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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기 시러
김영주 글.그림 / 행복한만화가게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서 그걸 나열한 책, 책은 어때야 한다며 어마어마한 가치를 부여하는 시인 김정란이 본다면 “이건 책도 아니고 잡지도 아니여”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런 책들이 당장 누군가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사실이다.
난 안봤지만 <회사가기 시러>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을 제대로 담아내 인기를 끌었던 저자 김영주는 주제는 다르지만 비슷한 컨셉의 2탄 <연애하기 시러>를 펴냈다. 책에서 주인공은 예쁜 여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녀와 친한 친구에게 접근한다.
[넙죽한 얼굴, H라인 몸매, 나는 그녀를 향단이라고 불렀다. 예쁜 아가씨를 모시고 다니는 촌스런 모습이 꼭 향단이스러웠기 때문이다...윤희와 제일 가까운 어리숙한 향단이를 이용하기로 결심.... (향단이가 묻는다) “선배님 근데여... 혹시 윤희랑 친해지고 싶어서 저한테 잘해 주시는 건 아니죠?”]
줄거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책이지만,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향단이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 주인공은 사소한 일들이 정으로 바뀌면서 결국 그녀와 사귀게 된다. 사랑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둘은 권태기에 빠지고, 그녀를 잃고 난 뒤에야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책의 백미는 물론 그 과정에서 저자가 기술해 놓은 미묘한 심리들, 예컨대 다음 구절을 보자.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말고 누군가가 불러주는 유치뽕짝 별명이 더 듣기 좋아질 때, 당신은 연애 중이다.”
과거에 사귄 여자친구와 난 서로를 ‘캥거루’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줄여서 ‘캥’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부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단지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뿐.
75쪽에 있는 비밀번호도 음미할 만하다. 예전에 사귄 여자와 관련된 비번을 헤어진 뒤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첫사랑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바꾸기 귀찮아서”다. 나 역시 내가 쓰는 비밀번호는 내게 아픈 상처만 한바가지 남긴 여인의 생일인데, 난 그걸 18년째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용하고픈 구절. 여자와 헤어진 주인공을 보면서 다른 여자가 생각한다. “이제는 임자 없는 그 사람, 그는 이제 별루다. 세상의 커플들아, 너희가 빛나는 건 임자가 있기 때문이란다.”
요즘 야클님이 부쩍 빛이 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는, 임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