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이 모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진우맘님은 서재 지붕을 까맣게 바꾸고, 느림님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가셨다. 조선인님은 분노에 찬 글들을 서재에 올리신다. 그런데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때를 미네 안미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술을 마시네, 따위의 글만 올리고 있다니. 하지만 난 아무런 할말이 없다. 부끄러움 때문이다. 김선일님의 죽음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그런 생각.

벌써 2년 전의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때 난 노무현을 찍었다. 우리나라가 수구로 후퇴해서는 안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거기에는 노무현이라면 자주적인 한미관계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진 않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어떤 국민적 동의도 없이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정부는 한명이 죽은 지금도 여전히 '파병 방침 불변'을 앵무새처럼 뇌까린다. 국익 때문이란다. 노무현의 국익은 어떤 것일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큰 국익이 뭐가 있는지 난 알지 못하겠는데.

대선에서 이회창이 되었다면 이렇게까지 낙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이회창이니까!"라고 생각하고 말았겠지. 적어도 그때는, "노무현이었으면 달랐을 거야"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다 희망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10만이 넘는 인파가 광화문을 메우던 탄핵 시절과 달리, 어제는 겨우 700여개의 촛불만 타올랐다고 한다. 그들에겐-나를 포함해서-이 땅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인 행위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라크 파병에 관한 토론을 할 때, 패널 하나가 한국인이 테러 위협에 노출되지 않겠냐는 우려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반대측 패널이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극단적인 예를 들지 말라. 우리는 이라크를 도우러 가는 거다" 김선일님이 참혹하게 희생된 지금,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기가 했던 말에 대해 최소한 미안해하고 있기는 할까.

* 사족: 안상영과 대우 남사장이 죽었을 때, 노무현이 살인자라고 몰아붙이던 내 친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안씨와 남씨에 비해, 김선일의 지위가 형편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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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6-2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병당시 했던 각종 시사토론을 다시보며 마음이 착찹해집니다...
그들이 침묵하는 건 김선일의 지위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울부짖음이 너무 실감나서 - 인간다움 ? - 아닐까요 ? 그의 죽음을 아주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우리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만은 만사제치고 서라도 촛불들고 거리를 밝혀야겠습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6-2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을 사람 죽은 건 뭐라 안하면서 안 죽을 사람 죽은 건 뭐라하지 않는군요. 혹시 그건 마태우스님의 친구들이 그분들의 특권층적인 관점에서 안상영, 남상국 사장 일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져도, 김선일씨의 죽음은 강건너 불구경내지는 당연한 일 정도로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신민들의 적절한 희생은 지도자의 든든한 기반이 되는 법이니까요.(벌써 지금 사회 한켠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응징을 부르짖는 작자들을 보세요 ㅜ ㅜ)

2004-06-23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nnyside 2004-06-2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기엔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인한 한국인들의 반미감정과, 그들이 이야기하는 한-미공조의 약화가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 해를 끼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책읽는나무 2004-06-2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없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우리나라는 지도자가 그누구였든지간에 이라크 파병을 서둘렀을것이라 생각합니다....그만큼 개개인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오로지 힘있는 나라에 잘보이려 애를 쓰는듯합니다....그리고 결과가 나쁠시엔 반드시 야당의 야유와 비판이 기다리고 있었겠죠!!.....ㅡ.ㅡ;;
높은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땅의 자식들을 돌볼줄 모른다는것이 큰 문제인것 같습니다...그러한 관념들이 시민들에게도 조금씩 조금씩 전이되어 가는것 같기도 하구요!!...님의 친구분들도 전이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요!!
정치를 하려면...내나라의 내자식부터 먼저 돌볼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에휴~~ 한숨만 나옵니다....ㅡ.ㅡ;;

비로그인 2004-06-2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지금 다른님들의 서재를 돌아다니면서 김선일씨의 기사를 보고 한숨 쉬는일 밖에는 할게 없어요~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