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내게 반 고흐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에 대한 이미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것, 자살을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클클)의 30번째 책의 주인공이 반 고흐라는 사실에 두 마음이 들었다. 우선 꾸준히 읽고 있는 시리즈였으니 일긴해야겠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인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물론 두 번째 주인공인 니체보다는 낫지만... 니체도 정말 시리즈가 아니었으면 사지도 않았을 텐데... 읽고 나서 바뀌긴 했다.)

저자는 반 고흐에 대한 사랑을 책 가득 펼쳐놓는다. 마치 반 고흐의 변호사인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때론 엄마 같은 마음으로 그의 모든 것을 변호하고, 이해하고, 설득했던 것 같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반 고흐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상처와 아픔들조차 생각지 않고 내 방식대로 매도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저자에게 감사하다.

빈센트 반 고흐. 27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0년 동안 1,000점의 그림을 남긴 불세출의 천재화가. 마지막 3년 동안 300점의 그림을 남겼다니, 그는 정말 어마어마한 작품을 쏟아내는 기계와 같은 인물이었다. 한편, 그는 생각도 많은 사람이었다. 생각이 많으면, 뭔가를 표현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는 생각도 많지만 표현도 과감하고 급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짧지만 굵게 활동했던 화가일 수 있었다.

고흐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동생인 테오다. 동생이지만, 형처럼 고흐를 챙겼던 유일한 가족. 이자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고흐에게는 태어나기 1년 전 사망한 형이 있었다. 하필 형이 태어난 날로부터 1년 후에 그가 태어났다. 그리고 큰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부모는 그에게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고 근무하는 교회( 고흐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한 편에 아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부모와 함께 살던 16년간 수시로 오가며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을 봤을 것이다. 그의 기분이 어땠을까? 물론 고흐가 태어난 이후에도 어머니는 큰 아들을 잃은 상심 속에서 살았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분명 고흐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책 속에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고흐와 관계를 맺었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동생 테오뿐 아니라, 함께 작업을 했다가 결국 불화하게 된 프랑스 화가 폴 고갱과의 일화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상처받은 영혼이었던, 누구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던 고흐의 이성관계는 참 안쓰러웠다. 그가 마음을 주었던 여성들은 하나같이 이런저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사는 하숙집 딸, 남편을 잃은 사촌누나, 임신 중인 창녀 등... 고흐는 아픔을 자신이 안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심리학을 전공하진 않아서 전문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애정결핍이 만들어 낸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도 "손을 놀리지 말고 일하라"라는 어머니의 인생철학 덕분에 고흐는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고, 들어간 미술학교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다 결국 선생과 불화하고 뛰쳐나오기도 한다. 당시 종이를 비롯한 미술재료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반대가 없었던 것은 화상을 꾸리는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흐를 지원하던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이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해 지원을 부담스러워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이, 고흐의 가족력이었다. 고흐의 형제들 중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고흐를 비롯하여 남동생 코르 또한 서른두 살에 자살했고, 여동생 빌레미나 역시 40년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테오 역시 고흐의 사망 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매독과 합병증으로 6개월 후 사망한다. 물론 고흐의 큰아버지나 사촌들 역시 간질이나 정신질환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가족력에 어린 시절부터 받은 상처와 애정결핍이 더해졌으니 고흐의 삶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가 자살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정확히 그가 자살한 것인지 누군가에 의해(실수도 포함해서) 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돌아온 고흐는 배에 권총상을 입는다. 자해를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고흐의 사망 후 이루어졌던 조사에서는 총의 출처가 석연치 않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상을 입은 고흐를 보고 지인이자 정신과 의사인 가셰나 동생 테오가 외과의에게 보이지 않은 대목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의사에게 빠른 치료를 받았다면 고흐가 빨리 세상을 등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남인 가셰는 그렇다고 쳐도, 테오는 왜 그랬을까? 한편으로는 테오의 마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데다가, 자신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형을 챙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살아생전에는 한 작품도 팔지 못했던 고흐. 하지만 후대에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재정적인 어려움과 감정적인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작품으로 표현해냈고, 그로 인해 지금 우리 곁에는 상당히 많은 작품이 남아있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고흐의 다른 면과 함께, 이번에도 내 안에 갇혀있던 고흐에 대한 편견을 걷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예민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놓을 줄 알았던 고흐. 짧은 시간 동안 불태웠던 예술혼을 담은 작품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어."

