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위해 영등포역에 갈 때마다 난 버스를 탄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2년쯤 전에는 당연하게도 지하철을 탔다. 하지만 2년 전의 어느날 우연히 버스를 한번 타봤는데, 그 후부터는 지하철을 도저히 탈 수 없게 되었고, 계속 버스만 탄다. 지하철은 두가지 면에서 내게 불편했다. 우선 역이 집에서 멀다. 최소한 5분-맘먹고 달리면 3분-은 걸어야 하지만, 버스 정류장은 집 바로 앞에 있다. 더 큰 이유로 지하철은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 신도림에서 갈아타는데, 그게 영 귀찮다. 지하철은 다섯정거를 가지만 이것저것 합쳐서 20분이 넘게 걸리는 반면 버스는 훨씬 여러번 서지만 그보다 덜 걸린다. 한가지 더 있다. 지하철에서는 여간해서 앉아 가기 힘들지만, 버스는 대개 텅텅 빈다. 나도 이제 앉는 게 좋은 나이여셔 빈 좌석의 유혹을 마냥 뿌리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버스가 늘 좋은 건 아니다. 버스의 결정적인 약점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 운이 좋으면 바로 탈 수 있지만, 5분 정도는 기다리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십분이 넘게 기다리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간 슬픈 사연도 있다. 지하철이야 어디 그런가. 출근 시간대엔 3분마다 한 대가 오니, 지하철을 타면 늦을 염려는 없다.
출근할 때 역에 가는 것을 제외하면 난 버스를 잘 타지 않는다. 버스 노선도 잘 모르고, 약속 때문에 다른 곳에 갈 때 내가 추구하는 건 편안함보다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이 있어 동대문에 갈 때의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에서 갈아타면 되건만, 다리도 아프고 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전용이니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하지만 버스는 여간해서 오지 않았다. 십분을 기다리니 이미 투자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지하철을 더더욱 탈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올거야!’라며 십분을 더 기다린 끝에 버스가 왔다. 하지만 버스 전용차선은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고, 책을 보던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어온 시원한 바람에 난 잠을 깼다. 버스가 서있고, 앞문 뒷문이 다 열려 있다. 기사 아저씨가 안보인다. 왠일일까 싶었는데, 보니까 기사 아저씨는 다른 버스 아저씨랑 열나게 싸우고 있다. 우리 승객들은 다들 우리 기사 아저씨를 응원했고, 다른 버스 아저씨한테 “당신이 나쁘구만!” “저거저거 아주 악질이야!” “당신 때문에 못가고 있잖아!”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같은 버스에 탄 사람이 공동운명체라는 걸 난 그때 알았다. 의기 양양해진 우리 아저씨, 문가에 앉은 날 가리키며 “누가 잘못했는지 한번 물어봐요!”라고 그 사람한테 말한다. 놀란 난 손을 내저었고..
결국 우리는 그 다음에 도착한 같은 번호의 버스에 옮겨탔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버스는 콩나물 시루였다. 내가 동대문에 도착한 시간은 집에서 떠난지 55분 후, 지하철을 탄 것에 비하면 20분 가까이 늦은 시간이다. 그날 이후 난 버스전용이고 뭐고 안믿기로 했다. 시내에 갈 땐, 역시 믿을 건 지하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