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외국을 두 번 가봤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사시는 일본에 놀러갔었고, 그 다음엔 조교 시절 태국에 갔었다. 당시 태국에서는 기생충을 주제로 한 학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명성이 있는 학자들이 대거 참석한 큰 대회였다. 일주일을 태국서 보내면서 태국 여자들이 참 미인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남자들이 동남아로 가는구나...” 라오스 계, 원주민 등은 별로지만, 중국계 여자들은 어찌나 이쁜지 어떻게 말이라도 한번 걸어 보려고 태국말 사전을 뒤적이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태국말, “쿤 쑤어이!” 이건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라는 소리. “헹남 유 티나이” 화장실이 어딥니까.
어느날 밤, 우리는 나이트 클럽을 찾아 헤매다, 제법 그럴듯한 나이트를 찾아냈다. 꽤 인기가 있는 곳인 듯 넓디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스테이지에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얘네들이 왜 춤을 아무도 안추지?” 우린 한국인의 기상을 보이기 위해 스테이지로 뛰어올라갔다. 난 팔과 다리만 조금씩 흔드는 특유의 춤을 췄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 나름대로 몸을 흔들었다. 그래도 태국 애들은 나오지 않았다. 매우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우리를 쳐다볼 뿐. 얼굴을 보니 다들 10대, 20대의 젊은 애들이건만 그토록 낭만이 없는가. 우린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춤을 췄다.
춤을 춘 지 30분이 될 무렵, 드디어 반응이 왔다. 얘네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열렬히 치는 것. 난 우리 중 하나가 브레이크댄스라도 추는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관중의 환호에 답하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 보였고, 오페라 배우들이 하는 것처럼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커튼콜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드럼 소리가 났다. 놀라서 뒤를 보니 무대의 벽이 열리면서 HOT같은 애들이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서있다. 그랬다. 거기 있던 관중들은 우리의 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꽤 인기있던 그 그룹의 공연을 보러 온 거였다. 손을 맞잡고 답례를 하던 우리를 보면서 그들은 얼마나 웃었을까. 내가 했던 착각 중 가장 한심한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