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거울을 처음 본 초등학교 2학년 때, 난 매우 놀랐다. 내 나름으로는 자신에 대해 매우 멋지게 생겼다는 상상을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내 컨셉을 '귀여움'으로 정했고, 그 뒤부터 계속 그렇게 살고 있다. 그 작전은 제법 성공을 거두어서 뭇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터프함'이라든지 '심각함' '능글맞음' 등을 컨셉으로 삼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내 외모에 능글맞기까지 하다는 건 네글자로 '설상가상'일 테니까. 하지만 여성에게 어필하는 건 몇 번 봐서 익숙해진 경우나 해당되지, 처음 본 여성들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내가 부킹을 시도했다 퇴짜를 맞았던 쓰라린 경험을 기술해 본다.

친구랑 부산에 놀러갔다. 그 친구와 이틀간 술만 퍼마시다가-맥주병이 서른개가 넘게 나왔다는 설이...-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킹을 하기위해 바닷가로 갔다. 저 멀리 여성 셋이서 파도놀이-파도가 밀려오면 꺄악 하고 도망치는 x라 유치한 놀이-를 하고 있다.
"나만 믿어!" 난 친구에게 큰소리를 치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등을 내쪽으로 보인 여성들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저...." "악!"
그 여자는 뒤를 봄과 동시에 비명을 질렀고, 난 놀라서 잽싸게 도망쳤다. 그날 밤도 난 친구랑 열나게 술을 먹었고, 다음날 서울에 갔다. 술만 먹으려면 도대체 왜 부산까지 갔을까?

진주에 갔다가 서울에 가려는데, 앞에서 표를 산 아름다운 아가씨의 좌석번호가 운좋게도 내 옆이다. 속으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더니, 이럴 수가. 버스 승객은 겨우 다섯명. 그 여자는 당연히 내 옆에 앉지 않고 다른 곳에 앉는다. 다섯시간을 심심하게 갈 것인가, 난 심각하게 고민했다. 심장이 오부지게 뛴다. 그 여자 쪽을 보니 유리창만 보고 있는 게 영 심심해 보인다. 두시간을 그러고 있다가 용기를 내서 그녀를 불렀다.
"저...저랑 얘기나 하면서 가면 안될까요?"
여자, 놀란 눈으로 고개를 젓는다.
"진짜 안돼요?"
여자, 여전히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거절을 당하면 무지하게 x팔리는 법, 난 맨 앞자리로 가서 "야구중계를 틀어달라"고 공연히 아저씨에게 성화를 부렸으며, 별 재미도 없는 야구를 들으며 서울까지 왔다. 그래도 시도를 하기 잘한 것이, 할까말까 망설였던 두시간이 너무도 내겐 힘들었다.

친구를 따라 나이트에 세 번인가 간 적이 있다. 내가 알던 나이트와 많이 달라진 그곳에서는 웨이터들이 여자손님의 손목을 붙잡고 남자 앞에 앉혀주곤 했는데, 내 친구 앞엔 한번 앉으면 오래도록 앉아 있던 그녀들이 내 앞에만 앉으면 후다닥 도망친다. 내 특기인 토크를 하려면 "저...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될까요?"라면서 가고, "전화가 와서 받아야 한다"고 나가고, 심지어는 앉자마자 바로 일어나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녀들은 날 미워하는 걸까? 그 세 번 이후 난 나이트라는 곳을 간 적이 없는데, 날 나이트로 인도했던 그 친구는 아직도 나이트를 누빈다.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준 뼈아픈 교훈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그 밖에도 신촌 어디선가 그 어렵다는 길거리 헌팅을 실패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내가 한 말은 "저..."가 전부였다. "저" 다음에 나오는 말이 궁금하지도 않는지, 왜 그말만 하면 다들 도망가는 걸까? 그녀들은 내가 미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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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죠-브 2004-04-2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태우스님 너무 웃겨서..전에 제가 이런얘기를 한번 들은 적이 있죠? 근데도 너무 웃겨서..님에겐 뼈아픈 좌절감일텐데..정말 너무 웃기네요. 그러기에 지금의 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위안을..^^

가을산 2004-04-2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낯선 남자를 무서워하는걸거에요.... ^^

