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학교 - 한 사회학자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성찰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땅의 한국인이 다 그렇겠지만, 교육은 내 관심분야다. 하지만 교육에 관련된 책이라고 다 사는 건 아니다. 내가 김덕영이 쓴 <위장된 학교>를 산 이유는 그 책이 내가 선호하는 출판사인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는 도끼도 가끔 발등을 찍는지라, 난 이 책을 매우 재미없게 읽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차분히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지레 흥분해 장광설을 늘어놓다 끝을 내고 만다. 이 책이 갖는 많은 단점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같은 말의 반복이다. 대표적인 것만 예를 들어보자.


1) “학문, 즉 유교의 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은 시.서.화 또는 악과 같이 전인격적인 삶과 행위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유교는 보편인을 추구한다(105쪽)

-사실 학문은 고전의 공부 이이(오자다)에도 시.서.화 또는 악과 같이 전인격적인 삶과 행위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유교는 보편인을 추구한다(119쪽)

-사실 학문은 고전 공부 이이에도(역시 오자) 시.서.화 또는 악과 같이 전인격적인 삶과 행위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유교는 보편인을 추구한다(134쪽)

--> 지금 개그하나? 아무튼 이런 정도의 반복은 이 책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2) “사실 우리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아동기나 청소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개인들이 가능하면 빨리...성인의 세계로 편입되어 노동과 생산에 종사하는 것이었다”(88쪽)

-사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아동기나 청소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개인들이 가능하면 빨리...성인의 세계로 편입되어서(‘서’가 있다는 게 틀리긴 하다) 노동과 생산에 종사하는 것이었다‘(199쪽)--> 멀리 띄어놓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3) “한국 사회에서는...박사를 만물박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100쪽)

-많은 한국인들은 박사에 대해 박학다식한 만물박사라는 표상을 지니고 있다(103쪽)

--> 문장이 조금 다르긴 해도, 뜻은 매우 비슷하지 않는가. 그 다음에 나오는 부연 설명 역시 대동소이하다.


4) “서울대가 세계 100위 대학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요즈음은 꽤 여러 대학들이 세계 100위 대학 운운하고 있는 실정”(63쪽)

-서울대가 세계 100대 대학이 되느냐 아니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더니 요즈음은 한국의 이름 있다는 대학들이 조만간 세계 100위권 진입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기도 한다(76쪽)

--> ‘이야기’와 ‘설전을 벌이다’는 어떻게 다른 걸까.


5) “아무튼 우리 한국인들은 매사에 극단적이고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특성이 있다...한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이퇴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세종대왕...(51쪽)”

-한구인의 일상적 대화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너무 흔하게 등장한다.... 한국사에서 가장 뛰어난 임금, 조선조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76쪽)

--> 다른 건 모르겠고, 이 책의 저자는 매사에 극단적으로 반복을 많이 했다.


6) 이웃하는 문장에서의 중복; “지금 한국에는 지나치게 대학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에 비해 가장 대학이 많은 국가라고 말한다”(197쪽)--> 이 두 문장 중 하나가 없다면 이해가 잘 안되나보지?


그밖의 단점.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수학한 독일의 교육제도가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독일에 사는 한국 어린이가 쓴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 분량이 매우 충격적이다. ‘이집트-파라오들의 나라’라는 제목의 리포트는 237쪽부터 시작해 253쪽에서 끝난다. 그러니까 무려 17페이지를 초등학생이 쓴 보고서로 우려먹은 건데, 정말이지 대단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해석이 충격적인 대목; 저자는 초등학생만 돼도 다 아는 황희정승의 일화-니말도 옳고 쟤 말도 옳다-를 여덟줄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 뒤 이렇게 얘기한다. “위의 일화에서 황희는 계집종들의 싸움에 자신이 굳이 개입할 하등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입장을 보인 것에 불과하다. 그 정도는...같은 무리들 사이에서 해결할 성질의 문제라는 뜻이었다(129쪽)”


