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슈퍼쥬니어 멤버 중 한 명이 기르는 개가

같은 아파트 주민을 물어죽인 사건 이후

아파트 정원에서 개 산책을 하는 건 어려워졌다.

그래서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애견 전용 놀이터를 찾게 됐는데,

얼마 전 거기서 사건이 생겼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개떼놀이터라고여기선 대형견과 소형견이 따로 놀게 돼있다.

그런데 대형견 공간에서 놀만큼 논 견주가 진돗개 두 마리를 데리고 귀가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소형견 공간을 지나야 했다.


난 그 경로에 있던 셋째 강아지를 황급히 안아올렸는데,

그때집에서 왕노릇을 하느라 겁이 없어진 우리집 다섯째 강아지 오리

그 진돗개 쪽으로 달려갔다.

위기감을 느낀 진돗개는 오리를 공격했고,

오리의 머리를 물고 마구 흔들었다.

 

그때 장면은 지금도 슬로우비디오처럼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곤 한다.

난 넋이 나간 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진돗개 견주인 여승도 말릴 생각을 안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순간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그 개 앞으로 몸을 던졌고,

진돗개의 얼굴을 밀어냈다 (아내에게 평생 감사할 일이다).

덕분에 오리는 진돗개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 뒤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발작 비슷한 걸 했다.

나중에 보니까 변을 지리기까지 했는데,

오리는 한동안 걷지 못한 채 누워서 바둥거렸다.

병원에 가본 결과 오리는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원래도 털이 많았지만 코로나 땜시 미용 시기를 놓쳐서 유난히 털이 많았고,

아마도 진돗개는 오리의 볼 쪽 털을 물고 좌우로 흔든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기르는 개 여섯 마리 중 오리는 내 껌딱지라 할만큼 나밖에 모르는 녀석이라,

오리가 잘못됐다면 내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이건 오리에게 쓰라린 교훈이 됐고,

오리는 그 후 다른 큰개를 만나면 쫓아가지 않는다.

 

오리가 털 깎았을 때 모습

오리는 내가 집에 있으면 늘 내 책상 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물리고 나서 일주 후의 모습. 털이 많이 길어서 다행이었다. 오른쪽은 우리 여섯째 은곰이.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본 바를 이야기한 모양이다.

천안에 있는 수제간식을 사러 갔을 때 사장이 이런다.

그집 개크게 물렸다면서요?”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소문이 쫙 났단다.

그거야 그럴 수 있지만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생충교수네 집 개가 물려서 중환자실에 있다.”

엊그제 개떼놀이터에 다시 갔더니 전날 온 손님이 사장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그때 물린 개가 결국 죽었다면서요?”

사장의 말이다. “그 말 들으니 황당하더라고요아닌데,

그집 개들 그 다음에도 왔는데내가 모르는 새 일이 또 생겼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1) 천안은 조그만 동네라서 소문이 쫙 난다.

2) 소문은 점점 커질 뿐결코 작아지진 않는다


* 후일담: 이건 내가 좋은 사람인 척 하려고 올리는 건데,

아내가 오리를 달래는 동안 난 그 스님에게 가서 이런 말씀을 드렸다.

"저희 개가 먼저 달려들었으니 저희 잘못이 더 큽니다.

이 일로 제가 치료비를 청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중에 아내한테 혼났다. 

"넌 오리랑 나보다 왜 그 사람을 위로하고 앉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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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2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일담에 아침부터 빵..ㅎㅎㅎㅎㅎ

마태우스 2020-03-02 16:27   좋아요 0 | URL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0-03-0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일담보다 더 재밌는 부분 : “기생충교수네 집 개가 물려서 중환자실에 있다.”
ㅋㅋ

마태우스 2020-03-02 16:2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 얘기 듣고 좀 놀랐어요. 사람들이 절 알아보는 줄 몰랐거든요. 견주들은 그냥 자기 개들만 볼뿐 다른 사람을 잘 안보거든요. 글구 중환자실이라니....ㅋㅋ 암튼 무사해서 천만다행이죠

stella.K 2020-03-0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정말 놀라셨겠습니다. 저는 개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얘기만 들어도 놀라는데 실제로 봤다면 파랗게 질렸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의외로 놀라면 소리 지르고 막 그러거든요.ㅎ
암튼 다행이긴한데 오리가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근데 마태님 넘 착하십니다.ㅠ

마태우스 2020-03-04 04:36   좋아요 0 | URL
착한 척하는 게 아닐까요 ㅠㅠ 암튼 저는 그 상황이 지금도 꿈 같아요 -.- 안다쳐준 오리가 고맙고 무는 시늉만 한 그 개도 고맙네요.

stella.K 2020-03-04 15:47   좋아요 0 | URL
ㅎㅎ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개들끼리 통하는 싸움의 룰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다행이죠.

다롱이는 지난 주말 잠깐 집에 왔다가 월요일 날 다시 입원했어요.
나빠져서 한 건 아니고 그냥 너무 오래 집에 못 오면 안 되니까.
췌장염인데 수치가 굉장히 높았거든요.
150 이하가 되야한다고 하더군요. 아직 그게 안 되서.
집에 와서 보니까 의외로 건강해 뵈서 한시름 놨어요.
물론 그게 링겔을 맞아서라는데 앞으로 조심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당장 오늘 내일 하지는 않겠더군요. 지켜봐야지요.
암튼 걱정해주셔서 고맙슴다.^^

진주 2020-03-0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문은 점점 커질 뿐, 결코 작아지진 않는다‘
맞는 말이예요~
여전히 재미나게 지내시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돌아왔답니다. 짐 푸는 중이예요~
그래도 우리 갑장이라서 서재 안에선 친구였다고 생각나서 마태님 찾아왔어요.
아..기억 못 해도 괜찮아요. 우리 이제 기억력이 오락가락할 때니까 이해해요 ㅎㅎ

마태우스 2020-03-11 23: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머나 진주님...어디 먼 길 다녀오셨나요. 제가 님을 어찌 잊겠어요ㅠㅠ 너무 반갑습니다. 옛 친구는 언제나 흐뭇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죠. 님과 제가 갑장이었군요 ^^ 그렇다면 님도 연배가 벌써.... 암튼 반갑습니다

moonnight 2020-04-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오리 털이 길어서 천만다행이네요@_@;; 진돗개님께서 교훈을 주려한 걸까요? 앞으로 덩치큰 개들 조심하라고^^; 하여간 깜짝 놀라셨겠어요ㅜㅜ <먼 길로 돌아갈까?>에 나온 비슷한 대목이 떠올랐어요. 읽으면서 심장이 벌렁벌렁ㅜㅜ 반려견이 없는 저도 이런데 키우시는 분들은 어떤 심정이실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