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5월 1일(토)
마신양: 모른다...
부제: 참패
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남자들은 서서 소변을 보는 걸 무슨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 하나만으로도 여자가 훨씬 더 우월한 인간임이 입증된 거라고 생각된다. 신만이 할 수 있는 생명의 창조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난 여자에게 지는 것을 그리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내 친구의 부인은 나보다 볼링 애버리지가 50은 더 높고, 대학 때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나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 10킬로 마라톤을 뛰다보면 많은 여자들이 내 앞을 가로질러가고, 박세리는 어떤 남자보다 골프를 잘친다 (내가 아무리 연습을 한다해도 그녀만큼 쳤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먹는 것에 관해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체중이 더 나가면 아무래도 많이 먹게 마련이다. 대학 때 아주 뚱뚱한 선배가 사발면에 물을 붓기에 '저거 먹고 되나' 생각을 했었는데, 테이블로 가니 큼지막한 도시락이 있다. 그것도 부족한 듯 빵까지 사는 걸 보고 "역시..." 하면서 감탄한 적이 있다. 술도 마찬가지다. 키가 크고 살찐 사람의 혈액량이 아무래도 더 많으니, 같은 양을 마셔도 혈중 알콜 농도는 더 낮게 마련이지 않는가. 실제로 난 체중이 불고 난 뒤 주량이 약간 더 늘어났고, 나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그리 흔치 않다. 하지 않는가. 일주에 두 번 이하로 마신 주가 거의 없을만큼.
그래서 난 우주님과의 대작에서 여유있게 이길 줄 알았다. 176에 80킬로의 나, 167에 50킬로가 못되는 우주님, 누가 봐도 뻔한 승부였다. 하지만 난 참패했다. 그것도 체중과 정비례하는 생맥주로 붙었는데. 남은 사람들이 3차를 가서 새벽 세시까지 술을 마셨다는 대목에 이르면 스스로가 너무 왜소하고 한심하다. 이 정도 실력으로 "한판 붙자"고 큰소리를 쳤으며, 술일기를 연재한단 말인가. 결과를 궁금해하던 내 친구 하나는 내가 졌다는 말에 "니가 그렇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난 술은 잘 못하지만, 열심히 마실 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을 잘볼 확률이 높지만, 술을 열심히 한다고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술은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우려먹는, 매우 불공평한 스포츠다. 그간 숱한 패배를 당했지만, 난 그걸 "운이 없어서" "피로가 누적되서" "안주를 안먹어서" "머리를 안감아서" 등으로 돌려왔다. 하지만 그건 운이 아니었다. 실력이 없었을 뿐이다. 이따금씩 맛보는 승리의 쾌감이 올바른 판단을 방해해 온 탓일 것이다.
어제 패배를 계기로, 겸허하게 살기로 했다. 양으로 마시기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며 조금씩 마시련다. 습관이 워낙 잘못들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봐야지 않겠는가. 술의 전사 마태우스는 이제 죽었다. 대신 달을 보며 술을 즐기는 풍류객 마태우스가 있을 뿐이다. 내 부족함을 깨닫게 해준 우주님께 감사드린다. (담번에 제가 컨디션 좋을 때 봅시다!!)
* 오늘 전화가 왔다. "민아, 오늘 애들이 시간 된다는데, 술한잔 하자!" 좋다. 우주님께 당한 수모를 애들한테 갚아야지. 음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