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는 정말 피를 말리는, 잔인한 방식이다. 대부분이 실패하고 성공하는 사람만 영웅이 되는 방식이 아니라, 다 성공하니까 못찬 놈만 죽일놈이 되는 거라서 그렇다. 그래서 난 피파에 11미터가 아니라 22미터에서 킥을 하자고 주장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왜일까? 그렇게 좋은 방법을 동양의 미소년이 생각해 낸 게 배가 아파서? ) 그래서 승부차기는 골키퍼만 영웅으로 만든다. 전부 골을 허용해도 욕을 안먹지만, 하나라도 막으면 스타가 된다.

배탈로 우울한 터라, 집에 와서 평소 안보던 축구, 영국과 포루투칼의 경기를 건성으로 봤다. 그러다 2-2로 비기고 난 뒤 승부차기를 할 때는 TV에 다가가서 봤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승부차기를 할 때 가운데로 차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거다. 영국의 마이클 오웬이 찬 것도 가만 있으면 골키퍼에게 맞는 볼이었고, 램파드가 찬 것 역시 가운데로 들어갔다. 포루투칼의 여섯 번째 키커는 심지어 아주 가볍게 가운데로 차서 넣던데, 그건 완전히 속였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행위란다. 어쨌든 가만 있으면 세 개는 막았을 테지만 왜 골키퍼는 한쪽으로 미리 단정해 놓고 몸을 날려 스스로를 머쓱하게 만드는 걸까. 사실 구석으로 세게 차면 어차피 몸을 날려도 막을 수가 없지 않는가?

내 말을 들었는지 포루투칼 골키퍼가 가만 서있다가 구석으로 찬 볼을 바라만 본다. 그래서일까. 7번째 영국 선수가 찰 때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골을 막아낸다. 포루투칼의 승리. 그러고 나니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골키퍼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그걸 왜 내가 고민한담? 몸을 날리던 말던, 난 골키퍼도 아닌데.

94년 이탈리아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때 실축을 함으로써 브라질에 승리를 안긴 이탈리아 선수는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로베르트 바조. 이번 대회에서도 세계적인 키커인 영국의 베컴이 하늘로 어이없는 볼을 날려보낸다. 이런 걸 보면 명성이 있는 선수들이 실수를 하는 일이 더 잦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첫째, 일단 차는 횟수가 남들보다 많다. 우리 같으면... 홍명보나 황선홍, 안정환 대신 이민성 같은 애한테 차게 하겠는가. 둘째, 워낙 많이 차다보니 방향이 읽혔다! 베컴의 페널티킥을 막은 프랑스의 바르테즈 골키퍼가 경기 후 "연구 많이 했다"고 말했듯이. 셋째, 언론의 역할. 이름 없는 선수가 실축을 하면 보도가 잘 안되지만, 슈퍼스타의 실축은 언제나 화제가 된다. 오늘 오다보니 가판대의 스포츠신문에 베컴이 실축을 했다고 대문짝만하게 써 놓았다. 사실 베컴의 실축 이후 포루투칼 루이 코스타도 실축을 했으니 베컴의 잘못은 묻힐 수 있었고-4-4로 비겨 연장에 들어갔으니-정작 잘못한 건 영국의 일곱 번째 키커였다. 하지만 언론은 역시 베컴을 욕한다. 왜? 그래야 더 선정적이니까.

하여간 승부차기는 잔인한 게임이다. 그걸 보면서 즐기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LAYLA 2004-06-26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아의 물개는 조오련 아시아의 미소년은 마태우스 올인!!乃

하얀마녀 2004-06-26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2년 월드컵 대 스페인전 승부차기가 생각납니다. 그땐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동호회 동생들하고 같이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일어나는 바람에 뒤쪽에 있던 저는 키가 작아서 화면이 보이지 않았죠. 사람들의 함성이나 탄식 등의 반응을 본 후에야 결과를 알고 한박자 늦게 반응해야 했었던 행복했지만 행복할 수만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너무너무 조마조마했었죠.

호밀밭 2004-06-2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보니 프랑스도 그리스에게 져서 4강에 못갔더군요. 어찌 되었든 베컴은 이번 유로 2004가 악몽같겠죠. 특별히 못하지는 않았는데 골키퍼와의 1대 1 싸움에서 패자가 되었으니까요. 로베로토 바조는 그 월드컵 때의 승부차기 이후 많이 쇠약해졌지요. 베컴은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 장면을 아마 수백 번은 더 보아야 할 거예요. 언론이 좋아하는 장면을 제공한 셈이니까요. 98년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선수를 발로 차서 퇴장당하는 장면과 이번 실축 장면들은 베컴을 계속 괴롭히겠네요.

부리 2004-06-2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아직 마태우스의 사진을 못보신 게로군요^^

부리 2004-06-26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님/그래도 아직까지 승부차기 실패했다고 자살한 사람은 없으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혹시 바조가 쇠약해진 것은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무튼 전 베컴이 앞으로도 잘한다는 데 걸겠습니다. 글타고 님에게 반대하는 건 아니구요...
하얀마녀님/사람들이랑 봤으면 안보여도 재미있었겠어요. 그때 얼마나 난리였는지, 지금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죠.

클리오 2004-06-2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양의 미소년... ^^*

sunnyside 2004-06-2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컴의 실축은 심리적인 요인도 많았던 것 같아요. (오늘 보니까 잔디탓을 하기도 하더구만요.) 지난 번 프랑스 전에서 패널티킥을 실축한 이후에 떨어진 자신감이 은연 중에 슛에 드러난게 아닌가 하는... 님 말씀대로 승부차기는 너무나 잔인한 것 같아요. 대학교 때 한 선배는 과대항전에 나가 실축하고 4년 내내 입방아에 올라야 했답니다.

sweetmagic 2004-06-2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게임 보다가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슴니당 .....

갈대 2004-06-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부차기는 잔인한 방법이라는 데 동감합니다. 심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바꾸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가위바위보라든지...-_-;;

호밀밭 2004-06-26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베컴이 앞으로 못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언론이 좋아할만한 장면을 제공했으니 언론의 괴롭힘을 당할 거라는 거지요. 그 정도에 쓰러질 베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