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 걸어간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쓰는 건 반칙이다. 난 이 책을 완전히 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섯편의 단편 중 다섯 개는 문제가 없는데, 여섯 번째 단편 중 일부, 정확히 말하면 257-272페이지가 빠져 있다. 알라딘에서 다시 책을 보내주기로 했지만, 그러려면 파본인 내 책과 교환을 해야 한단다. 책을 읽으면서 맨 뒷장에다 리뷰를 잔뜩 써놓는 내 특성상, 새 책이 오고난 뒤에는 리뷰를 쓸 수가 없으니 지금 쓴다. <은어낚시통신>도 그랬고 <사슴벌레여자>도 그랬듯, 윤대녕의 소설들은 대체로 난해하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는 얘기다.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내게 다음과 같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읽긴 읽었는데, 이게 무슨 내용일까?" 이 책도 그랬다. 특히나 여섯 번째 단편은 난이도가 가장 심했는데, '마태우스'와 '부리'처럼 자아분열을 일삼고, 심지어 분열된 자아와 전화통화까지 하는지라-난 적어도 그런 짓은 안한다!-빠진 열여섯 페이지를 읽어봤자 이해할 것 같진 않다. 이해는 진작에 포기했으니, 여기 실린 단편들을 그냥 분석만 해본다.
1. 작업
남자들이 제일 하고픈 게 바로 '작업'이다. 난 길거리에서 작업을 해본 적도 거의 없지만, 된 적도 한번도 없다. 그런데 윤대녕 소설에서는 그게 무더기로 이루어진다.
1)번 소설: 남자가 혼자 제주도에 내려왔는데, 뒤에서 여자 둘이 남자 얘기를 한다. '실연당했나봐!' '호호!' 스물 세 살, 스물 다섯 살의 한창 나이, 그 중 하나가 커피를 사달라고 하고, 남자는 겁나게 귀찮은 표정으로 커피를 산다. 아르바이트로 도우미를 하는 미녀임에도.
한 여자가 화장실에 간 틈에 다른 여자가 전화번호를 묻고, 나중에 숙소로 찾아온다. 잠도 자냐고? 물론이다. 남자들이 꿈에 그리는 일,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는 그 일이 이리도 쉽게 이루어지니 내가 이 소설에서 현실감을 느끼겠는가?
3)번 소설에선 한적한 곳에 요양간 남자가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다가 여자와 합석을 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한다. 4)번 소설. 독신자들이 사는 원룸에서 여자가 실연을 당했다면서 남자한테 술을 먹으러 가잔다. "미안하지만 맥주 한잔 사줄래요?" 남자는 좀 빼다가-하여간 제정신이 아니다-따라간다.
2. 상처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략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남자들
1)번 소설의 남자는 이혼을 했고, 2)번에선 아내가 연상으로 잠자리를 안하는 부부다 (그래도 애가 있는 걸로 보아 한번은 한 듯...). 3)번에선 남자가 다시 이혼, 4)번에서도 이혼. 5)번은 간만에 아내를 사랑한다는 남자인데, 헤어진 첫사랑한테 걸핏하면 편지를 보내는 걸로 보아 제정신은 아니다.
-여자들
'첩딸'이란 말이 지금도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1)번 소설의 여자는 둘다 첩의 딸이다. 2)번의 여자는 모르긴 해도 상처가 있고, 3)번의 여자는 다시 첩의 딸이다. 4)번 여자는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3. 흡연
등장인물들은 모두 술을 한다. 그것도 겁나게 맛있게 먹어서, 나까지 술먹고 싶게 만든다. 설사만 아니었다면 당장 달려나가 맥주를 샀을 거다. 담배? 다 피우는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피운다. 흡연 상황을 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남 여
1)번 소설: + +
2)번 소설: + -
3)번: -(?) +
4)번: + +
5)번: 2번째 남자와 그의 아내 둘다 (+)
정리를 하자면,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상처를 안고 있고, 그래서 술과 담배를 즐긴다. 상처 때문인지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남자들에게 작업을 건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고맙죠!-현실에서 이런 걸 별로 당해본 적이-심지어 본 적도-없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인지 난해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같다. 쓰고 나니까 헷갈린다. 이것도 리뷰에 속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리뷰는 특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