플라시보 2004-04-2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 님 말이 맞는듯. 저 역시 지나가다 누가 저..하고 말을 걸면 그 사람의 생김새나 누구인지 여하를 막론하고 막연하게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걸어가는데 차를 세우면 막 쫄아서는 인도 안쪽으로 더욱 다가가려는데 차창이 찌익 열리면서 '저..길좀 물읍시다' 하면 쪽팔리지만 그래도 '저...아가쒸 어디가서 커피나 한잔 때릴까?' 보다는 훨씬 안심이 됩니다. 저처럼 세상천지 무서울게 없는 것 같은 여자도 그런데 이쁜 여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님 실망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도 기본적으로 잘 모르는데 말거는 남자들은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님이 저렇게나 많이 부킹을 시도한 얘기를 읽고 좀 놀랐습니다. '심하게 멀쩡한 사람도 부킹을 하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책읽는나무 2004-04-2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맞아요....
낯선 남자가 그렇게 다가오는건.....안다가와도.....눈빛 마주친다는것 자체도 좀 무섭게 생각됩니다.....요즘 세상이 또 워낙~~~~^^
그때 유치한 파도놀이 하면서.......마태님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리치면서 도망친게 좀 죄송할따름입니다.....세상이 워낙 무서워서리~~~~^^그렇게나 파도놀이가 유치했었나요??

이젠 도망안갈 자신이 있는데....세상이 정말 무서워졌나?? 다가오는 남정네가 없네요......
ㅎㅎㅎ

비로그인 2004-04-24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타이밍이고 용기아닌가요. 다음번에는 파도가 밀려갔다 다시 올때를 예리하게 파악,여성분들이 " 꺄~~악 "하고, 뒤로 한발 살짝 , 폴짝거릴 때 우연히 뒤로 지나가는 척 하다 "엇..."하고 손이라도 살짜쿵 잡아주시죠. 그리고 " 괜찮으시죠 ? " 하고 멋진 눈빛 따사롭게 한번 날려주시구요..명심할 것 !! 갑작스런 스킨쉽으로 다가간 상대에게 취해야 2차 전투 전략의 핵심어는 무심한 듯 한 태도 입니다, 님 특유의 징글한 미소와 무심함의 적절한 조화로 다음번엔 부킹의 제왕으로 거듭나시길 ㅎㅎㅎ.
영 무심하면 어쩌냐구요 ? ㅋㅋㅋ 그래도 손은 잡았자나요. 그리고 그녀...분명히 기억할겁니다.
어떤 기억이 될지는 정말 님의 몫이죠 ㅎㅎㅎ

진/우맘 2004-04-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저는요, 친구 세 명이랑 같이 나이트를 갔는데, 웨이터가 친구들은 다 한 번씩 끌고 나가면서, 저에게는 끝까지 아무 어필을 않더군요. 그 참......더럽던 기억!

갈대 2004-04-24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반대로 여자들이 '저...' 하면 화들짝 놀랍니다. 뭐 거의 길을 묻는 일이긴 하지만요..-_-;;

groove 2004-04-2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화이팅

비로그인 2004-04-2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이 더 나빠요...그건 위로가 아니예요 groove님처럼 화이팅 하시지!!
마태우스님 화이링!

waho 2004-04-2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님은 너무 귀여우세요. 님 땜에 웃고 갑니다.

마냐 2004-04-2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싯적엔, '낯선 남자'의 작업이 무서웠는데...음, 요즘 그런 일이 생기면, 넘 귀여울 거 같아요...ㅋㅋㅋ 마태우스님, 화이링~

마태우스 2004-04-2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흠...그러니까 30대를 상대로 작업을 하라는 말씀이지요?
강릉댁님/제 컨셉이 귀여움 아닙니까. 음하하하.
폭스바겐님/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groove님/화이팅이라면, 싸우라는 뜻인가요?^^
파란여우님/역시 님은 멋쟁이십니다. 그 연배에도... 대머리는 미워해도 뚱땡이는 미워하지 마옵소서.

마태우스 2004-04-25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님의 컨셉도 저와 비슷한 듯 싶군요.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진우맘님/그 웨이터들이 정선경을 몰라보는군요. 물좋은 나이트를 다니시는 게 좋을 듯.
sweetmagic님/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하십시오. 님이 표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음하하하.
책읽는나무님/여기서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그때 왜 그러셨어요?^^접근하는 남정네는 없어도, 님은 충분히 멋지십니다. 사진도 다 봤지롱.
플라시보님/저 부킹시도 위에 쓴 게 다예요!! 억울해요.

마태우스 2004-04-2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폭스바겐님 말씀대로 위로가 안되는걸요? 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듯...
토끼똥님/가장 먼저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좌절이 다른 이를 웃길 수 있다면, 전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