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경로에 있던 셋째 강아지를 황급히 안아올렸는데,
그때, 집에서 왕노릇을 하느라 겁이 없어진 우리집 다섯째 강아지 ‘오리’가
그 진돗개 쪽으로 달려갔다.
위기감을 느낀 진돗개는 오리를 공격했고,
오리의 머리를 물고 마구 흔들었다.
그때 장면은 지금도 슬로우비디오처럼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곤 한다.
난 넋이 나간 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진돗개 견주인 여승도 말릴 생각을 안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순간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그 개 앞으로 몸을 던졌고,
진돗개의 얼굴을 밀어냈다 (아내에게 평생 감사할 일이다).
덕분에 오리는 진돗개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 뒤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발작 비슷한 걸 했다.
나중에 보니까 변을 지리기까지 했는데,
오리는 한동안 걷지 못한 채 누워서 바둥거렸다.
병원에 가본 결과 오리는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원래도 털이 많았지만 코로나 땜시 미용 시기를 놓쳐서 유난히 털이 많았고,
아마도 진돗개는 오리의 볼 쪽 털을 물고 좌우로 흔든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기르는 개 여섯 마리 중 오리는 내 껌딱지라 할만큼 나밖에 모르는 녀석이라,
오리가 잘못됐다면 내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이건 오리에게 쓰라린 교훈이 됐고,
오리는 그 후 다른 큰개를 만나면 쫓아가지 않는다.
오리가 털 깎았을 때 모습
오리는 내가 집에 있으면 늘 내 책상 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물리고 나서 일주 후의 모습. 털이 많이 길어서 다행이었다. 오른쪽은 우리 여섯째 은곰이.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본 바를 이야기한 모양이다.
천안에 있는 수제간식을 사러 갔을 때 사장이 이런다.
“그집 개, 크게 물렸다면서요?”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소문이 쫙 났단다.
그거야 그럴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생충교수네 집 개가 물려서 중환자실에 있다.”
엊그제 개떼놀이터에 다시 갔더니 전날 온 손님이 사장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그때 물린 개가 결국 죽었다면서요?”
사장의 말이다. “그 말 들으니 황당하더라고요. 어, 아닌데,
그집 개들 그 다음에도 왔는데, 내가 모르는 새 일이 또 생겼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1) 천안은 조그만 동네라서 소문이 쫙 난다.
2) 소문은 점점 커질 뿐, 결코 작아지진 않는다.
* 후일담: 이건 내가 좋은 사람인 척 하려고 올리는 건데,
아내가 오리를 달래는 동안 난 그 스님에게 가서 이런 말씀을 드렸다.
"저희 개가 먼저 달려들었으니 저희 잘못이 더 큽니다.
이 일로 제가 치료비를 청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중에 아내한테 혼났다.
"넌 오리랑 나보다 왜 그 사람을 위로하고 앉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