아무튼,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뭐 하나 건진 게 없다. 30페이지 쯤부터 지루해졌고, 그때부턴 비판할 건덕지가 없을까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그런 재미라도 없었다면 진작에 내팽개쳤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도 건진 것 축에 들지 모르겠지만, 너무 출판사만 믿고 책을 사는 것도 위험한 것 같다. 같은 말이 그렇게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편집의 선에서 걸러지지 않는 출판사라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전혀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며, 정 교육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학교종이 땡땡땡>이나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를 읽으시길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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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1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마태님이나 저나 별 한개도 아까운 리뷰만 올리는 일로 모처럼 조우하는군요^^

sweetmagic 2004-11-1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책 치고 대안 제시가 잘된 책은 아무책도 없더군요.
우리나라 역사를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쓰는 재주 없이는 불가능 할 것도 싶구요.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또한 제목하나는 잘지었다는 생각밖에... 비판할 건덕지가 없을까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ㅎㅎ 왜 지적하신 내용 밖에 눈에 안 띄셨을까요 ?

오해의 소지가 많아 고투리 잡기 딱 좋은 글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메아리도 없는 언덕에서 용감무쌍하게 야호 !! 를 외치는 작가의 정열에 박수는 처 줘야하지 않을까요 ? 이 작가에게 교육에 대한 책을 썼다고 해서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모두 떠 안기고 다안을 제시하라는 건 좀 욕심이 과하신 듯... 다들 아는 문제지만 자신이 체득한 범위 내에서 열심히 비판하는 모습이 전 부럽기만 하던데... 님은 저보다 훨씬 보이는게 많으셔서 이런 서평을 쓰신거 겠지요. ^^

마태우스님 께서 쓰신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비판과 그 대안에 대해 써주세요 님 생각을 보고싶습니다~~~!! ^^

하이드 2004-11-1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희정승의 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대박이군요. 저자는 뭐하는 사람이랍니까? 진짜 궁금.

마태우스 2004-11-1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 하이드님/울 나라서 대학 나오고 독일서 공부를 오래 했군요. 교수 자격도 취득했다네요.

스윗매직님/이책에서 공감이 가는 말들은 대개 수십번 이상 들었던 그런 것들이어요. 새로운 것은 하나두 없구.. 예를 들면 노벨상에 왜 목을 매다느냐,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가 우리나라에서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대안을 제시 못해도 좀 차분하기만 하면 될텐데, 이얘기 했다가 저얘기 했다가... 제 대안은 서울대를 없애는 것, 그리고 대학별 특성화를 하는 거랍니다.

여우님/너무 반가워요!!!!!!!! 별 하나로 주우하다니....^^

2004-11-19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4-11-1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리뷰쓰려고 보고 있는 책인데... (오랜만입니다. 꾸벅 인사..) 놀지말고 리뷰썼으면, 같은 말의 반복.. 등을 제가 먼저 쓸 수 있었을텐데 할 말이 줄어들었군요. ^^ 하여간 잘 봤습니다.

marine 2004-11-2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점의 제시가 작가의 한계 같긴 합니다 신문 서평에도 문제 제시만 할 뿐 별다른 대안은 없다고 한계점을 지적하더군요 그래도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일 부분들은 있는 것 같아요

2004-11-20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11-2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을 떠나서 일단은 헉겁할 반복이 돋보이는 책이군요. 책 제목을 바꾸죠. 도돌이표로. 흐하하.

2004-11-20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부후사 2004-11-20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덕영 씨라면 사회학 전공으로 독일서 공부한 사람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 사람이라면 일전에 <<베버냐? 짐멜이냐?>>라는 책을 낸 적이 있어 한 번 살펴보았는데 증언부언하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그 책이 독일 교수자격 심사 논문이었다는데 말이에요. ㅡㅡ;; 아, 그리고 책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

2004-11-20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