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5월 9일(일)
장소: 분당의 한 중국집--> 친구집
모인 이유: 친구가 미국에서 와서
마신 양: 고량주 세잔, 양주 취할만큼
부제: 살, 그리고 여자
미국에 간 내 친구-알파라고 한다-는 신부감을 구하러 가끔 우리나라에 왔다. 친구의 조건이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니었지만-가발에, 비만이었으니-미국에 산다는 게 여자들에게 매력적인 듯했다. 여러명의 여자와 선을 본 끝에 그는 한 여자를 선택했고, 그녀를 우리들에게 선보였다. 그녀를 먼저 본 다른 친구의 말, "알파 부인될 사람이 너무 미인이라 놀랐어"
오, 미인!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 아니겠는가. 우린 긴장한 채 신부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녀가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찬사가 쏟아졌다. "역시!" "신이여" "최고다" 친구 부인들의 미모판도를 일거에 뒤바꿀 미녀가 등장한 것이다. 그 뒤 둘은 미국에 갔고, 아기를 하나 낳았다고 했다. 알파의 이번 귀국은, 그러니까 근 5년만의 일이었다.
좀 늦게 모임 장소에 갔다. 난 한눈에 알파를 알아봤다. 가발이 좀 더 그럴듯하게 바뀌었고, 살도 약간 빠진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미녀 부인이 안보인다. "부인은 안오셨니?" 알파가 자기 옆에옆에 있는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순간 난 멈칫했다. 갸냘픈 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듬직한 중년 부인이 앉아 있었으니까. 얼굴에는 미모의 흔적이 남아있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녀가 날씬하든 아니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난 미녀 하나가 저렇게 사라지는 게 그저 안타까웠다.
그녀는 필경 아이를 가졌을 때 졌던 살이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에도 애를 보느라 몸매 관리 같은 건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젊을 때 날씬했던 사람은 원래 몸매를 되찾는 경우가 많던데, 그녀는 예외인 듯 싶다. "어쩌다 그렇게 되셨어요"란 내 말에 그녀는 "포기했어요"라고 수줍게 웃었다.
내 친구 하나는 통통한 게 귀엽다는 여덟살 연하와 결혼을 했다. 그래도 결혼 전에는 다이어트를 했다는 그녀는 결혼 직후부터 패스트푸드처럼 살이 찌는 음식만 골라먹더니, 지금은 70킬로를 훌쩍 넘겼다. 중간에 애를 낳았던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해도,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70을 넘는다니 앞으로도 빠질 것 같진 않다. 친구의 처제, 그러니까 그녀의 동생 역시 무지하게 살이 쪘었는데, 각고의 노력으로 날씬하다는 말을 들을만큼 살을 뺐단다. 그의 말이다. "처제 말야, 지금은 저렇지만 결혼 후에는 아마 본색을 드러낼 걸?" 유지하는 것도 살을 빼는 것만큼 힘든 법인데, 결혼을 하고나면 뭐하러 노력을 하겠느냐는 뜻이란다. 그의 말을 따른다면, 자기 아내가 계속 날씬하길 바라는 사람은 그녀의 여고 시절 사진을 미리 봐야 할 것 같다.
써클 활동을 하다 반려자를 찾은 내 친구, 그가 선택한 여인은 얼핏 보기에도 골격이 있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언젠가 그녀를 태우고 보트를 탄 적이 있는데, 아무리 노를 저어도 보트가 안나갔고, 내려서 보니까 손바닥이 까졌다. 그땐 그래도 살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비대해져 내 친구는 그녀를 부를 때 "뚱땡이"라고 부른단다. 하지만 배가 산처럼 나와버린 그 친구가 부인을 그렇게 부르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돈 남말할 때가 아니다. 나 또한 대학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살이 쪘고, 배를 가리고 다녀야 할 처지가 아닌가. 아이 문제에 상관없이 살찌는 것은 노화의 한 징표인 듯, 한창 때 날씬했던 내 친구들도 다 배가 나왔다. 우리가 그러면서 여자에게만 날씬함을 요구하는 건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남성 위주인 우리 사회는 뚱뚱한 남자는 참아도 뚱뚱한 여자는 용납하지 못한다. 살이 쪄서 고민인 날더러 "그만하면 괜찮지"라고 하는 사람도 여러명일 지경이다. 남자라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