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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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빈센트 반 고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내게 반 고흐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에 대한 이미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것, 자살을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클클)의 30번째 책의 주인공이 반 고흐라는 사실에 두 마음이 들었다. 우선 꾸준히 읽고 있는 시리즈였으니 일긴해야겠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인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물론 두 번째 주인공인 니체보다는 낫지만... 니체도 정말 시리즈가 아니었으면 사지도 않았을 텐데... 읽고 나서 바뀌긴 했다.)

저자는 반 고흐에 대한 사랑을 책 가득 펼쳐놓는다. 마치 반 고흐의 변호사인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때론 엄마 같은 마음으로 그의 모든 것을 변호하고, 이해하고, 설득했던 것 같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반 고흐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상처와 아픔들조차 생각지 않고 내 방식대로 매도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저자에게 감사하다.

빈센트 반 고흐. 27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0년 동안 1,000점의 그림을 남긴 불세출의 천재화가. 마지막 3년 동안 300점의 그림을 남겼다니, 그는 정말 어마어마한 작품을 쏟아내는 기계와 같은 인물이었다. 한편, 그는 생각도 많은 사람이었다. 생각이 많으면, 뭔가를 표현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는 생각도 많지만 표현도 과감하고 급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짧지만 굵게 활동했던 화가일 수 있었다.

고흐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동생인 테오다. 동생이지만, 형처럼 고흐를 챙겼던 유일한 가족. 이자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고흐에게는 태어나기 1년 전 사망한 형이 있었다. 하필 형이 태어난 날로부터 1년 후에 그가 태어났다. 그리고 큰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부모는 그에게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고 근무하는 교회( 고흐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한 편에 아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부모와 함께 살던 16년간 수시로 오가며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을 봤을 것이다. 그의 기분이 어땠을까? 물론 고흐가 태어난 이후에도 어머니는 큰 아들을 잃은 상심 속에서 살았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분명 고흐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책 속에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고흐와 관계를 맺었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동생 테오뿐 아니라, 함께 작업을 했다가 결국 불화하게 된 프랑스 화가 폴 고갱과의 일화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상처받은 영혼이었던, 누구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던 고흐의 이성관계는 참 안쓰러웠다. 그가 마음을 주었던 여성들은 하나같이 이런저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사는 하숙집 딸, 남편을 잃은 사촌누나, 임신 중인 창녀 등... 고흐는 아픔을 자신이 안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심리학을 전공하진 않아서 전문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애정결핍이 만들어 낸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도 "손을 놀리지 말고 일하라"라는 어머니의 인생철학 덕분에 고흐는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고, 들어간 미술학교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다 결국 선생과 불화하고 뛰쳐나오기도 한다. 당시 종이를 비롯한 미술재료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반대가 없었던 것은 화상을 꾸리는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흐를 지원하던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이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해 지원을 부담스러워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이, 고흐의 가족력이었다. 고흐의 형제들 중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고흐를 비롯하여 남동생 코르 또한 서른두 살에 자살했고, 여동생 빌레미나 역시 40년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테오 역시 고흐의 사망 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매독과 합병증으로 6개월 후 사망한다. 물론 고흐의 큰아버지나 사촌들 역시 간질이나 정신질환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가족력에 어린 시절부터 받은 상처와 애정결핍이 더해졌으니 고흐의 삶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가 자살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정확히 그가 자살한 것인지 누군가에 의해(실수도 포함해서) 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돌아온 고흐는 배에 권총상을 입는다. 자해를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고흐의 사망 후 이루어졌던 조사에서는 총의 출처가 석연치 않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상을 입은 고흐를 보고 지인이자 정신과 의사인 가셰나 동생 테오가 외과의에게 보이지 않은 대목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의사에게 빠른 치료를 받았다면 고흐가 빨리 세상을 등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남인 가셰는 그렇다고 쳐도, 테오는 왜 그랬을까? 한편으로는 테오의 마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데다가, 자신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형을 챙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살아생전에는 한 작품도 팔지 못했던 고흐. 하지만 후대에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재정적인 어려움과 감정적인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작품으로 표현해냈고, 그로 인해 지금 우리 곁에는 상당히 많은 작품이 남아있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고흐의 다른 면과 함께, 이번에도 내 안에 갇혀있던 고흐에 대한 편견을 걷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예민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놓을 줄 알았던 고흐. 짧은 시간 동안 불태웠던 예술혼을 담은 작품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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