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은 내가 읽은 추리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비단 추리가 아니라 소설 전체로 범위를 확장해도 부동의 1위일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은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느낌이 생생히 살아있다. 살인범이 피해자의 여동생에게 “난 피스라고 해”라고 하는 장면은 생각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데, 그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혼자 거울을 보면서 그 대사를 따라해 보기도 했다. “사람들은 날 피스라고 부르지.”
물만두님은 알라딘을 통해 알게 된 분들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건 만두님이 추리소설 리뷰를 많이, 그리고 잘 써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만두님은 내게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 주셨다. 만두님을 잘 모르던 초창기엔 대체 만두님은 왜 택배 온 걸 가지고 페이퍼 하나를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야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살날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으니, 아무리 사소한 일도 큰 의미가 있었던 거다. 길이야 다르지만 우리도 한정된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난 주위에 있는 것들에 그리도 무관심했을까 하는 반성을 만두님을 알아가면서 했었다.
모방범은 한 젊은 여성이 귀가길에 실종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이후에도 죽는 사람은 주로 젊은 여성으로, 이것이 모방범에 보다 더 몰입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하느님을 믿는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를 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 기도를 한다. 하지만 가끔은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생에서 잘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나로선 하느님이 무슨 이유로 물만두님을 저렇게 빨리 데려갔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래선 안되는 거였다. 까르르 웃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20대 중반의 여자애가 걸음을 못걷게 되어 병원을 찾아갔을 때, 그리고 자신이 불치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조금씩 조금씩 몸의 기능이 죽어갈 때, 그의 심정은 어떠할까? 겪어보지 못한 나로선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아마도 내가 살면서 가장 우울했을 때의 몇억배에 해당하는 충격이 엄습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을 나날들을 물만두님은 이겨내려고 애썼고, 그 고통을 2천편에 가까운 리뷰와 그보다 더 많은 페이퍼들로 승화시켰다.
모방범을 읽고나서 겪게 된 후유증은 그 후부터는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을 읽어도 시큰둥해진다는 거다. 만두님을 알게 된 후 달라진 것은 중국집에서 물만두를 먹지 않게 된 것과 물만두를 보면 나도 모르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죄송한 것은 요 몇 년간 물만두님한테 거의 댓글을 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번이라도 더 웃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바쁨을 핑계로 외면했던 내가 부끄럽다. 사람은 누구나 가버리면 끝이고, 그 전에 잘 해드려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곱씹게 된다. 하늘나라라는 게 있다면 만두님은 아마 거기서 탐정이 됐을 것 같다. 거기서는 튼튼한 두 다리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사건을 해결하겠지. 그간 쌓은 내공으로 미루어 볼 때 만두님은 어마어마한 탐정이 되셨을 거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이가 하늘나라에는 없을 것 같은 이유다.
* 알라딘에서 물만두배 추리리뷰대회를 연다는 걸 오늘 아침에 알았다. 1등을 할 리도 없지만, 같은 서재 1세대로서 이런 기회를 노려 적립금을 탄다는 게 죄스럽게 생각됐다. 그래서 이 글을 리뷰 대신 페이퍼 카테고리에 올린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응모가 아닌, 보다 많은 응모를 독려하는 추모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