삼성전자 다니던 여자래요."라고 하는 거다.
과연 그 가게에는 '로또 1등 132억 배출'이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우리랑 두명이 같이 되서 60억씩 나누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 그녀의 인생이 걱정이 된다.
22살은 세금을 떼고 80억 정도 되는 돈을 감당하긴 버거운 나이다.
게다가 택시 기사가 알 정도라면,
그리고 서울에 사는 내 친구도 그녀의 스토리를 알 정도라면
국내에서 웬만한 사람은 다 당첨자가 누군지 안다는 뜻이다.
기부를 원하는 온갖 단체들은 둘째치고
당장 형제자매간에, 부모자식간에, 그리고 친척들간에 얼마나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렇게 저렇게 나누고 나면, 그리고 순간의 풍요를 즐기다보면
80억도 5년 안에 다 없어지고 남은 것은 허무함과 앙금 뿐이지 않을까.
게다가 그녀가 자신이 로또임을 들킨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무단결근을 했고, 왜 안나오냐고 묻는 전화에 퇴직을 하겠다고 했으며,
퇴직금이 300만원쯤 나온다고 했더니 회식이나 하라고 했다나.
그래서 사람들이 알았단다. 로또라는 걸.
그녀의 경솔함으로 보건대 그 80억이 그녀의 삶에 그다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80억 앞에서 300만원이 우스워 보일 수 있다.
어렵게 얻은 삼성전자라는 직장도 하찮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겨우 22살이고, 앞으로 많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한번 돈맛을 보고 난 뒤 남은 삶은 어떻게 할 참일까.
로또로 불행해진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 부부가 로또가 됐다면 어땠을까?
그럴 때에 대비해 우리 부부는 매주 두세번씩
로또 1등에 대비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해오고 있다.
일단 직장은 절대 그만두면 안된다는 것, 그전보다 연구를 더 열심히 한다,
휴대전화는 바꾼다, 목돈으로 드리는 것보다 조금씩 자주 도와드린다 등등
거의 지옥훈련을 한 결과 모든 과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외울 정도가 됐다.
그러니 로또의 신이 있다면 22살의 그녀보다 우리 부부에게 당첨이 되도록 했어야 했다.
로또의 신이 누군가의 삶을 망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신은 그다지 마음이 곱지 않은 것 같고,
준비된 1등 당첨자인 우리 부부 대신 아무것도 모르는 22살의 어린 여성에게
감당하지 못할 액수의 돈을 주는 걸 택했다.
흥, 나쁜 신 같으니라고!
다음주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 내가 줄줄이 썼던 것들이 과연 진심어린 걱정일까 아니면 질투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