2061년 7월 28일. 페트라 페냐 가족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다. 지구의 큰 위기가 닥친다. 핼리혜성이 궤도를 이탈해 지구와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태양계 밖 행성인 세이건을 향해 우주선을 띄운다. 물론 모두가 우주선에 탑승할 수는 없다. 소위 선택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니 말이다. 그렇게 선택된 페트라의 가족. 너무 사랑하는 리타 할머니와 이모를 두고 떠나야 하는 페트라는 마음이 아프다.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페트라에게 펜던트를 건네주는 할머니. 그녀에게 구엔 코(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페트라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산 깊숙이 들어가 만나게 된 사마귀 모양의 우주선. 식물학자인 엄마 에이미, 지질학자인 아빠 로버트 그리고 남동행 하비에르까지 네 가족은 우주선에 오른다. 사실 부모님은 페트라에게 지병인 망망색소변성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우주선의 탑승할 자격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오른 우주선. 근데, 부모와 함께 할 수 없단다. 아이들은 아이들 전용 포드에 누워 400년간 수면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두려워하는 동생 하비에르를 달래려고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하다 오히려 두려움을 더 불러일으키고 만다. 결국 공포 속에 하비에르가 먼저 포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은 페트라 차례다. 사실 포드 안에서 잠드는 동안, 아이들은 선택한 과목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일명 엔 코그니토 프로그램으로 수면 상태에서 지식을 획득하는 장치다. 엄마. 아빠의 전공인 식물학과 지질학을 기본과목으로 배우고, 선택과목으로 신화학과 민속학을 공부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기본과목만 세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페트라.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페트라는 수면상태에서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포드 안에 들어가서 느끼는 고통조차 말이다. 페트라와 하비에르가 잠들기 직전, 우주선이 공격을 당한다.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수석담당자는 수면 담당인 벤을 재촉한다. 모두가 잠에 빠졌다고 느꼈을 때(페트라는 밖의 소리를 듣고 있다.), 벤은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페트라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몰래 전달해 준다.

400년이 지난 2442년. 페트라는 깨어난다. 근데 가족들을 찾을 수 없다. 많던 포드들도 보이지 않는다. 피부색이 투명하여 비칠 정도에 다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이는, 모두가 같은 외모를 지닌 존재들만 보일 뿐이다. 페트라가 깨어난 곳에 남은 포드는 모두 4개. 우주선 안에 있는 존재들은 페트라를 비롯한 4명의 아이를 제타로 부른다. 400년 동안 주입시킨 "나는 콜렉티브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들은 자신이 배운 지식들을 활용할 목적으로 남겨진 존재들이 된다. 제타1인 페트라 페냐, 포드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마주친 수마(제타2), 금발 머리를 가진 루비오(제타3) 그리고 제일 어린 페더(제타4). 포드에 들어가 있는 동안 지구는 물론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이름조차 삭제된 이들과 달리, 페트라는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페트라의 가족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전 세계에 일어난 일은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를 뒤로하고 떠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지구에서의 옛 기억이 알려지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안 페트라는 사령관인 나일라와 크릭의 눈치를 보며 도망을 계획한다. 포드 안에서 수면을 취할 시간이 되면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쿠엔코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페트라의 쿠엔코를 좋아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전하는 한편 우주선을 벗어나 지역을 순찰하며 독이 있는 잎을 몰래 수집한다. 나일라로 식물학 전문가인 페트라에게 과학자 엡실론5와 함께 고엽제를 만들라고 하는데...

