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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책읽기 2012-2018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8월
평점 :
내가 청년이던 시절, 쇠고기는 그냥 쇠고기였다.
모든 쇠고기는 ‘소’라는 이유만으로 찬양받았고,
한번 소를 먹고 나면 적어도 보름 동안은 자랑을 하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쇠고기에도 급이 생겼다.
투플러스와 2등급은 같은 쇠고기긴 하지만 다른 취급을 받았다.
2등급 소를 먹고 자랑을 하다간 본전도 못찾았는데,
심지어 2등급 소가 돼지고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고기를 못먹던 시절엔 고기 자체가 권력이었지만,
고기가 흔해지니 고기가 갖는 힘이 줄어들고,
고기 중에서 최상급의 고기만이 대접받게 된 것이다.
책이 귀하던 시절, 그러니까 사람들이 책값 때문에 책을 못읽던 그때,
책을 쓴 사람은 ‘저자’라는 이유만으로 칭송받았다.
A: 제가 저서가 하나 있는데요. <마태우스>라고...
B: 정말입니까? 그렇게 훌륭한 분인 줄 몰랐는데, 오늘 밥값 제가 내겠습니다.
하지만 책이 흔해진 지금은 저자라고 다 대접받는 건 아니다.
A: 제가 저서가 하나 있는데요. <마태우스>라고...
B: 흥, 그걸 저서라 우기다니. 제 조카가 써도 그것보단 잘쓰겠네요.
그렇다면 어떤 게 투플러스 책일까?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고,
읽고 난 뒤 최소한 보름 동안은 뿌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며,
누군가 만나서 얘기할 때면 “너 <xxxx> 읽었어?”라고 뻐기고픈 책이라면
투플러스 등급을 매겨도 괜찮으리라.
최근 읽은 책 중엔 로쟈님이 쓴 <책에 빠져 죽지 않기>가 바로 그런 책이다.
서평집이 흔한 시대에 나온 또 하나의 서평집이긴 해도,
로쟈님이 쓰는 서평은 그 차원이 다르다.
좋은 쇠고기가 사람의 입을 황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 몸에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로쟈님의 책은 읽는 재미와 더불어 독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기술해 놓은 앞부분은
요즘 독서에 관한 강의로 먹고 사는 내가 새겨들을 점이 많았다.
책을 읽는 이유에 관한 책들을 일일이 다 읽을 수 없는 터에
그 책들의 정수를 요약해서 저자 자신의 의견과 접목시켜 주는 이 책은
누군가가 투플러스 등심을 알맞게 구워서 내 입에 넣어주는 것과 같다.
맛있는 고기를 먹고 나면 “이 집 또 와야지”라는 생각을 하듯,
로쟈님이 서평에서 괜찮다 싶은 책들은 적어 뒀다가 다음에 읽게 된다.
내가 갔던 식당을 다른 이가 가면 반가운 것처럼,
내가 읽은 책을 가지고 로쟈님이 서평을 썼다면 그저 반갑다.
문화, 페미니즘, 철학 등 여러 방면에 걸친 로쟈님의 방대한 독서가 부럽지만,
어차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서평이라도 읽고 대리만족을 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딱 하나 마음에 안드는 것은 책의 제목이다.
차라리 <책에 빠져 죽기>라고 했다면 좀 더 멋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