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타심
박찬호가 잘하던 98년, TV를 볼 수 없는 날이면 난 인터넷에 접속해 상황을 확인했다. 천리안에 어떤 분이 경기 상황에 대한 속보를 시시각각으로 올려주고 있었던 것.
“또 볼넷! 주자 1, 2루 위깁니다”
“2루수 플라이 아웃! 이제 원아웃만 잡으면 경기 끝입니다”
그걸 보면서 이타심에 관한 생각을 했다. 자신은 TV를 보고 있으니 그런 짓을 안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굳이 글을 올려가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이타심의 발로가 아니냐는 거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 그거야말로 인지상정일 것이다. 사람들은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아이의 사연을 안타까워하며 성금을 보내고,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ARS 등으로 후원을 하며 고통을 나눈다. 국가가 해야할 일을 시민사회가 떠맡는 게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그건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라는 걸 일깨워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리라.
예수를 믿으라고 적극적인 전도를 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 발견한 기쁨을 남과 나누려는 선의가 있을 것이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나면 남에게 “꼭 보라!”고 권하고 싶어지는 것도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동물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2. 부모님 전상서
내게는 늘 이타적이신 어머니가 이 드라마를 같이 보잔다. 드라마를 같이 보는 건 친밀해지는 지름길일 수 있기에 피곤해서 만사 귀찮음에도 TV 앞에 앉았다. 신이 난 어머니는 “쟤가 교장 큰아들이고, 쟤는 둘짼데 날건달이야...”라며 설명을 해주신다. 이 드라마를 보려고 성당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나오셨다는 어머님, <완전한 사랑>도 그랬지만 김수현 드라마라면 사족을 못쓰신다. 어제 처음 본 소감은 “역시 김수현”이라는 것. 대사들이 평범한 듯하면서도 가슴에 착착 와 닿고, 교장댁 네 남매의 삶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둔 김희애가 할아버지 산소에 서서 이런 말을 했단다.
“내 아들같은 자식을 둔 부모가 공통적으로 갖는 소원은 그 자식보다 부모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우리를 감동케 하는 말은 ‘영롱한’ ‘황홀한’ 같은 미사여구가 들어간 말이 아니라 우리가 늘 쓰는, 평범한 말들의 조합이리라. 하지만 이 말을 어머님은 이렇게 해석하신다.
어머니: 그러니까 장애아는 오래 못산다는 얘기지?
나: 그게 아니라 부모님이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말이어요.
어머니: 그래도 엄마가 더 오래 살려면 장애아가 일찍 죽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잖아?
나: 아니어요. 일찍 안죽는 장애아라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승복하지 않고 당신이 맞다고 우기신다. 엄마 말이 내 말과 같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주말에 집에 있게 된다면 이 드라마를 볼 생각이다. 재미있는 게 있으면 한마디 말없이 TV만 보는 나와 달리, 어머니는 나와 함께 보는 걸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