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잠을 깬 마태우스는 턱에 고인 침을 닦았다. 그 동안에도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아이 씨, 새벽 두시에 전화하는 놈이 어딨어?"

마태우스는 거칠게 수화기를 들었다.

"큰일났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위험합니다."

박태환? 그 마린보이? 마태우스는 술기운이 확 깨는 걸 느꼈다.

"아니, 박태환 선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전화건 사람의 말은 이랬다. 박태환 주변 사람들 중 첩자가 있는 것 같다, 박태환에 대한 정보를 호주의 그랜드 해켓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니 마태우스 탐정이 조사를 좀 해주면 좋겠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면 너도 좋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조사해 보죠. 근데 댁은 누구십니까?"

전화는 뚝 끊어졌다. 긴급 추적장치로 확인해보니 그 전화를 건 사람은 박태환이 선전하는 '블루마린' 홍보부 직원이었다.

"이 사람, 박태환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회사 생수판매를 더 염려하는 거겠군!"

마태우스는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금메달을 따도록 돕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올림픽이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았고, 선수단은 이미 중국으로 떠난 후였다. 마태우스는 서둘러 박태환이 연습을 하던 북경대 체육관으로 향했다. 박태환은 물개처럼 수영을 하고 있었고, 주변 경비는 제법 삼엄했다. 마태우스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누구죠?"

"전 박태환의 마사지사입니다."

"흠, 그럼 당신은요?"

"기록원입니다."

"당신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는 자신이 코치라고 한 뒤 마태우스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인가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마태우스는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뭔가가 있어...'


다음날 다시 경기장에 간 마태우스는 곧장 코치에게 갔다.

"혹시 박태환 선수가 400미터 결승에서 어떤 작전으로 임할지 정해진 게 있나요?"

코치는 한참 동안 마태우스를 째려봤다.

"그건 왜 묻죠?"

마태우스는 세게 나가기로 했다.

"물을 만하니까 묻는 거죠!"

코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마태우스의 귀에 입을 갖다댔다.

"하아..."

코치가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자 마태우스는 펄쩍 뛰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마태우스가 저항하자 코치는 얼굴을 붉혔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태환이가 어떤 작전을 쓸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코치의 정중한 태도에 마태우스도 예의를 갖추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 건 대체 언제쯤 정해지죠?"

"대회 하루 전날입니다."

노민상 감독


대회 전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기에 마태우스는 중국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야, 저게 말로만 듣던 천안문이구나!"

천안문의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던 도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아니, 저 친구는!"

그는 수영장에서 봤던 기록원이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딜 가는 거지?'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뒤를 밟았다. 그는 초조한 듯 연방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두시간 남짓 걸은 뒤 그는 허름한 문으로 들어갔다. 마태우스도 따라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렸다. 평소 영어에 능통했기에 그는 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Is no one follow you?"(따라온 사람 없었지?)

"Yes"(네)

"Did you know about Park?"(박에 대해 알아낸 거 있어?)

"No, yet. But..."(아직요. 하지만....)

그 후의 말은 너무 작아서 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기록원이 나왔고, 외국인 하나도 잠시 후 문을 나섰다. 마태우스는 그 외국인을 쫓아갔다. 그가 팔레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마태우스는 웬 여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Oh, you are sorry!"(당신 잘못이어요!)

여인이 워낙 미인이었기에 마태우스는 따지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Yes, I'm sorry.(그래, 미안해요.)

말을 마치고 주위를 보니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잉? 그 사람이 어디 갔지?"

순식간의 일이었다. 낭패다,라고 마태우스는 생각했다. 30분을 더 헤매다 혹시나 싶어 프론트로 간 마태우스는 유창한 중국어로 물었다.

"쯔부샤...즈씨 므물야 센수 스야.?"(혹시 여기 머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쫭미란 쏀수이쓰. 드신 보 랄라이 헤이야"(장미란 선수라고 있습니다. 당신도 보시면 좋아할 겁니다)

마태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쯔 센수마이고 수센센수 라이라?"(그 선수 말고. 수영 선수는 없나요?)

안내원이 투숙객 명단을 훑었다.

"호이호이 쓰메잉 리라이라. 호쓰이 콰잉 타이양콰이(廣 太陽猫)쓰요"(아, 한명 있네요. 호주의 그랜드 해켓이요.)<--이상 중국어 대화는 메피스토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부터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하지만 기록원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우스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그 바람에 코칭스탭으로부터 첩자가 아니냐고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봐요! 전 마태우스라고요! 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스타~!"


시간은 흘러 대회 전날이 되었다. 박태환 선수 주변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지금쯤은 아마도 박태환 선수의 전략이 세워졌을 것이다. 그 전략은,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줄 것이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께요."

기록원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진 뒤 3분 후에야 마태우스는 비로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화장실에 가는 사람치고 얼굴에 조급함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어! 게다가 화장실은 그쪽이 아냐!"

