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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배심원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대충 헤아려보니 이번 책이 내가 읽은 존 그리샴의 열두번째 소설이다. 이쯤되면 그리샴 전문가라고 자위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내가 보기에 그리샴의 소설은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내가 그리샴을 처음 만난 건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The firm>였다. 나름의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책은 결말이 너무 시시했고, 구성의 짜임새 같은 것도 부족했다. ‘대통령’ 어쩌고 하는 책을 쓴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소설은 점점 완성도가 높아져, <레인 메이커> 이후의 작품들은 뭐라고 흠잡을 데가 없다. 참고로 내가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시선이 언제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후의 배심원> 역시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그리샴의 따뜻한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적어도 내게는, 그리샴의 이전 작품들보다 재미가 덜했다. 하나의 큰 사건을 그리는 게 아니라 23세의 젊은이가 지역 언론사를 인수해서 겪게 되는 일들-살인 사건이 하나 등장하긴 하지만-을 묘사한 것이라서 다소 지루한 감을 줬다. 이 책을 통해 그리샴은 미국의 잘못된 법 체계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증인도 있는 명백한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비호하고, 호텔같은 감옥에 보내주며, 보석을 시켜주려고 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가석방을 시키려 드는 그런 행태를. 살인까지는 저지르지 않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이 보석이나 형집행정지, 또는 사면을 통해 세상으로 나오는 일들은 우리도 숱하게 봐오던 터인지라,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의뢰인이 살인자임을 알면서도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를 보면서, 법이라는 게 뭔지 한번쯤 회의를 느낄 만하다. 부자들만을 위한 법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그리샴은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 언론이 ‘최후의 배심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한데, 언론이 정당보다 더 정치적인 우리 언론의 현실을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우리 언론은 과연 소외된 자들에게 얼마나 눈길을 주고 있을까.
이 책은 또한 지역 언론사가 생존하는 법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포드 카운티의 유일한 주간지인 타임스 지는 그 지역 사람들의 사망기사를 비롯해 자녀 일곱명을 교수로 키운 흑인 여성을 1면에 소개하는 등 지역 사람이면 누구나 보고 싶게끔 신문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지역신문들은 남해신문과 옥천신문 등 몇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어렵다. 신문을 독자에게 읽히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해 자기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신문을 만들어서 그런 것도 이유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의 눈이 서울로만 향해 있다는 거다. 자기 지역에서 난 교통사고보다 서울에서 벌어진 4중추돌을 더 크게 보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 않을까? 물론 서울로만 모든 게 집중된 기형적인 구조와, 서울서 일어난 일들을 더 알고 싶어하는 주민들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구조 탓만 할 수는 없는 일,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 냄으로써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신문을 만드는 것은 지역 신문사의 몫이다.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한번쯤 새겨들어야 할 장호순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