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40번째를 돌파했다. 70일 가량 지난 시점에서 40번이니, 12월의 특수를 감안하면 200번을 넘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좀 안정이 되려나...

부제: 가부장의 벽을 넘어서

일시; 3월 10일 수요일
참석자: 내 친구 둘, 박노준(가명. 이하 박), 장돌십(가명, 이하 장)

1. 박
'박'은 초등학교 때부터 내 친구였다.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지만, 그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동안 난 외적인 화려함만 쫓으며 그를 멀리했고, 그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고, 앞으로는 그로부터 받은 우정을 갚아갈 생각이다.

'박'은 애처가다.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박'처럼 "아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는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작년에 아내가 난소암으로 병원신세를 졌을 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 곁을 지켰다.

'박'은 남자들이 환장하는 유흥주점에 가지 않는다. 그게 '박'의 빛나는 부분으로, 나처럼 여권이 어떻고 하는 놈들이 뻑하면 그런 곳에 가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그는 타락한 우리를 따라 몇번 그런 곳에 갔지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안가겠다고 선언했고, 그 후부터는 자신의 결심을 지킨다.

내가 아는 가장 착한 사람인 박에게는 시련이 여럿 닥쳤었다. 아버님의 사업이 부도를 맞아 아버님이 감옥에 갇히는 일을 겪기도 했고,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위기에 처했었다. 그때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것은 평생의 미안함으로 남을 것 같다. 지금 그는 인천 제부도 근처의 직장에 출퇴근을 하는데,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아침 6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단다. 몸은 힘들지만 그의 집에는 사랑이 넘치고, 그런 그를 보면 나도 즐겁다.

2. 장
장은 공처가다. 아닌 게 아니라 부인을 좀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는 늘 "부인이 무서워서 딴짓을 못한다"고 말을 한다.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어릴 적부터 성실하고 모범생이었던 그가 대단한 딴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정말 부인에게 잘한다. 그런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곱 살 연하의 부인과 너무나 잘 놀아주는데, 얼마 전 첫 얘기를 낳은 뒤에는 더더욱 극진해졌다. 그의 말이다. "기저귀 갈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는 거랑, 청소하는 건 내가 해" 틈나는대로 애까지 본다는데, 그것 말고 할 일이 또 뭐가 있을까? 하지만 그의 아내는 거기에 길들여져 그걸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는데, 심지어 "조금 더!"를 주문하기도 한단다.

살인적인 회사일에 시달리느라 하루 세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그는 내가 부탁하면 언제든 시간을 내어 준다. 예컨대 내가 사재기를 하러 교보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그는 없는 시간에도 흔쾌히 따라가 줬다. 그는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좋은 테니스 파트너이기도 하다.

"난 말야, 집에 가면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 재떨이 그러면 마누라가 재떨이를 갖다주고, 리모콘 그러면 리모콘을 갖다주지" 나보다 불과 몇 년 위의 선배가 한 얘긴데,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이런 사람은 존재한다. 장과 박의 존재가 돋보이는 건 바로 그래서이고, 그게  내가 그들을 더더욱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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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3-1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과 박을 저의 남편에게 소개시켜주세욧! ^^

비로그인 2004-03-1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있는 친구들이고 가장들이네요!! 부럽다~그런 남자들이...

진/우맘 2004-03-1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는 갑자기 장의 부인이 궁금해지는군요.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며 세 시간 밖에 못자는 남편에게 기저귀, 빨래, 밥, 설겆이, 청소를 맡기면....본인은 뭘 하는거지요?
마광수의 외뿔에서 이런 글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주병 환자는 언제나 왕자님을 찾지만...필경은 머슴하고 결혼하게 된답니다. 아무리 멋진 왕자님도 공주병 환자와 결혼하면, 이내 머슴으로 변모하고 마니까요. (대략의 내용^^ 정확히 기억 안 남^^;;)
흠...하기사, 다른 부부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샘나서 툴툴거리는 듯^^;;;

플라시보 2004-03-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에 제가 누군가와 결혼을 해서 재털이! 그럼 재털이로 비오는날 먼가 풀풀 나도록 패 줄 것이며 리모콘! 하면 리모콘을 부메랑처럼 휙~ 던져서는 정확하게 리모콘 하고 말한 그 입을 맞출 겁니다. 흐흐. 그런 남자를 만나지 않으려면 어째야 하는 걸까요? 사실 결혼 전부터 그런 티를 팍팍 내면 여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할테니 아마 연애시절에는 철저히 숨기겠지요? 그래놓구선 결혼하면 슬슬 본색을 드러내리라 생각합니다. 사전 감별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저에게는 그걸 간파해 내는 눈이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기필코 결혼 전에 데불고 살아 볼랍니다. 어느날 '재털이!' 라고 말하면 '13번 탈락. 싸게 싸게 짐싸 주시고 다음 타자 입장' 할래요. 흐흐

갈대 2004-03-1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결혼해서 장의 경우처럼 될까 두렵습니다...

2004-03-11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04-03-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의미심장한 시대변화이군요...^^....울신랑은 어느편에 속하나??...시부모님과 같이 살기전에는 공처가 비슷하게 행동을 하던데...(안하면 나한테 피(?)를 봤거든요..^^)...요즘은 님의 선배처럼 되어가네요...남자들은 부모님앞에서 마누라도와주는건 좀 힘든가봅니다...그래도 내가 일부러 시킬때도 없지않아 있지만서두요...암튼 님의 친구분들이 부럽군요..아니지!! 친구분들의 부인이 부럽군요..ㅋㅋ...친구를 보면 그사람을 안다고 했는데 그럼 님도.....음~~ 마태우스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군요...^^...그리고 저는 이 술먹는 횟수 카운트를 보면 저의 페이퍼중 카운트를 보는듯하군요...이카운트수도 저를 이기셨습니다요....^^

마태우스 2004-03-12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장의 부인은...애를 낳았잖습니까.
갈대님/호호, 그럼 갈대님도 일등신랑감이시군요!
플라시보님/자유롭고 독립적인 지성이신 님께서 가부장 남편과 살 수는 없으리라는 걸 저도 잘 안답니다. 마지막에 쓰신 방법이 아주 좋군요.

마태우스 2004-03-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그럴 수는 있지만, 소개시켜 드린다고 부군이 바뀌지는 않겠지요. 걔네를 보니까 그런 건 타고나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책읽는 나무님/저도 그 친구들의 부인이 부럽다니깐요...
폭스바겐님/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