익숙한 환경을 떠나는 것도 두려운데, 깨어나니 가족들이 전부 사라진 상황에서 페트라는 마음이 동한다. 섣부르게 대응했다가는 자신조차 사라져버릴 위험 속에서, 페트라는 늘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혼자 도망칠 수 있지만, 함께 깨어난 동료들을 버릴 수 없다. 그녀를 그녀답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손길과 희생을 그녀 역시 기억하기 때문이다. SF가 가미된 한결 다른 결의 이야기 속에 페트라란 소녀의 성장기가 더해지면서 색다른 매력의 작품을 만나게 된 것 같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 또는 네 조상들이 네게 가져다준 이야기를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걸 자신의 것을 만들도록 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타르튀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4
몰리에르 지음, 김보희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는 결연한 마음이 필요한 법이에요."

네 번째 만나는 시카고 플랜의 고전 희곡은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의 타르튀프다. 앞에 만나봤던 3권(햄릿, 맥베스, 템페스트)과 달리 작품의 제목도, 작가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내용은 그 어느 책 보다 이해가 쉽고, 빠르고, 흥미로웠다. 대망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반전이까지도 말이다.

 

 

 

우선 작품의 제목인 타르튀프는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맥베스처럼 악역을 맡은 인물의 이름이다. 타르튀프는 교활한 사기꾼이면서 마치 종교에 심취한, 신실한 종교인인 양 가면을 쓰고 파리 귀족인 오르공의 집에 살고 있다. 오르공과 그의 어머니인 페르넬은 그런 타르튀프에게 빠져서 그가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타르튀프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그의 독선과 사기행각을 눈치채고 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오르공이 자신의 딸인 마리안을 타르튀프에게 시집보내려 하는 데서부 터다. 마리안에게는 이미 사랑을 약속한 발레르라는 청년이 있었고, 가족들이 모두 그 둘의 관계를 알고 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변덕에 마리안은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시녀인 도린이 그런 마리안에게 상황을 직시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줘야 할 지경이니 말이다. 한 술 더 떠 발레르는 자신이 아닌 타르튀프와 결혼하게 된 마리안에게 엉뚱한 말을 해서 둘은 사랑싸움을 할 지경에 이른다. (이 상황에 밀당을 하고, 티키타카를 할 지경인지...! 에휴...) 결국 도린의 중재로 둘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한편, 오르공의 아내인 엘미르를 만나는 타르튀프. 사실 타르튀프는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 마리안과 발레르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엘미르의 말에 타르튀프는 자신의 마음을 저돌적으로 고백한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아들 다미스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고백한 타르튀프를 용서할 수 없다. 결국 아버지인 오르공에게 자신이 본 바를 이야기하지만, 타르튀프에게 맹목적인 오르공은 아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다미스를 쫓아내고 마리안과의 결혼을 당장 저녁에 추진하기로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전 재산을 타르튀프에게 넘겨준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마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편하다. 사기꾼인지 모르고 오히려 가족들을 비난하는 아버지 오르공과 아들이 타르튀프의 진실을 목도하고 이야기하는데도 그런 아들을 믿지 못하는 페르넬. 다혈질인 아들 다미스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하는 수동적인 딸 마리안. 아들이 쫓겨나는 상황에 처하자 비로소 남편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엘미르까지...물론 독실한 종교인인 척 위선으로 둘러싸고 오르공의 집에 머무는 타르튀프가 가장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정상적인 사람이라곤 시녀인 도린과 엘미르의 오빠인 클레앙트 정도 아닐까?

근데 17세기 고전주의 작가의 작품을 현대에 읽어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가면을 쓰고 위장하는 종교인을 비롯한 사기꾼들을 만날 수 있어서가 아닐까? 다행이라면 마지막에 사이다 한 방이 있어서다. 아쉬움이 있다면 사이다 한방으로 해소되고 끝난다는 거? 마리안과 발레르의 결혼이나 사기꾼 타르튀프의 말로가 없이 급하게 마무리가 되어서 아쉽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폴리카르포 신부님 묵상, 무심의 다스림
김종필 지음, 김혜남 그림 / 포르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손 가득히 정성 어린 선물을 받아듭니다.

그 순간부터 그 두 손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물도 그렇거늘 뇌물은 말해 무엇하리이까.

그런즉 무심(無心)의 다스림은 온몸의 몫이옵니다.

