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6월 22일(화)
누구랑?: 미녀 둘이랑
코스: 치킨집에서 맥주--> 보드게임방--> 정종, 소주

배탈이 났을 때 술을 먹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배탈났는데 왜 술을 마시냐?" 하지만 그건 잘못된 질문이다. 난 배탈이 나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 약속이 있는데 배탈이 난 것뿐이다.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최상의 컨디션에서 공을 던지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전날 잠을 잘 못자도, 먹은 게 얹혀도 5일마다 꼬박꼬박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처럼, 나 역시 묵묵히 내 갈길을 가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취소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전화기에 자꾸 손이 갔다. "몸이 안좋으니까 담주에 봅시다"라는 전화 두통이면 하루를 쉴 수 있다. 그렇게 하고플 때마다 난 골프선수인 커티스 스트레인지를 떠올렸다. 뭘 선전하는지 까먹은 광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승리했을 때 난 필드에 있었고, 패배했을 때도 난 필드에 있었습니다. 난, 골퍼니까요!" 그 말을 이렇게 바꿔본다. "친구랑 술을 마셨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집이더군요! 역시 난 술꾼이라니깐!"

그래도 어제 난 최대한 자제했다. 평소 무제한으로 술을 마시는 미녀들 또한 내 딱한 사정을 많이 봐줬다. 난데없는 보드게임방은 그녀들의 배려에서 비롯된 거였다. 그래도 난 기본은 했다. 맥주에 정종을 열심히 마셨으니까. 하지만 마지막에 시킨 소주는...도저히 못먹겠어서, 한잔만 먹고 나자빠져버렸다. 한방울의 소주라도 아껴먹자는 평소 소신과는 동떨어진 행동이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살고 봐야지.

오늘 보니 내게 항의성 글이 여럿 올라와 있다. 설사에 왜 설사약을 안먹고 소화제를 먹느냐고. 의사 맞냐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먼저 답을 하자면, 난 의사가 아니다. 의사의 기준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은 세가지 그룹으로 나눠진다. 의사, 비의사, 이도저도 아닌 사람. 세 번째는 나처럼 의학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로, 지역사회에서는 의사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들의 말을 들어 이득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한 존재를 일컫는다. 이런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의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 관련 TV를 전혀 보지 않고,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챙긴다고 믿고있는 것. 주로 기초의학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 속하는데, 나 역시 그 중 하나며,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웬만하면 믿어선 안된다.

이제 설사 얘기를 좀 하겠다. 믿기지 않겠지만, 세상 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이는 건 바로 설사다. 콜레라 같은 병에 걸리면 설사량이 하루 5리터도 우스울 정도니, 죽을 만도 하다. 콜레라 말고도 각종 바이러스, 세균이 설사를 일으키는데, 적절한 수액공급을 해주지 않으면 죽게 마련이다. 이미 개발도상국을 벗어난 우리나라는, 제때 병원만 가 준다면 설사로 죽기는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난 설사가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설사를 한 뒤 아픈 배가 가라앉는 경험을 한 적은 다들 있을거다. 그건 설사를 하면서 해로운 것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설사도 우리 몸의 한 방어기전이며, 무조건 나쁠 건 없다. 내가 약국에 가서 지사제는 빼라고 했던 건 설사를 계속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설사는 또 하나의 기회다. 무슨 기회? 살을 뺄 기회. 배가 아프니 먹은 건 없고, 거기다 설사까지 한다면 살은 빠질 수밖에 없다. 월요일부터 죽 조금 말고는 먹은 게 없는 나, 당근 살이 빠졌다. 어제 날 만난 미녀들이 한결같이 "얼굴이 반쪽이 됐어요"라고 해 기분이 무진장 좋았다. 오늘 아침도 역시 굶었고, 설사를 한번 했으니 살은 더 빠질 것이다. 설사의 횟수가 줄어드는 게 아쉬울 지경. 이러니 내가 왜 설사약을 먹겠는가. 배아픈 게 괴롭기 그지없지만, 원래 살을 빼려면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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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6-2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의 결과로 알찬 결실이 맺어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마태우스님 화이팅!!!

sweetmagic 2004-06-2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사선생님~!! 설사하면 수분이 더 빠지는 거 아닌가요 ??
체지방 뺀다고 트레드 밀에서 죽자사자 뛰는 사람보다 무모한 것 같아요
체지방 빼는데는 달리기 보다 파워 워킹이 더 효과적이 듯..설사보다는 ^^
수분만 빠지면요 얼굴이 쭈글탱이 됩니당 ~!!! 그뿐입니까 ?
몇끼만 잘 먹어도 살 빠진거 도로아미타불 됩니다 ~!!

마태우스 2004-06-2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윗매직님/부러워서 그러시는 거 다 알아요^^
로렌초의시종님/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절 알아주는 분은 님밖에 없습니다.

플라시보 2004-06-2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해서라도 살을 빼려 하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이제 아픈 배를 좀 챙기심이 어떨까요? 오래오래 길게 안아프고 술을 마시고 싶으시다면 말입니다.^^

마태우스 2004-06-2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엊그제보다 훨씬 나아지니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지요. 엊그젠 정말...죽는 줄 알았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플라시보님/님같이 날씬하신 분은 저희의 고통을 모르실 겁니다. 흑흑.

진/우맘 2004-06-2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하지만, 그렇게 빠진 살은....금방 돌아오기 마련이지요.^^;;

작은위로 2004-06-2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략적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설사로 살뺀다는 생각에.. 당황의 시선을 보내면서
병원은 가셨나요? 어서 나으셔야지요.
살은 운동으로 빼십시오. ^^;;;;;
그리고 너무 오래 설사에 시달리시면 힘드시잖아요. 안그래요? 그러니 빨리 낫기위한 노력으로 자제하심이 어떠실런지요^^

아영엄마 2004-06-2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 빠져 봤자 반쪽으로 보인다는 얼굴살만 빠지기 다른 곳은 별로 달라지는 거 없을텐데(그래도 배가 조금 들어가긴 하겠죠? ^^;)... 허리띠 점검해 보셔요~ 구멍이 하나 줄어들었는지 보고하도록 하셔요~~ 그리고 아무리 미녀라도 술은 좀 자제하심이... 설

panda78 2004-06-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대**과 기생충이라는 책에 보니 설사하다 죽은 여자가 있던데요!
그 여자도 살빼려고 그런 거잖아요! 마태님, 오래오래 술 드시면서 사시려면 .. 그러심 아니되옵니다!

chaire 2004-06-2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설사를 하고 왔답니다. 설사가 나오기 위해 배가 무진장 아팠구요, 그 아픔 끝에 그 묽으죽죽한 것을 쏟아내며, "그래, 설사는 기회다!"라고 외쳤답니다. 님의 말씀처럼, 물일을 끝내고 나니, 뱃속이 조금 편안해지는군요...^^... 하지만, 설사가 나오기 위해, 우리 몸이 뭔가 나쁜 것을 쌓아두었으리라 생각하면 한편으론 마음이 아픕니다. 님도, 저도, 설사, 너무 자주 하지 말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