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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질문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평점 :
3년 전, 조정래 선생의 <풀꽃도 꽃이다>를 읽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책인데,
책을 쓴 목적이 뚜렷하다 보니 주인공들의 특징이 너무 전형적인 게 아쉬웠다.
좋은 사람은 늘 좋고, 나쁜 사람은 늘 나쁘다.
그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책장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선생이 새로 펴낸 <천년의 질문>은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 정치사회를 비판하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등장인물들이 전형적인 것도 같지만,
주말 내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만큼 재미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지를 잠시 생각해봤다.
1) 교육현장 얘기보다 정치권과 기업, 법조계가 얽히는 얘기가 더 흥미진진하다.
2) 전형성을 가진 인물이 재미없는 이유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 이런 사람이 어딨어, 하는 생각이 소설을 비현실적으로 만드는데,
<천년>에서 늘 옳은 쪽으로 나오는 장기자는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를 모델로 삼고 있다.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백건이 넘는 고소고발이 걸려 있는
이 시대의 참기자를 떠올리니,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전혀 안든다.
3) 주인공 중 재벌 사위로 나오는 김전무가 아주 매력이 있다.
초반부에 하는 걸 보니 이대로 끝나겠구나 싶었는데
그는 그냥 사위가 아니라 능력있는 사위였고, 결국 다시 성공가도로 접어든다.
물론 그가 하는 일이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이상하게 그가 밉지 않았고, 심지어 응원하게 됐다.
사랑에도 성공했으면 했는데 조작가님이 결말을 지어주지 않아 조금 섭섭했다.
4) 김전무 말고도 썸을 타는 또 다른 커플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이 썸을 타면, 그냥 흐뭇해진다.
다만 너무 착한 사람끼리 커플이 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의문이 든다.
장기자의 부인이 그런 것처럼 적어도 한명은 적당히 세속적이어야
그 가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닐는지?
5) 이 책에선 장기자가 남성적 매력이 넘치고,
대시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처럼 써놨다.
실제로도 주진우 기자는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은 분이다.
동의 안할 사람도 있겠지만,
주진우 기자는 얼굴만 놓고 본다면 나랑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주기자가 매력있는 인물이 된 건
나와 그분이 걸어온, 삶의 궤적의 차이일 것이다.
정의롭게 산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유머와 여유가 있고
그게 그를 더 매력있게 만든다.
5)번에 이어서 첨언을 하자면, 주진우처럼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쁜 놈은 한두번만 좋은 일을 하면 찬사를 받지만,
늘 강직하게 살아온 사람은 한번이라도 유혹에 굴복해 버리면
그간의 아름다운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니까.
적당히 세속적으로 사는 나지만,
주진우처럼 사는 게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그냥 주진우를 존경하면서 살아가련다.
우리의 현실을 비판하며 대안까지 제시해준 대작가 조정래 선생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