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책을 썼다.
그가 쓴 책이 마음에 안드는 건 그의 자유다.
어떤 책이 재밌는지 아닌지는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뿐더러,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다.
내 심복이, 유방암 말기라 온몸에 암이 전이된 내 심복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추리소설은 보내지 마세요. 인생이 무서운데 책까지 무서우면 어떻게 살라구요.”
그래서 난, 더 이상 그에게 추리소설을 보내지 않는다.
그 대신 보낸 책이 <플라이 대디>같은, 희망을 전하는 책이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상황이 중요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고,
책에 대한 평가를 결정짓는 건 성향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성향이 어떤 작가와 맞지 않는다면
그 작가의 책을 안사면 되는 거다.
한두번은 속임수로 책을 팔 수 있어도 세 번째는 어려운 것이
바로 그 때문인데,
성향이 안맞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책을 사고 후회하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고 부른다.
내가 최근 들어 정말 재미있게 읽은
정혜윤 저 <런던을 속삭여 줄게>에 대한 하이드님의 글을 읽었다.
하이드님은 프로야구에 있어서는 내 동지지만,
책에 대한 성향은 많이 틀린 것 같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역시 정혜윤이 쓴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의 감상문에서
하이드님은 이 책을 좋게 본 다른 리뷰들을 ‘의심가는 리뷰’라고 단정짓고
저자와 그 책을 혹평한 다른 리뷰를 등에 업고
호의적인 리뷰를 쓴 사람은 저자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해놨다.
http://www.aladin.co.kr/shop/common/wbook_talktalk.aspx?page=2&ISBN=8971847794&CommunityType=MyPaper&SortOrder=&IsOrderer=2
그러니까 그렇게 후진 책에 대해 좋은 리뷰를 쓴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는 것이 그 페이퍼의 결론인데,
그땐 그 페이퍼에 대해 흥분했었지만,
곧 후회했다.
사람은 누구나 두 번의 실수를 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그게 정혜윤 피디의 두 번째 책이었다).
하지만 정혜윤이 또다시 책을 냈을 때,
그리고 하이드님이 가시돋힌 감상평을 쓴 걸 봤을 때,
난 도무지 하이드님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 깝깝해서 가슴이 막 벌렁거린다...진짜 재미없는데,
오버까지 하니, 앞으로 남은 분량을 다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중이다.]
여기까지 읽고 남은 글을 다 읽어야 하는지 살짝 고민했다.
이 친구, 바본가?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책이란 말이다.
저자의 성향과 책 스타일에 대해 처음 본다는 듯
저따위 이상한 말을 쏟아 부으면 어쩌라고?
http://blog.aladin.co.kr/misshide/3154450
[닉 혼비는 재미없는 책은 덮으라고 했고,
다니엘 페낙 아저씨도 재미없는 소설을 읽지 않을 독자의 권리를 소리높여 외쳤는데,
난 그래도 이왕 깔꺼 끝까지 읽고 까자는
'혹평 or 악평의 기본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면서 한껏 즐거워하다가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에서 살짝 질투를 느끼고,
런던을 속삭여줄께에서 이빠이 짜증을 느끼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다시금 궁금해진다.
같은 작가의 책을 매번 사면서 짜증을 느낀다면,
그건 바보가 아닐까?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서재의 달인이 바보일 리는 없는데,
도대체 뭐란 말인가.
표지에 드러난 저자의 미모에 질투가 난 걸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이드님이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껴 이따위 페이퍼를 쓸 리가 있겠는가?
너무 궁금해 지인에게 “하이드님 왜그럴까?”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걔, 이쁘고 글 잘쓰면 싫어하잖아!”
난 이분의 말을 전적으로 믿진 않는다.
하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무지하게 싫어하는 작가의 책을 매번 사면서 거품을 무는 건,
그거 말고는 해석이 안되니까 말이다.
하기사, 내가 하이드님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괜히 이해하려 하지 말자.
각자의 삶을 사는 것도 어려운 세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