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즈마님이 서재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게 글을 남겼다.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첫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그간 이런 협박-내 첫 책을 공개하겠다는-을 여러번 받았고, 그때마다 돈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거듭된 회유에도 오즈마님은 타협을 거부했다. 우리의 논쟁을 지켜보던 플라시보님은 급기야 내 전 책 두권을 주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독서토론회까지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걸 계기로 난 지난 7년간 펴보지 않았던 내 첫 책을 다시금 펼쳤다. 수필은 건너뛰고 소설만 읽었는데, 유치하긴 해도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다. 캥거루가 사람의 피를 빤다는 '돌아온 식인 캥거루', 지구가 평평하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해 미국으로 가는 조선인들의 얘기를 다룬 '메두사', 강부자의 방송국 장악음모를 다룬 '삼국지', 읽는 동안 추억에 젖기도 하고, 가끔은 웃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내가 왜 그동안 부끄러워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 내 자아도취가 생각보다는 중증이다.
아마도 이래서일 것이다. 그래도 제법 괜찮은 책이라고 자부하는 내 최신작이 8년전의 책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인정하기가 싫었던게지. 소설 구성의 엉성함이나, 가끔씩 구사되는 어줍잖은 유머 등을 보면 내 글쓰기 수준은 8년 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것도 모른 체 난 내가 크게 성장했다는 환상 속에서 꽤 오랜 기간을 살아왔다.
책을 읽다보니 당시의 내 생각이 어땠는지를 회고할 수 있었다. 그때 난 동성애자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었다. '게이' 대신 '호모'라고 부른 것도 그렇고, 등장인물을 쓸데없이 게이로 묘사한 것, "어딜 가나 호모들이 득실거리는군"이라는 멘트는 내가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사람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때의 난 우리나라가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고, 성폭력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었던 것 같다. <민족의 영웅 마태우스>라는 단편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발심이 느껴진다.
단편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여인이 있다. 미인으로 묘사되는 그 여인은 내가 책을 쓸 당시 내 애인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난 그녀와 결혼하지 못했고, 그녀는 현재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다. 잘될지 어떨지도 모르면서 책에다 실명을 공개하는 건 지금사 돌이켜보면 그리 현명한 행위는 아닌 것 같다. 남자야 별 상관없지만, 여자는 어디 그런가. 그렇게 보면 그 책이-그래도 1만부쯤 팔렸었지만-베스트셀러가 안된 게 다행이다. 게다가 그 책에는 내 주민등록번호가 그대로 적혀 있는데, 그로 인한 피해가 없는 걸 보면 역시 책이 안팔린 덕을 본 거다.
그 책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물론 저만의 생각이고, 다른 분은 절대 봐서는 안됩니다-난 잃었던 자식을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괜찮은 녀석을 지금껏 버린자식 취급했구나, 하는 마음이랄까. 내 책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대신 사랑해 주겠는가. 책의 수준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그 당시 나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책을 쓸 때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그리고 내 책들을 좀더 사랑하련다. 책은 내 자식과도 같으니까. 오즈마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