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했는데 옷차림이 변한 건 없네?”
결혼을 하고 나서 첫 출근을 한 날, 복도에서 만난 분이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옷장사한테 장가간 것도 아닌데 결혼을 했다고 옷이 왜 바뀌어야 돼? 게다가 내가 옷이 없던 애도 아니었잖아?”
사실이 그랬다. 난 내 옷을 돈 주고 산 적이 거의 없지만, 어머니는 지극 정성으로 내 옷을 사주셨다. 그것도 메이커로만. 남자 옷에 대한 어머니의 안목이 그리 높지 않고, 또 내가 입으니 티가 안나서 그렇지, 내 옷의 상표를 본 사람들은 다 놀라곤 했다.
“아니 이게 그 유명한 ****였어?”
게다가 결혼 전, 장모님이 옷을 사라고 카드를 주셨을 때도 난 테니스 옷만 몇 개 샀을 뿐, 평상복은 거의 사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결혼 후에도 결혼 전과 다름없는 차림으로 다니곤 했다. 다만 구겨진 옷을 입는 건 피했다. 아내가 내게 “그거 입고 가면 내가 욕먹어!”라고 사정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시나브로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구두처럼 생긴 운동화를 두컬레 사줬고, 얼마 전에는 폴로에서 한벌에 19,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세일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내더니 날 불렀다.
“내가 자기 옷을 사주려고 하는데, 어떤 색이 좋아?”
난 주황색과 초록색을 골랐는데, 막상 배달된 옷을 보곤 우리 둘 다 놀랐다.
“아니 이 가격에 이렇게나 예쁜 옷이 배달되다니!”
수량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우린 서둘러 로그인을 했고, 거기 있는 색깔을 한종류씩 다 골랐다. 아마도 올 여름은 그것들만 돌려 입어도 충분할 것 같은 개수였다. 아내가 내 주민증 번호를 물어보곤 내 휴대폰으로 결제를 해버린 게 옥의 티였지만 말이다.
아내의 작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학교에 있는데 원하는 신발 색깔을 물어보더니 여름신발을 세컬레나 사왔다. 사실 난 여름신발이라는 게 뭔지를 몰랐다. 내게 있어서 신발은 늘 한컬레였고, 그것 외에 테니스 칠 때 신는 운동화가 한컬레 정도 더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여름이라고 해서 신발을 바꿔 신게 되다니! 그것도 세컬레나! 아내는 내게 테니스 신발도 세컬레나 더 사줬고, “하나만 오래 신으면 빨리 닳는다”는 말도 해줬다. 그러니 엊그제인가 신발장을 열었다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신발장 중 두 칸이 죄다 내 신발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엔 신발장을 열면 엄마와 아빠 신발이 전부고-아버지는 7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신발은 대부분 버리지 않고 있었다-내 신발은 신발장에 자리를 잡는 대신 현관에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당연한 것이, 신발을 하나만 신는 사람은 신발장에 굳이 넣어 둘 필요가 없다). 옷과 신발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지만, 내 것이 많이 생기니 신이 나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토요일날 탐스러운 주황색 폴로 티에 캐주얼한 여름신발을 신고 갔더니 “옷 예쁘다”고 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신발 예쁘지 않냐고, 아내가 사준 거라고 자랑을 했더니 그제서야 그러냐,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친구들, 하여간 낭만이라곤 모르는 녀석들이다. 근데 오늘 학교에선 더 황당한 말을 들었다. 오늘은 어여쁜 초록색 폴로 티를 입고 왔는데 생화학의 곽 모 선생님이 내 옷을 보더니만 “수술복 같다”고 하신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옷이 없는 사람들이 입는 초록색 수술복, 나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학교에 올 때 절대로 초록색 옷은 입지 않으련다. 그게 아니어도 어여쁜 색깔의 옷이 많이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 아내는 현명했다. 내가 입던 옷을 모두 부정하고 자기 식대로 옷을 입혔다면 내가 반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는 그렇게 하는 대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날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결혼 1주년이 되는 8개월 후가 되면 난 지금보다 좀 더 멋있는 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은, 역시 좋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