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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나이 서른, 책을 막 읽기 시작한 직후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공이 쌓이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려운 책도 마구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5년 후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을 읽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났건만, 난 여전히 자본론을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자본론뿐만이 아니다. 박상륭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그보다는 훨씬 더 쉬울 이인성의 소설도-그것도 단편 하나!-난 겨우겨우 읽어냈다. 철학 책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지라, 난 여전히 라캉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읽는다고 내공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뒤부터 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읽자”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정진 중이다.
그래도 가끔씩 내공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별반 대단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남들이 격찬을 할 때, 내 내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예컨대 <위대한 개츠비>를 난 그냥 읽었지만, 그 책은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남들이 중요하냐 내가 느끼는 게 중요하지,라면서 그냥 버틸 생각이긴 하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전문가와 눈을 일치시키고픈 욕구가 남아 있다는 거다.
레이몬드 카버는 손꼽히는 단편 작가다. 특히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작품 하나하나마다 격찬을 한다. 이번에 읽은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이하 ‘사랑’-에서도 그랬고, 이전에 읽은 <숏컷>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숏컷>에서 난 하루키의 평과 따로 놀았다. 그때 난 이런 리뷰를 썼었다.
“내 문학적 내공은 카버를 소화하기엔 영 버거웠다.”
그게 불과 3년 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 <사랑>을 읽으면서 난 여기 실린 단편들이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잘 쓴 단편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나 할까? 이번 책에서 하루키의 찬사와 내 느낌은 시종 같이 갔다. 그리고 난 그게 즐거웠다.
내 내공이 갑자기 향상된 건 아닐 것이다. 카버 책을 두 번째 보니 그의 스타일에 적응해서일 수도 있고, 이번 책이 <숏컷>과는 달리 조금 더 대중적인 작품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카버의 재발견이 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