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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의 삼촌 브루스 리 ㅣ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2년 2월
평점 :
천명관은 그 이름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사게 만드는 작가다.
그가 쓴 장편은 두 편밖에 안되고, 그 중 <고령화 가족>은 뭐 그렇게 재밌다고 생각지 않지만,
데뷔작이었던 <고래>가 워낙 뛰어난 작품이라,
후속작이 그 정도 수준만 유지한다 해도 읽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후속작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는데,
데뷔작에 쏟아지는 찬사 때문에 작가가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 이후 장준환 감독이 결혼 말고는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전에 읽고 있던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읽기 시작했는데,
<고래>에서 보여줬던 이야기꾼의 재능이 여전한데다 유머까지 잔뜩 포진해 있어 한 며칠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소설가 성석제한테서 유머기법을 배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예를 들어 이소룡의 대역을 위해 일군의 젊은이들이 홍콩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는 대목을 보자.
[이봐 젊은이 인생은 분명 용기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라네,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소룡, 그런데도 말귀를 못 알아듣고 그게 무슨 뜻인데요,라고 물으면,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말이지, 음, 그럼 이렇게 얘기해볼까? 옛날 이탈리아에 프란체스코란 성인이 한분 계셨는데 그분께선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남기셨다네.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 씨발,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요,라고 하면 가지 말라고 인마! 가봤자 안된다고!라고 말해 주고 싶은 이소룡...(1권 318쪽)]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마워요, 여러분!"
저자가 이러는 건 그 구절을 읽는 독자라면 필경 책을 사봤을 거니까 그런 것일게다.
만일 책이 별로인데 작가가 이런다면 더 짜증이 나겠지만,
워낙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지 마음속으로 이랬다.
"뭘요, 제가 감사드려야죠. 이렇게 멋진 책을 써주셔서요."
지금 막 생각난 거 하나. 독자가 작가의 말을 읽는 건 책이 재밌을 때일 확률이 높다.
내가 좋아하는 페더러 선수가 우승했을 때 시상식까지 보게 되는 것처럼,
재미있는 책을 폭풍처럼 읽고나면 여운이 남아 작가의 말까지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나저나 천명관의 다음 작품은 또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