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는 연간 180일 이하로 술마시는 날을 줄이는 거였다. 오늘이 12월 10일인데 내가 마신 횟수는 겨우 166번째, 남은 21일 중 14번 이하로만 마시면 목표달성은 가능하다. 내일 술약속이 있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3연전이 기다리지만, 설마 14번을 마실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난 4연전을 치뤘다. 4연전을 치루면서 느낀 건 내가 요즘 술이 무진장 세졌다는 거다. 12월이면 거듭되는 술자리에 지쳐 조금만 마셔도 맛이 가던 게 상례였는데, 올해는 어찌된 게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를 않는다. 수요일날 새벽 두시가 넘도록 끄덕도 없었던 걸 보면 열심히 마시면 주량은 늘어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만 뿌듯해하고 지난 이틀간의 술자리를 정리해 본다.


횟수: 165회(이러니까 무슨 대회에 참여한 듯^^)

일시: 12월 8일(수)

누구와: 이렇게 저렇게 아는 친구들과

마신 양: 최고로 많이, 내게는 치사량


결국 그날 난 단란한 곳에 갔다. 난 반대를 했지만, 목소리 큰 내 친구는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한다. 내 대안이야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맥주라도 마시는 것이지만 그가 그런 깜찍한 대안을 받아들일 턱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는 마음에서 “니가 원하는대로 하자”고 했고, 그는 언제나처럼 그 단란한 곳에 갔다. 언제나처럼 난 내 파트너와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라는 친구의 강요에 못이겨 딱 한곡-정재욱인가 하는 가수가 부른 <잘가요>-을 불렀다. 그 ‘잘가요’가 의미심장한 것이 단란한 생활을 청산하고자 하는 내 마음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 당연한 일이지만 내 여친은 내가 그런 곳에 가는 걸 아주 싫어하고, 나 역시 그런 곳에 가는 게-비록 끌려간다고 해도-그간 내가 주장해왔던 가치들에 위배되는지라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해 왔다. 그래서... 엊그제를 마지막으로 단란한 곳에 가지 않으련다. 여친과도 굳게 약속을 했고, 이제 바르게 사는 일만 남았다. 참고로 오늘 아침에 메일이 왔는데, 나온 비용을 사람 수로 나눈 돈을 내란다. 내가 내야 할 돈은 무려 xx만원....


횟수: 166회

일시: 12월 9일(목)

누구와: 대학 동창들과

마신 양: 그래도 기본은 했을걸


난데없이 대학 동기회의 송년모임 준비위원장이 되어 버렸다. 몇초간 고민하다 알라딘 코스, 즉 지난 11월에 알라딘서 번개를 했던 그 코스로 애들을 유도했다. 등심이 맛있으면서 싼 ‘현대정육식당’에서 1차를, 그리고 연말연시에도 늘 사람이 없는 맥주집에서 2차를 가졌다. 열심히 뛴 결과 19명이나 왔으니 흥행은 성공이지만, 1차가 영 불만스러웠다.


애당초 15명 자리를 예약했는데 우리에게 배당된 것은 테이블 3개. 그나마도 방 한구석에 몰아넣어 넓힐 건덕지도 없었다. 19명이 그 좁은 방에 구름같이 모여 있는 꼴이란. 게다가 그날따라-평소에도 그렇지만-사람이 너무, 너무 많았다. 한 세 번쯤 시키면 겨우 갖다주는 시스템이 되버려, 먹는 걸 포기하고 이리저리 뛰었다. 뭐 필요한 게 있으면 다 내가 가져왔고, 심지어 판도 내가 갈뻔했다. 그날 먹은 고기는 딱 한점, 나중에 배고파서 찌개에다 공기밥 먹었다...


좀 황당했던 일 하나. 11월에 갔을 때 등심 1인분은 15000원이었는데, 엊그제 가니까 2만5천원이다. 난 내가 잘못 본 줄 알고 다른 메뉴판을 찾았는데, 모든 메뉴판의 ‘1’자가 ‘2’로 변해 있었다. 한달 사이에 만원을 올리는 게 과연 정상일까. 난 종업원에게 확인차 물었다. 어떻게 가격이 그리도 갑자기 뛸 수가 있냐고. 그녀가 이렇게 대답한다. “저희 등심이 맛있어요” 이런 걸 보고 옛 선인들은 동문서답이라고 불렀다. 누가 맛이 없다고 했나. 맛이 있는데 싸던 그 집은 이제 맛은 있지만 가격은 다른 데와 차이가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등심이 동이 나버려, 등심의 반 가격인 안창살을 먹었고, 그 바람에 큰 돈이 안들었다.


내가 회비관리를 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남아서 안주를 펑펑 시켰다. 그러고도 돈이 남아 총무에게 줬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긴 한데, 너무 많이 오니까 끼리끼리 얘기를 해야 했고, 한마디도 못해본 친구도 여럿 되는 듯. 어쨌든 흥행에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4연전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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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2-1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새 만원이라니! 연말이라서 그런걸까요?

marine 2004-12-1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글은 참 재밌습니다 진솔하게 묻어나는 삶의 유머들!! 플라시보님과 막상막하입니다^^

노부후사 2004-12-1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그럼요. 작년에는 술 마시는 날을 몇 회까지 치르신 거에요? ^^

작은위로 2004-12-1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어제 저도 술자리를 가졌어요! 시험은 두과목 남았지만, 주중에 끝나므로 학교 사람들과 술을 같이 할 시간이 없어서 어제 셤 끝나고 마신거죠.

처음으로 막걸리를 마셨는데요. 지금도 힘겨워요~ 흑, 뒤끝이 안좋군요...

마시고선 다음날 괜찮으셨나요? 흐흐. ^^;;

참, 그런데요... 이거, 내가 본 영화들 카테고리에 있네요??

플라시보 2004-12-1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사이에 가격이 만원이나 오르다니. 살인적이군요. 그나저나 님. 정말 단란한 곳에 이제는 안가실꺼죠? 님이 즐기지도 않으시는데 끌려가는 스토리가 너무 가슴아파요.

마태우스 2004-12-1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저도 가슴이 너무 아파요. 흑흑. 그런 음침한 곳 말고도 얼마든지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걸 어제 확인하고나니 더더욱 속상해요.

작은위로님/막걸리는 원래 뒤끝이 안좋습니다. 전 원래 술 마시고 담날 지장이 없는 특이한 인간인데요, 막걸리는 다음날 오전까지 가더군요.글구 님의 충고에 따라 카테고리를 옮겼습니다.

에피님/좋은 질문이십니다. 사실 98년까지 술일기를 쓰다가 술일기가 술을 덜마시는 게 아니라 기록에 도전하게 만드는, 그러니까 새 기록을 위해 더 술을 마시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닫고 한동안 중단했었어요. 올해부터 다시 집계했는데요, 아마도 200번 내외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마태우스 2004-12-1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어머 그러심 안되죠. 플라시보님 삐져요^^ 어쨌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 하이드님/그럼..연초에 다시 내려가기를 기대해야겠습니다^^

maverick 2004-12-1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 사이에 만원이 오르고도 장사가 된단 말입니까. 요즘 소비자들이 정말 까다로워져서 일이천원만 이유없이 올라도 외면받던데... 그 집 사장의 끝간데 모르는 자신감이 어처구니가 없군요 당장 마태님만해도 다신 그집 안 가실거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