마태우스는 서둘러 그가 간 방향으로 갔다. 기록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내가 너무 늦은 걸까? 그러면 안되는데..."

그때 마태우스는 皮示房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피시방이라... 혹시 저기에?"

마태우스는 피시방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3분간 눈을 부라린 끝에 마태우스는 기록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만두지 못해!"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이구...나 죽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마태우스는 그를 무시한 채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모니터는 기록원이 메일을 작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태환의 작전은 150미터부터 치고나가 전력질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켓이 미리 치고나가야만...."

마태우스는 자리에 앉은 뒤 글을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박태환의 작전은 지난 세계선수권 때처럼 350미터를 돈 뒤부터 스퍼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켓도 그때까지는 천천히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내기'를 누른 뒤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멱살을 쥐었다.

"너, 내일까지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그리고 네 싸이월드 주소가 어딘지 네이버에 공개할 거야!"

마태우스의 협박에 기록원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대회 2일째인 일요일 11시 21분. 국립 아쿠아틱 센터. 박태환은 150미터부터 질주를 시작, 1위로 나섰다.

"네, 박태환 선수, 1위로 나섭니다. 해켓 선수, 눈에 띄게 당황한 듯 처지기 시작하네요!...네, 네. 박태환 1위로 달립니다....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아나운서의 흥분한 목소리가 고함으로 바뀌었다. 터치패드를 가장 먼저 찍은 박태환은 만면에 웃음을 띄고 두 손을 흔들었다. 중국의 장린이 2위, 해켓 선수는 6위였다. 전원을 끄려는데 해설자의 목소리가 마태우스의 귀에 들려왔다.

"박태환 선수가 세계선수권 대회 때와는 달리 일찍부터 치고나간 게 적중을 했어요. 이번 금메달은 작전의 승리입니다."

TV를 보고 있던 마태우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박태환이 나오는 400미터 경기를 전 밥집에서 소주를 먹으면서 봤습니다. 그걸 보고 집에 오다가 이 소설을 구상했는데요, 여건이 안되서 글로 옮기지 못하다 오늘 써서 올립니다. 겁나 유치하지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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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8-08-2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간만에 넘 잼있었어요 ㅎㅎㅎ
근데 이거 3류 소설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 ?? ㅎㅎ

(마태님 재기에 여러번 속아 카테고리 부터 확인하고 보는 매직 ㅎㅎㅎ)

마태우스 2008-08-27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그렇군요 3류소설로 바꿔놓을께요^^ 잼있다고 해주셔서 감사! 님의 냉정한 평가가 있었으니 마음놓고 자렵니다^^

Mephistopheles 2008-08-27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 중국어 명기가 좀 소홀하기에 첨부합니다.


혹시 여기 머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쯔부샤...즈씨 므물야 센수 스야.?)

"장미란 선수라고 있습니다. 당신도 보시면 좋아할 겁니다."
(쫭미란 쏀수이쓰. 드신 보 랄라이 헤이야)

"그 선수 말고. 수영 선수는 없나요?"
(쯔 센수마이고 수센센수 라이라?)

"아, 한명 있네요. 호주의 그랜드 해켓이요."
(호이호이 쓰메잉 리라이라. 호쓰이 콰잉 타이양콰이(廣 太陽猫)쓰요)

마태우스 2008-08-2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피님/오오오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중국어를 좀 해볼까 했는데, 생각이 안나서 그냥 썼었어요. 감사합니다. 님이 해주신 걸로 바꿔치기하겠습니다. 꾸벅.

paviana 2008-08-2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메피님이 도와주신거군요.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마태님이 산속에 가서 수련이라도 하고 오신줄 알고요.ㅋㅋ

Mephistopheles 2008-08-2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님을 양궁장으로 파견했으면 중꿔 응원단들 중에 호루라기 삼키는 인간들 많았을텐데 말입니다..

레와 2008-08-2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추천~!! ^^

마노아 2008-08-2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마태우스님표 소설! 메피님 자막 제공 멋졌어요^^

최상의발명품 2008-08-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에 입김을 불어넣는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혹시 야구편은 없나요? ^^

비로그인 2008-08-2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림픽 메달 종목별로 다 나오는건가요?
재밌네요.

마태우스 2008-08-3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헤헤,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종목별로는...글쎄요...
최상의발명품님/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 귀에 입김을 부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야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아이디어가 없네요 생각해볼께요!
마노아님/그러게 말입니다. 중국어가 들어가니 훨씬 더 그럴듯해보여요!!
레와님/어맛 감사합니다.
메피님/그렇죠?^^ 박성현 지는 순간 어찌나 속상하든지요. 그게 짜증나 이틀간 올림픽을 아예 안봤다니깐요...
파비님/중국도 안가본 제가 어찌 중국말을...호홋.

하얀마녀 2008-10-2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보는 3류 소설이네요. 아직 건재하신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흐흐흐.

2009-05-29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