이 책은 성 왜관에 있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사제인 김종필 폴리카르포 신부의 묵상집이다. 천주교인이 아닌지라, 수도원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책을 읽다 보니 책 속에 녹아있는 자연 속의 삶이 낯설지 않았다. 간혹 수도원을 찾아 신부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저자를 보고 일꾼으로 생각하고 물어보는 경우이다. 자연 속에 살면서 맡겨진 일을 가리지 않고 하다 보니 그렇게 보였으리라. 자신이 신부라고 하면, 대부분은 신부님이 직접 일을 하냐고 놀란다고 한다. 시작부터 뭔가 틀에 박히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책 속에 종종 등장하는 무심(無心)이 무슨 뜻일까 싶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속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단어의 의미를 깨닫고 보니, 저자의 시가 피부에 와닿는다.

사제의 글과 묵상이 책으로 엮어있기에, 종교적 색채가 주위를 맴돈다. 자연만큼이나 신을 향한 갈구와 회개의 모습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속세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인간의 본성이 그리 호락호락 놔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무심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초용 고추를 심고, 찻잎을 따고, 땅을 고르고, 큰 돌을 들어낸다. 물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무언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의 시간이 아닌, 자연과 교감할 시간 말이다. 나무를 베고, 돈을 파내기 위해서는 자연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자연에서 오래 살다 보면 그렇게 될까? 그저 빨리빨리,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의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색하고 낯설다. 그럼에도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이해가 된다.

묵상집이라는 이름답게, 책 속에는 시도 상당히 눈에 띈다. 시가 어려운 나지만, 의외로 계속 곱씹게 되는 시가 여러 편 있었다. 무심의 다스림, 무심의 깨달음이라는 부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글들이 상당수 있었다. 뜻을 알고 나니, 책 속의 글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책의 삽화가의 이름이 낯이 익다 했는데, 여러 작품에서 만났던 김혜남 작가의 작품이었다. 정신과 의사로 그녀가 쓴 글들 중에 공감되고 위로가 되는 글이 많았는데, 몇 년 전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린 따뜻한 삽화들이 책을 더 빛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자연에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살면, 지금의 욕심과 걱정들이 조금은 덜어질까? 싶었는데, 그마저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하나를 더하게 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얻는 지혜 (국내 최초 스페인어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6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수와 함께 생각하고, 다수와 함께 말하라.

흐름에 역행하게 되면 잘못을 깨달을 수 없고, 위험에 빠지기도 쉽다.

나이가 먹을수록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풀어갔던 부분이 나이가 들수록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며, 따져봐야 할 것들의 종류가 많아지기에 그런 것 같다. 사회생활의 8할이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보다 더 어려운 게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얻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등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전들을 읽어보면, 대개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논어와 같은 동양철학들의 경우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소위 "군자"의 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편, 서양의 철학의 경우는 상황에 맞는 처신을 통해 자기 실속을 차리는 듯한 뤼앙스를 풍길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장 16절)

이 책의 저자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으로 그는 사제였다고 한다. 이 책보다 앞서 읽었던 같은 출판사의 "우신예찬"의 작가 역시 신학자였는데, 그의 책과 비교되는 점은 이 책안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내용을 함축하는 한 줄의 제목과 길지 않은 설명이 마치 하루 한 장씩 읽어도 좋을법한 좋은 문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책 속 대부분의 이야기가 상황에 맞는 처신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좀 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기회주의자 같기도 했다. 얼굴이 드러날만한 일이나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나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고 속이는 법 등의 내용을 보고 좀 놀랐다. 해제를 통해 이 책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들을 접하니, 저자가 그런 사회 속에서 속임수, 음모 등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묘책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착하게 살면 피해본다는 사실이 갈수록 더욱 설득력을 얻는 사회 속에 살고 있어서일까? 저자의 말이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때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적당한 상황을 풀어갈 간계가 필요하다는 말이 마치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우리의 속담으로 빗대어 표현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다. 수백 년 전 스페인이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말이다.

정보를 얻을 때 조심하라.

사람은 주로 정보에 의존해 살아간다.

자신이 직접 보는 것은 많지 않고, 대신 남의 말을 듣고 살아가는 것이다.

귀는 진실의 쪽문이자, 거짓의 정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