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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자리가 없어 6개월간 놀던 주인공 강인호는 아내의 도움으로 '무진'이라는 도시로 혼자 내려가 특수학교 교사가 된다. 그 도시에는 과거에 알고 지낸 대학 1년 선배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고 애 둘을 데리고 살고 있다. 이쯤되면 그 뒤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안봐도 비디오다. <도가니>라는 책 제목처럼 둘이서 도가니탕을 먹다가, 소금을 건내 주던 중 둘의 손이 부딪히고, 둘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아무일도 아닌 듯 웃으며 도가니탕을 먹고, 그리고 입구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뭐 대충 스토리를 예상했던 내게, 이어지는 스토리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빴다,가 아니라, 그런 스토리라서 정말 고마웠다. 정의가 이기는 건 <마징가 제트>에서나 가능하다는, 나이가 든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진리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도가니>가 가진 놀라운 흡인력에 압도당한 내 머리는 어느 새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되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강인호는 말한다.
"새미 엄마(아내) 잘 들어. 나 그 아이들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건, 너무 아니야. 너무 아닌데, 그걸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 가더라도 말하고 가려는 거야. 이건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169쪽)."
하지만 주인공의 목소리는 허공에 흐트러질 뿐이고, 세상은 늘 불의하고 가진 게 많은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때 그 사건은 어떻게 됐냐?"
나한테 가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책의 주인공이 보여준 용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몇 달 전 그 일을 벌일 때 내가 가졌던 마음은 강인호의 것과 비슷한 거였으리라. 그 사건 역시 내가 "너무 아닌, 그래서 이건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외치고 싶어서 자행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건 역시 적당히 흐지부지 되는 것 같다. 승진이 취소되긴 했지만 그 교수는 여전히 그 대학의 교수로 있고, 얼마 전에는 학술진흥재단에서 주는 연구비도 받았다. "모교 교수로 오고 싶어하는 지방대 교수가 꾸민 음해"라든지 "교수들간의 정치적 알력이 빚은 해프닝"이라는 그 교수의 주장은 의외로 사람들에게 잘 먹혔다. 심지어 그 교수와 공동 연구를 했던 모 연구사는 "연구결과 보고서 조작이 TV에 나올 일이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당사자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반면 난 그리 편하진 않다. 모교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학회에서 하는 어떤 행사도 가지 못하는 것, 그리고 가끔씩 지인을 통해 "잘못했다고 빌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지도교수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 등이 내가 겪는 구체적인 피해인데, <도가니>의 주인공처럼 해고를 당할 염려는 없으니 다행이다 싶다. 그러고보면 우리네 세상은, 너무 아니다. 진짜로.
* <도가니>를 읽다가 <괜찮다 괜찮아>를 사려고 서점에 잠시 들렀는데, 젊은 여자 한명이 날 빤히 쳐다본다. "이놈의 인기는..."이란 생각을 하려는 찰나, 그녀가 묻는다.
"저, 이 책 재밌어요?"
난 말했다. "흡인력이 엄청나요. 딱 제 스타일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가니>를 집으러 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오늘밤 재미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겠지. 공작가님, 제가 님 책 한권 더 팔아드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