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분 정도 지각하는 것은 예의"라는 평소 주장에 걸맞게, 난 9시가 넘어서야 천안역에 도착을 했고, 그 덕분에 버스 안에서 기사분이 틀어놓은 여성시대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여성의 글을 MC-양희은이 아닐까?-가 낭독한다.
"친정 부모님이 생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는데요, 남편에게 여행비 좀 보태드려야지 않느냐고 했더니 '한 5만원 드리지 뭐'라고 하더라구요"
맏딸인 그녀는 그 말을 하기 전 여동생으로부터 "우리가 20 할테니, 언니네는 30 드려라"는 전화를 받았으며, "그래. 걱정 마라!"라고 큰소리까지 친 터였다.
5만원이라, 그녀 말마따나 무슨 수학여행 가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 액수면 차라리 안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돈이 없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남편에게 그랬죠. '지난 설 때도 회사에서 받은 효도비 10만원, 시부모님한테만 몰래 보낸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왜 우리 부모님한테는 단돈 1만원도 안드려? 난 시댁식구 생일도 다 챙기는데, 당신은 처가 식구들 생일 챙겨 봤어?' 그랬더니 남편은 '생각 좀 해보자'고 방으로 들어가더라구요"
뭘 생각을 해? 잘못했다고 하고 20만원쯤 드리겠다고 할 일이지. 그녀 말에 의하면 남편은 정말 "알뜰"하다지만, 그럴 때마저 돈을 안쓴다면 그 알뜰은 무엇을 위한 알뜰일까?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구나 하며 방송을 듣는데, MC가 '결과가 궁금하다'며 그 여자에게 전화연결을 한다. 나 역시 결말이 궁금했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아침에 남편이 '알아서 해!'라고 하면서 나갔어요"
돈이나 주면서 그런 소리를 해야지, 어떻게 그럴 수가? 당연한 일이지만 여인의 넋두리는 계속된다.
"저희가 도련님 데리고 살면서 학비가 모자라다고 해서 50만원 대준 적도 있구요...도련님 생일은 지금도 꼬박꼬박 챙겨요.."
그렇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아내에게만 "우리 부모님을 친부모처럼 모셔라"고 해놓고, 처가 쪽 일을 나몰라라 하면 가정이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MC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수가 없다.
"이성을 가지고 대화를 하세요!"
후후, 대화라는 게 좀 바뀔 가능성이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쭉 들어보니 그 남자는 영 틀린 것 같다. 여인은 말한다. "저 남자 믿고 어떻게 평생을 사나 싶어요"
그렇다. 그 남자를 믿으면 안될 것같다는 필이 강력하게 온다. 그래서인지 그 여인은 패물이라도 팔아서 여행비를 마련해 줄 거라고 한다. 부모님이 섭섭하지 않으시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는가. 지금의 문제는 남편이 경제권을 쥐고 있어서 생기는 일, 가능하면 그 여성도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경제적 독립이 없이는 언제나 목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니네들 다 벌어먹여살리잖아"라는 남편의 헛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지겨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