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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고 서툰 사랑 고백 ㅣ 우리시대의 논리 1
손석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4월
평점 :
아는 분이 이런 얘기를 한다. 손석춘님이 공부도 별로 안하고, 칼럼에다가 늘 똑같은 소리만 해서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별반 인기가 없다고. “쟤 예쁘지 않냐?”는 말을 들으면 그녀가 갑자기 달라 보이듯, 그분의 말을 듣고 나니 손선생이 쓰는 칼럼들이 정말로 지겹게 느껴졌다. 좌파를 지향하는 그는 수구신문들을, 그리고 오른쪽으로 줄달음치는 노무현을 늘 한결같은 내용으로 비판했다. “그래서다. 우리가 눈을 부릅떠야 하는 까닭은.” 한때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박력 넘치는 표현도 하도 듣다 보니 진부하게 느껴졌다. 관성에 의해 그의 책을 샀지만, 거의 일년이 다 되도록 읽지 않고 방치한 이유는 그런 선입견 때문이었다.
보르헤스의 책을 읽다가 그 난해함에 머리가 아파, 좀 잘 읽히는 책이 없나를 뒤적거렸다. 손선생이 지난 2년간 썼던 칼럼집 <과격하고 서툰 사랑고백>을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읽게 되었지만, 다 읽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더더욱 무거워졌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유행어대로 노무현 이후부터 난 우리 사회에 관심을 잃고 살았는데, 간만에 접한 손선생의 칼럼들은 그런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부자신문들은 여전히 ‘부르댐’-거친 말로 야단스럽게 떠들어 댐-을 멈추지 않고 있었지만, 더 어이없는 것은 노무현의 행태였다. 부림사건 때 처음으로 사회와 연관을 맺고, 노동자들을 위해 아스팔트에 드러눕기까지 했다는 노무현, 언젠가 <말>이라는 잡지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노무현. 김근태라면....노동계 고심’. 말인즉슨 노무현은 노동계에서도 기대해 볼 존재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 노동자들이 얼마나 희망을 가졌을까.
하지만 그의 집권도 벌써 4년째, 그 희망은 절망으로 바뀐지 오래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아래 비정규직이 이렇게나 늘어나고, 자신들이 이렇게 많이 죽어나갈지. 그리고 그 죽음에 이 정부가 그토록 모르쇠로 일관할지. 파업현장에서 숨진 노동자의 부인을 위로하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사람이 죽은 것을 가소롭게 생각하고, 이 부르짖음을 외면하는 정부, 정치하는 분들이 너무 한다.”
손선생은 이어서 말한다. 왜 우리는 분노하지 않느냐고. 그 말에 난 그저 부끄러웠다. 그에게 기대를 걸었고, 그의 당선에 용춤을 췄던 내 자신이.
* 손선생의 책을 읽으니 리뷰 쓸 때도 그분의 말투가 묻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