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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무너진 수사발표
신동진 지음 / 창해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의혹들로 가득차 있다. 정보가 통제되던 권위주의 시대가 아닌, 모든 정보가 여과 없이 공유되는 시대에 의혹이 나날이 늘어나는 이유를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이하 <KAL>)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엇인가를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럽게 보이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15쪽).”
심지어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게 아니라 텍사스 어느 지역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얘기가 퍼지기도 했고, 대학 동창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한 친구가 “조승희 사건의 의혹들”이라는 제목으로 공범의 존재를 암시해 놨다. 그런 것들이 맞든 틀리든, 요즘의 의혹들은 대개가 그럴듯한 정황증거를 갖추고 있어 읽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
<KAL>은 1987년 일어났던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에 얽힌 수많은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김현희가 범인이라는 안기부 수사발표를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한다. 그럴 듯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숱한 의혹들과는 달리 그 사건과 관련된 안기부의 발표는 너무도 허점이 많아, 정권교체 이후 <KBS 스페셜> 등 공중파 방송에서까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김현희는 테러 직후 빨리 도망가지 않고 바레인에서 이틀을 허송세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1월 29일이 일요일이어서...”
하지만 바레인은 이슬람국가라 금요일이 휴일이며, 일요일은 정상근무를 한다. 실종자 가족회-그들은 자신을 유족회라고 부르지 않는다-가 이걸 물고 늘어지자 국정원은 이렇게 답한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항공사가 휴무 중일 것으로 판단한 착오로...”
이슬람의 휴일조차 모르는 특급간첩이라니, 너무 어수룩하지 않는가. 기체 잔해 문제도 그렇다. 사건이 발생되고 2년간 KAL기의 잔해가 전혀 발견되지 않다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극적으로 기체 조각 2개가 발견되는데, 그게 하필이면 인접한 조각이다.
“주민등록증이라도 내밀듯이 ‘Seoul 1988'과 올림픽 마크가 찍혀 있는 부위가 발견됐으니,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딱 떨어지는 우연이었다.(210쪽)”
이 책은 이런저런 의혹들을 숱하게 제기하는데, 국정원의 답변은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식으로 갈팡질팡해 안쓰러울 정도다.
북한 역시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을 했던데, 그 사건이 안기부의 공작이라는 <KAL>의 주장이 맞다손 치자. 김현희에 의해 폭파된 게 아니라면 그 비행기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단지 대선 승리를 위해 비행기를 폭파해 115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당시 정권이 야만적이었을까. 광주학살을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직은 ‘설마’ 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 저자는 KAL기 사건이 아니었다면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글쎄다. 양김 씨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가 여론조사에서 훨씬 앞서고 있었던 게 당시의 정황이 아니었을까. 더디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고,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었다는 판결도 얼마 전에 나왔다. 수지 김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처럼, KAL기의 진실이 속시원하게 밝혀질 날은 언제쯤일까. 국정원의 양심선언을 기다리는 건 요원해 보이니, 잠적해 있는 김현희가 입을 열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