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의 화장실은 방이 두 개씩 있다. 거기 앉아 일을 볼 때마다 난 화장실을 왜 이렇게 개방된 구조로 만들었는지 의문스럽다. 위, 아래가 터졌으니 안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는가. 난 그런 것에 워낙 민감해서, 옆방에 누군가 있으면 다른 층으로 내려가곤 한다. 내가 안에 있는데 다른 이가 소변을 보러 오는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난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어떤 것도-고체나 기체 모두-내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내가 내는 소리를 그가 듣는다면 속으로 이럴 거 아닌가. "에이, 재수없어!"

오늘도 그런 일이 생겨 온몸의 힘을 줬다. 그런데 세상에, 나도 모르게 방귀를 뀐 것이다. "뽀옹" 소변을 보던 이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역시나 화장실은, 폐쇄된 구조로 만들어져야 한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밖에 전달되지 않도록 말이다. 물론 그러다보면 냄새에 질식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환기 시설을 잘 갖추면 되지 않을까?

하기사, 남자끼리 쓰는 화장실이라면 별의별 소리가 나도 에라 모르겠다, 라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남녀공용 화장실의 경우다. 난 우리나라 술집의 화장실은 왜 죄다 남녀공용인지 모르겠다. 내가 소변을 보는데 뒤로 여자가 왔다갔다 하는 것도 민망하기 짝이 없고, 여자와 좌변기를 같이 쓴다는 게 미안해 죽겠다. 내가 큰일을 보는데 여자가 밖에서 기다리는 것도 쑥스럽지만,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내가 무슨 죄를 짓는 기분이다. 왜 이런 야만의 상황을 만드는 것일까. 이왕 짓는 거 좀 크게 만들어 남녀를 구분한다면, 테이블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더 자주 갈텐데.

기차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그건 전부다 남녀공용인데, 그래서 난 웬만하면 기차 화장실을 안쓰려고 한다. 힘이 들 땐 허벅지를 휴대폰 안테나로 찔러가며 참는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기차 화장실을 갔다. 먼젓번 사람이 그랬는지 변기에 대변이 강력하게 달라붙어있다. 두 번이나 물을 내렸지만 안내려간다. 그냥 앉아서 일을 본 뒤 물을 내렸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웬 여인이 기다리고 있다. 낭패였다. 그녀는 아마도 변기에 붙은 대변이 내 소행인 줄 알겠지. 나 아닌데. 정말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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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곰돌이 2004-02-1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겨찾는 서재인데요 마태우스님의 글은 정말 재밌고 읽기 좋아요 너무 재밌어요 ^ ^♡ 앞으로 재미있는 페이퍼 많이 올려주세요 ^ ^*

2004-02-19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02-1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퍼곰돌이님/아, 네.... 감사합니다. 역시 화장실 얘기가 제일이라니깐요^^

비로그인 2004-02-1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마지막 너무 웃겨요~ 여자끼리 써도 별의별 소리 다 날까 신경쓰이던데요? 공용이면... 한층 더 민망하지만. 특히, 들어갈땐 아무도 없었는데, 나올땐 남자분이 볼일 보고 계실때. 참, 전 남녀 따로 된 술집도 많이 봤는데요~

stella.K 2004-02-19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우리나란 그게 문제라니까요. ㅎㅎㅎ!

진/우맘 2004-02-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유행하던 유머가 생각나는데요. 그럴 땐, 잔뜩 째리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짜샤, 김나나 봐!"
(혹여 이해 안 되는 분들을 위해 --- 모락모락 김이 나지 않으므로 이미 오래 전 버려진 응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강렬하고 당당한 짜샤!를 통해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가을산 2004-02-19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 전 엘레베이터에서 방귀 냄새로 인해 마태우스님과 같은 오해를 받았을 것이 확실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탔던 사람이 참 원망스럽더군요... 가만, 그 사람도 억울했던것은? ^^

_ 2004-02-2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 역시 마지막 압권이었습니다~ 이러다 마태우스님 팬 되겠습니다 그려 ^^

마태우스 2004-02-20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rd나무님/부끄럽사옵니다. 팬이라뇨...
가을산님/제 생각에는 그사람(앞서 탔던 그 사람 말이죠)이 뀐 거 같습니다.

마태우스 2004-02-20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요즘은 수세식이라 김이 잘 안나더군요...

sooninara 2004-02-2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장도가 아니라 휴대폰 안테나로..참아야하느니라..콕콕 찌르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그리고 변기에 묻은 흔적을 볼때면 기생충쪽 전문가이신 마태우스님은..여러가지 기생충이 상상될것 같네요. 화장실 유머도 이렇게 격이 있구나 느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