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 다음날엔 꼭 설사를 한다. 설사에는 몸에 해로운 성분을 배출시키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고 믿는 나는 술마시고 하는 설사를 제니칼을 먹으면 대변으로 지방이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하게 간주한다. 그렇긴 해도, 설사의 충동이 일어날 때면 괴롭기 그지없다. 호랑녀한테 이기는 사람은 있어도 설사를 이기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술을 마시는지라 테니스를 마치고 집에 갈 때면 설사의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 내가 하는 말이다.
-야! 더 달려! 으---나올 것 같아!
-주유소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 더 이상 못참겠어!
-신호등 무시하면 안돼? 왜 신호마다 걸리는 거야!

몇번 이랬더니 친구는-부인 차를 몰고오니까 실수하면 죽음이다-출발하기 전에 나한테 미리 화장실에 다녀올 것을 권하곤 한다.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는가. 설사는 싸려고 해서 싸지는 게 아니며, 난 늘 테니스를 치고 집에 갈 때 신호가 온다.

그런데 어젠 그 신호가 좀 일찍 왔다. 두 번째 게임이 한창 진행되는 시점에서. 4-2로 우리가 앞서고 있었으니 두점만 더 내면 끝이었다. 파트너에게 사정을 말했다.
"나 설사 나올 것 같거든. 그러니까 빨리 끝내자"
참고로 화장실은 아주 멀리 있고, 시합 중간에 다녀오면 김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친구의 스트로크는 계속 네트에 걸렸고, 상대방은 갑자기 잘했다. 스코어는 4-4가 되고, 내 얼굴은 백짓장이 되었다. 내가 했던 말이다.
-(친구가 실수를 한 뒤) 야!! 나올 것 같단말야!
-(또 실수를 하자) 코트 니가 닦을래?

5-5가 되어 타이브레이크를 할 때, 난 더 이상 괄약근에 힘을 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난 열심히 플레이를 했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화장실로 가는 와중에 난 달릴 수가 없었다. 최대한 괄약근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심조심 걸었다. 몸에서는 으슬으슬 한기가 났고, 화장실은 멀게만 보였다. "경기가 좀더 길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현기증이 났다. 다행히 실수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설사를 하면서 난 환희에 몸을 떨었다. 설사의 양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나를 괴롭힌 게 겨우 이건가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나기까지 했다.

철이 든 이후 내가 실수를 한 적은 딱 한번이 있다. 실수는 순간이지만,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난 내 옷에 묻은 흔적을 벤지에게 전가했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정말 부끄럽다. 충주에서 올라올 때의 기억도 난다. 거의 한시간을 한손은 앞 의자의 목받이를 붙잡고, 한손은 가슴과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버텼던 기억. 화장실에서 일을 본 후 난 거의 혼절하다시피 했고, 집에 가서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다. 휴게소에 세워 달란 말을 못한 이유는 내가 숫기가 없기도 했지만, 그때 일어나면 실수를 할 것 같아서였다.

이동시간이 길면 인내력도 조금은 길러지겠지만, 결국엔 그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집과 직장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언제까지 홍대앞에 살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참고로 오늘 아침 역시 난 아슬아슬하게 실수를 모면했다. 설사는 계속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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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7-1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건물 전체가 화장실 공사 중입니다. 그것도 9월 1일 까지요.
공사 소리에 정신도 하나 없지만,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모닝*을 빠뜨린 것이 영 ...불안불안 합니다. 참고로 여기는 5층.... 난간타고 내려가는 저만의 묘를 발휘해야 할듯....
커피향이 진동을 하는데 아....갈등 중입니다.

stella.K 2004-07-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괄약근도 항상 탄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을텐데요, 나이 먹으면 탄력성도 잃게되지 않을까요? 장이 안 좋으신가 본데, 돌아 오는 목요일은 또 어쩌실려고...
개를 키우면 여러 뭐로 쓸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개야 말을 못하는데 결백성을 어떻게 주장하겠습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불쌍한 벤지...
건강 생각하셔서 술은 가급적이면 안 드시는 것이...^^

마냐 2004-07-1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걱...stella09님이 저를 두번 죽이심다....저두...술 마신 다음날은 안 좋거든요..흑흑.
안그래도..요즘은 에이그..어쩔뻔 했어..싶은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예전보다 늘어나는게 아닌가 했는데...그게 그노무 노화에 따른 탄력저하 때문인가요? 어머머머. 이를 어쩜 좋습니까.

stella.K 2004-07-1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괄약근 탄력 저하면 항문운동을 해 보심이 되움이 되지 않을까요?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ceylontea 2004-07-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이거이.. 자랑이 아니죠..
술을 자제하셔야할 것 같은데요... 건강하셔야..알라딘 평정도 가능할 듯..

아영엄마 2004-07-1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서도 그거이 과민성대장증상 아닌감요? 우리 남편도 술만 마시면 아침이 불안한 사람입니다..ㅠㅠ 출근한다고 나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도저히 안되겠더라며 화장실로 직행... 우리집은 개도 안 키우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던 우리 남편..ㅠㅠ
거기다 자다가 일어나 옷장 문을 열고 허리춤으로 손이 가는 것을 목격하고 기겁을 하고 말린 적도 가끔 있는지라 그런 것들로 제가 남편의 폐부를 찌르는 농담을 하곤 하죠! ^^;;(이런 적나라함을 발설하다니 남편에게 들키면 죽음이다.. )
설사, 이거 분명히 술병이라구요! 마태우스님도 한해한해 지날 때마다 건강상태를 절감하실지도 모르니 이제는 적당히 드시옵서서...

플라시보 2004-07-1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사의 양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나를 괴롭힌 게 겨우 이건가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나기까지 했다.' 참으로 와 닿는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리 2004-07-1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하하, 님도 경험이...
아영엄마님/아침에 한번 설사를 하구, 그담부턴 안그러거든요. 그냥 제 스탈이라고 생각하렵니다.
실론티님/그렇죠. 건강해야 알라딘 평정도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거 아닙니까. 호호.
스텔라님/항문운동도.......있나요? 글구 벤지에게 늘 미안해요. 흐흐흑.
마냐님/술먹고 다음날 묽은 변이 나오는 건 탄력저하랑 관계없지 않을까요? 너무 걱정 마시길. 전 20대 때도 그랬으니깐요.
스윗매직님/뒷얘기 해주세요! 모닝x 빠뜨리고 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