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읽고있는 책에서 안 사실인데, 오늘날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별점은 칼 베데커라는 여행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졌단다. 여행광이었던 그는 주도면밀한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는데, 그는 "보통이 넘는 관광지에 별 두 개를 주었고, 그보다 낮은 등급에는 별 하나를, 평범한 관광지에는 별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당시는 여행이 지체높은 귀족들의 전유믈에서 중산층에게 확산되는 시절이었는데, 지체높은 어느 분은 베데커의 별점이 역사적 건물과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한탄을 했단다.
그 한탄이 먹혀서인지 오늘날의 여행지에는 별점이 표시되지 않는다. 대신 별점은 영화에서 왕성히 쓰여, 뭘 볼지 헷갈리는 관객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어 주고 있다. 하지만 신문에 실리는, 영화 전문가들이 매기는 별점은 그들의 높은 식견으로 인해 관객과 철저히 유리되어 있으며, 그걸 따르다간 이따금씩 낭패를 보곤 한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들이 부여한 별점을 믿자니 더 불안하다. 전문가는 그래도 자기가 매긴 것에 책임을 지지만, 익명성에 기대는 일반인은 그런 것에서부터 자유로우니까. 취향이 너무 독특해서 그러는 경우도 있겠지만, 걔중에는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아주 이상한 심보로 별 다섯 개를 남발하는 애들이 반드시 있다. 내가 2003년 최악의 영화 <낭만자객>을 본 것도 그런 것에 속아서인데, 그래도 그런 애들보다는 양식있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은지라 모집단이 커짐에 따라 신뢰도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책에도 별점을 부여하자"는 한 평론가의 주장을 읽은 적이 있다. 책 하면 왠지 좀 고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라 실현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도 한번 해봄직하다고 생각한다. '주례사 비평'라는 비난을 받고있는 요즘의 평론보다는, 평론가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성과 오락성 두 부문으로 나누어 별점을 부여하면 좋지 않겠는가? 이런 내 생각과는 별도로, 인터넷 서점에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일반 독자들에 의해 별점이 매겨지고 있다. 영화판과 달리 물귀신 작전을 쓰는 독자도 별로 없으니, 리뷰와 같이 읽는다면 책을 고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약점은 있다. 저자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경우, 아무래도 후한 별점이 주어지지 않겠는가? 영화판과는 달리 모집단의 크기가 작아 '작전'을 펼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14개의 리뷰가 대부분 측근으로 채워진 내 책의 별점평균이 무려 4개 반이라는 사실이 그걸 입증한다. 그런다고 측근 별점 금지법 같은 걸 만들 수도 없는 노릇,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을 듯하다.
나 역시 책을 읽고나면 별점을 부여한다. 다섯 개를 너무 남발하면 없어 보이니까 웬만하면 4개를, 아주 훌륭한 경우에만 다섯 개를 주는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문학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내가 주는 별점이 다른 독자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내가 후한 별점을 준 책을 다른 분이 "재미없다"고 할 때면 미안해 죽겠다. 그래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읽은 그대로, 소신껏 별점을 줬다는 거다. 사람은 다 다르지만 이 땅 어딘가에는 나와 코드가 맞는 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별점이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지. 그런데 그런 분이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