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할 때는 주례가 있어야 한다. 내가 학교에 있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교회, 성당을 뺀다면 내가 참석한 결혼식의 주례는 대부분 교수였다.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중.고교 선생보다 대학 교수를 더 높이 치는 사회적 편견 때문일 수도 있고, 진짜로 교수와 친밀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례에 관해 기억나는 것들을 몇 개만 적어본다.

1. 내 친구
작년에 결혼한 내 친구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주례로 식장에 섰다. 다른 면에서도 좋은 점이 많은 친구긴 하지만, 그런 것도 퍽 괜찮아 보였다.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주신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찾아뵙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챙긴단 말인가.

2. 1년 후배
약리학을 전공한 후배의 결혼식에 조금 늦게 갔다. 갔더니 아직 식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갑자기 "밥 먹고 오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간다. 웬일일까 싶었더니 주례가 아직 안오셨단다. 흐음, 그렇구나. 난 같이 있던 친구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이를 쑤시며 와보니 결혼식이 한창이고, 주례를 맡으시기로 한 교수님이 침통한 얼굴로 하객들 틈에 끼어 있다. 너무 늦게 오니까 신랑 아버지의 친구분이 대타로 나섰단다. 그래도 뭐, 결혼해서 둘이 잘 살고 있으니까, 그때 일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으리라. 남자애의 정력이 약해서-자기 말로는 전희 포함해 1분이란다-문제긴 하지만, 그건 주례가 늦게온 거랑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주례 선생님은 도대체 왜 늦었을까? 모시러 오기로 한 친구가 늦게 와서! 그리고 그 친구는 평소에도 늦잠을 잘 자서 사건을 많이 쳤단다.

3. 우리 교수님
언젠가 미생물학을 전공한 친구의 결혼식에 간 적이 있다. 미생물의 대빵이 주례를 서셨는데, 평소 권위적인 면이 있던 그 교수님의 주례사는 "잘 안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일관하셨다. 얼마전 정년퇴임을 하신 우리교실 교수님은 명 주례로 인기가 많았다. 교무부학장 등 보직을 오래 지내면서 많은 학생들을 어둠의 수렁에서 건져내셨고, 직선제 학장을 4년간 하셨으니 경력을 말할 때도 폼이 난다. 하지만 그분의 가장 큰 장기는 바로 주례사. 조교 시절에 본 건데, 선생님은 주례사를 정말 열심히 쓰신다. 주례 전에 상견례를 하면서 이것저것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토대로 오후 내내 주례사를 쓰시곤 했다. 내가 다른 주례사는 잘 안들어도 우리 선생님의 주례사는 잘 들었는데, 다음 주례사가 특히 기억이 난다. 신랑이 의사였고 신부는 음대를 나온 커플의 주례사.
"음악과 의학은 얼핏 보면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인간을 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10년 전에 이미 주례 100번을 넘기셨다니, 지금은 200번도 넘을지 모른다. 그분의 단점이라면 기억력이 많이 쇠퇴하셨다는 것.
선생: (지나가는 제자를 보고) 자네는 결혼 안하나?
제자: 저 결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주례 하셨는데요???

4. 주례와 연령
우리 교실의 또다른 선생님은 써클 지도교수를 벌써 10년째 하고 있다. '젊은 오빠'로 인기가 높은 우리 선생님은 써클 애들로부터 주례를 부탁받은 적이 부지기수지만, 번번히 거절했다. 자격이 안된다고 하시지만, 내가 보기엔 사모님과 누구보다도 단란한-아직도 연애시절처럼 사신다-결혼생활을 하시는 그 선생님이라면 자격은 오히려 차고 넘친다. 그렇게 거절만 해오시던 선생님께서 올해 첫 주례를 서셨다. 조금 늦게 가서 주례사를 못들었지만, 남들 말에 의하면 안떠시고 잘 하셨단다. 궁금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걸까. 스스로 내린 답은 이거다. 선생님은 54년생, 올해 만으로 딱 50이다. 공자가 하늘의 명을 안다고 했던 그 나이. 아마도 선생님은 "앞으로 주례를 열심히 서라"는 명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대학에 있다는 이유로 내게 주례를 부탁한 학생이 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너무 진지하게 부탁해 황당했는데, 너무도 결격사유가 많은 내가 주례석에 설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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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7-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주례로 서면, 그 결혼식장에서 주례 안 듣고 밥 먹으러 간 사람은 많이 후회하게 될 게 확실한데...^^

진/우맘 2004-07-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요즘 일등 자주 하네.^^

마태우스 2004-07-1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2분만에 코멘트가... 진우맘님 안주무시고 뭐하세요? 오늘 전 밤샐 건데^^

코코죠 2004-07-11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뭇머뭇)저기 이런 말을 하면 저의 순수한 이미지에 금이 가겠지만, 그 전희 포함해 1분짜리 신랑의 신부에게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어머나;

미완성 2004-07-1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19477

어마낫! 마태님! 토탈 19477분이 이곳을 다녀가셨어요!
이벤트 안하시나요??? *^^*
전 정말 님처럼 유머러스하고 쌍꺼풀도 있으시고 특히나 재벌2세인 분의 주례는 꼭 들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태우스 2004-07-11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사과님/유머는 님이 더 뛰어나고, 쌍거플은 님만 있고, 재벌2세와 주례는 아무 상관이 없지요. 갑자기 님의 주례사를 듣고 싶습니다!
오즈마님/님의 순수한 이미지, 쨍 하고 금갔습니다. 유감은 전해드리겠지만....^^

밀키웨이 2004-07-1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전 그냥 심상하게 보고 넘겼는데 오즈마님 때문에 다시 올라갔잖아요 ㅋㅋㅋ

마태우스님께서 주례를 서시는 그 날...신랑신부를 위한 하객보다 주례를 위한 하객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그런 예감이 드는군요 ^^

starrysky 2004-07-11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말을 하면 저의 성실한 이미지에 금이 가겠지만, 저는 남의 결혼식에 제시간에 간 적이 거의 없이 주례사에 대한 추억이 적답니다. 기껏 일찍 간 날은 신랑 또는 신부 뒤통수 보면서 우느라고 또 못 듣고.. (왜 울었는지는 기밀입니다)

마태우스 2004-07-1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왜 우셨는지 가르쳐 주세요. 안그러면 제 맘대로 상상해서 뉴스레터에 올릴 겁니다!!<--협박은 아니구요, 그냥 위협만....
밀키웨이님/하하, 주례사 몇개 녹음해서 테이프로 팔아 볼까요???

밀키웨이 2004-07-11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 진짜 왜 우시는대요?
그것이 알고 싶다!
어서 밝히시옵소서!

마태님/ 그걸 정말 파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말을 꺼낸 죄로 아니 사면 안될듯한 분위기...
하지만 말입니다. 그 테잎 들으면 허구헌날 속 썩이는 옆탱이도 무쟈게 이뻐보이고 그나마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되고.....뭐 그런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마태우스 2004-07-11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밀키웨이님/방금 어디 갔다왔더니 실시간 리플을 달아놓으셨네요. 님께서 환영하는 내용으로 제작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건 김형곤이 이미 다 해놓은듯...이브 어쩌고 하는 테이프, 겁나게 재미있더군요. 제가 아무리 해봤자...따라갈 수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