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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1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평점 :
책은 사람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고 믿지만,
예외를 만날 때면 당황하곤 한다.
어릴 적부터 책벌레였다는 안철수도 왜 이러는지 설명이 안 되지만,
책을 읽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책을 수십 권 쓴 공지영 작가의 행보는
더 이해가 안 간다.
공지영은 차 옆자리에 탄 주진우의 통화를 들은 기억을 바탕으로 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그게 김부선과 이재명이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라고 넘겨짚었는데
그 다음엔 ‘주진우가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는 글을 SNS에 올리더니,
나중엔 이 모든 책임이 다 주진우에게 있다면서 해명을 하란다.
이 과정이 너무도 그로테스크해서, 신작 <해리>를 살까 말까를 망설여야 했다.
공지영의 총기가 흐트러졌지 않을까 걱정해서였다.
그래도 오랜 팬인데 사긴 사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구매를 했는데,
역시나 그의 소설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재미도 있었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봤던 봉침사건의 궁금증이 풀린 게 최대수확이다.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공지영은 이 책을 쓴 이유가 진보인 척 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고발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해리> 1권 250쪽에도 그 내용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언론의 투명성이 떨어졌고...지성이 사라지면서 감정과 원시적인 애증만 남았다. 그럴 때 진보를 가장한 장사꾼과 사기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세월호를 애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장사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난 것이다.”
이건 무슨 말일까?
이명박. 박근혜를 비판하고, 세월호를 애도하는 것은 국민 된 도리였건만,
이걸 가지고 ‘진보를 팔아먹는 장사꾼. 사기꾼’으로 매도하는 건 좀 이상하다.
공지영이 받았던 비판 중 하나가 ‘운동권을 팔아먹는 소설을 쓴다’였다는 걸 감안하면,
‘아니 공지영이 이런 말을 하다니?’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인터뷰에 나온 공지영의 말을 더 들어보자.
“70~80년대,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정의를 외치고 좌파가 되는 것은 투옥과 가난을 견뎌야 한다는 걸 의미했지만 (이제는) 좌파인 척하고 정의인 척하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시대로 바뀌는 전환기에 우리가 있다...정의를 팔아먹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
그러니까 공지영은 투옥과 가난을 견뎌야 진보운동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해리> 2권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89학번이면 이미 87년에 독재정권이 한풀 물러난 뒤라서 80년대 초나 중반하고 또 달라. 80년대 초. 중반에는 학생운동 이퀄 바로 감옥! 그런데 그땐 아니었거든. 뭐랄까. 개나 소나 학생운동 하던 그런 때라는 거지. (102쪽)”
이 말대로라면 절차적 민주화가 시작된 87년 이후의 진보운동은
감옥에 가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81학번으로 학생운동에도 몸담았던 자신을 정당화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런 걸 넷상에서는 ‘부심’이라고 하고, 이렇게 응용할 수 있다.
“거, 81학번부심 쩌네.”
그러고 보면 책날개에 있는 저자소개도 의심스럽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공지영이 구치소에 간 이유는 1987년 발생한 구로구청 부정투표 반대시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지영은 구치소에 1주쯤 있다 나왔다는데,
굳이 ‘구치소 수감 중 단편을 집필했다’는 얘기를,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자소개에 넣어야 하는지?
더구나 1200만부를 판 스타작가가 왜 그 경력에 집착하는 것일까?
책날개를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는데,
저 위 구절을 읽다보니 공지영은 ‘난 그 엄혹하던 시절에 구치소도 다녀왔어!’란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재미있는 책을 써주신 공작가님을 위해 이렇게 부르짖어 본다.
“진보의 진정성은 구치소에서 나온다. 구치소 안갔다 온 분들은 닥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