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5월 6일(목), 포항의료원 영안실

마신 양: 참소주 두병 반....

부제: 코드

사람이 많아지면 파벌은 생기기 마련이다. 파벌이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을 주지만, 그게 현실임은 어쩔 수 없다. 예컨대 모 대학 모 교실에서 신임교수를 뽑는데, 두 파벌간에 싸움이 났다. 서로 자신이 미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 어떻게 결정하든 적을 만들게 되버린 인사위원회는 결국 '해당자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는데, 여기서 보듯 파벌이란 "어느 쪽이 더 연구를 잘하나"는 생산적인 방향보다는 저쪽이 잘나갈까 딴지를 거는 방향으로 나가기가 쉽다.

그래도 교수 숫자가 다섯 이상, 한 열명쯤 되면 문제가 없다. 우리 과처럼 기껏해야 둘, 많아야 셋, 넷이 고작인 교실에서는 파벌의 후유증이 더 심각하게 비춰진다. 내가 조교 때, 모교 교수님인 알파와 베타는 사이가 무진장 안좋았다. 알파와 술을 마시면 몇시간을 베타 욕만 하고, 베타와 술을 마시면 그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를 강요하면 아이의 정신이 혼미해지듯, 20대 젊은이였던 나는 그렇게 4년을 보내면서 거의 정신병에 걸릴 뻔했다. 어느 쪽이든 줄을 섰던 다른 분들에 비해, 난 두분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두분 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으로 조교생활을 마친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금은...두분 다 나를 미워한다. 흐흑).

그 두분이 어찌나 사이가 안좋았는지 학회는 물론 별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두분의 불화를 알게 되었는데, 사석에서 "베타 그자식 말야!"라고 한 적도 있으니 모르면 이상하다. 심지어 일본 학자들을 잔뜩 불러다 놓은 환영 만찬에서 두분이 한바탕 한 적도 있을 정도. 아래 사람이 싸우면 쥐어박으면 되지만, 윗분들이 싸우면 아랫것들은 그저 망연자실이다. 철모르는 선배가 "두분 좀 그만 싸우라"고 했다가 더더욱 찍혀버린-알파는 그때 "난 싸우기 싫은데 저쪽에서 그렇게 만들잖아"라고 말씀하셨다-적도 있다. 그 두분이 교수로서 한교실에 지낸 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서로 싫어하며 매일 봐야되는 운명도 그리 유쾌한 게 아니리라. 알파의 말씀이다. "난 복도에서 베타 특유의 껄걸 웃는 소리만 들으면 짜증이 나" 베타의 말씀, "난 알파의 넓적한 얼굴만 보면.... 아유!"

하지만 그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Q대학에 계시는 두분-감마, 델타로 하자-도 거의 대화가 없을만큼 사이가 안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제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포항의료원 영안실, 호상이었으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 그 자리에서, 육개장과 머리고기, 참소주 등 먹고 마실 게 많은 그 자리에서 두분은 험악하게 싸우셨다. 결국 델타는 그로부터 두시간 동안을 밖에 나가 서성였고, 남은 감마는 계속 델타를 비난했다. 그 썰렁한 분위기의 피해자는 바로 나. 끼어들기도 뭐하고 해서 멍하니 몇시간을 앉아 있었는데, 알라딘서 서재질을 할 때는 화살처럼 가던 시계가 그땐 왜이리 안가는지. 알파와 델타가 밤 10시 버스를 타고 떠난 뒤, 난 감마를 모시고 소주 두병을 더 마시며 그분의 회한을 들어 드렸다.

저렇게 싫어하면서 한자리에 있는 것도 재주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 인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역시 코드는 중요한 법, 싫은 사람과 지내느니 혼자가 훨씬 낫다.

* 소주를 마시면서 물을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그 바람에 심야버스가 떠난지 이십분만에 소변이 마려웠다. 40분을 더 참다가 고속도로변에 봤다... 아저씨한테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아니 떠난지 한시간밖에 안됐는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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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5-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싫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죠. 일단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하면 웃음소리랄지 넓적한 얼굴처럼 모든 사소한 것들이 다 미워지니까요. 심지어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편견마저 가지게 합니다. 저도 고졸인 여경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을때-지금은 부처님 가운데토막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잘 지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고졸이면서 경리인 여자들은 모조리 다 미워지더군요. 그런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수도 있는게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일 같습니다. 되도록이면 미워하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어야죠.^^ 그나저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흐흐.

chaire 2004-05-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과 지내는 일이 죽기보다 싫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때로 그런 사감이 사회적, 집단적 파벌, 줄서기로 이어지곤 하지요. 그러면 그때부터 사회는 병이 드는 것 같고, 선의의 피해자도 생기고... 참 풀기 어려운 문제예요...

2004-05-0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5-0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5-0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딜가나 세력다툼이 있기 마련이지만, 교수사회는 좁은 만큼 그런 게 좀더 심하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답니다. 정말 상가에서도 그런 분위기였다니 안타깝네요. 마태우스님이 당하신 수모도 참...전 소주먹을때 물 많이 마셔도 안그러던데...^^

로렌초의시종 2004-05-07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이미 정신병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는듯...... 물론 마태우스님의 적나라한 묘사 덕이지만요.특히 '아래 사람이 싸우면 쥐어박으면 되지만, 윗분들이 싸우면 아랫것들은 그저 망연자실이다.' 맞는 말씀이에요. 학교 다닐 때 자주 겪었던 일이라서요. 아버지께서 같은 학교 선생님이셔서 선생님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메시지 2004-05-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사자보다 가운데 놓여있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살얼음판이죠. 해결할 위치도 아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가고... 당사자들은 어째뜬 감정이라도 풀어놓지만. 정말 싫은 일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고통은 고속버스 안에서 겪으신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더 크셨을 것 같은데...

sweetmagic 2004-05-0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가 몸 담고 있는 곳이 학교라 그런지 몰라도 권력의 위세와 이빨빠진 호랑이라 불리우며 쓸쓸한 뒷 모습으로 납작한 빈 가방 들고 왔다갔다만 하시는 교수님들 보면 가슴이 짠,,,합니다. 다들 그러더군요,,, 저 교수 저래 뵈도 왕년엔.....그런 교수님들, 퇴임 후에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셔서 별안간 세상을 등지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이또한 화려한 지난 날과 상실감 소외감 등등 이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집단 따돌림 당하고 계시는 교수님도 계시죠. 회사에 다닌ㄷ다면 애그 더럽다 하고 사표 쓰고 말면 되지만...그에 비해 폐쇄된 학교란 사회에서는 파벌, 권력 다툼 ,시샘...음해....그로 야기된 여러가지 문제들....그걸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더군요. 얼마전 KBS 한국사회를 말한다 "위기의 지식인, 누가 교수가 되는가", "위기의 지식인 2편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두 편을 보고 동감하면서, 한편으로 씁쓸했습니다. 중립적인 비판적 지식인...그것이 그들의 지향해야 할 모습일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