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협력한다
디르크 브로크만 지음, 강민경 옮김 / 알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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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상이 어떻게 성립하고

그것이 어떤 숨겨진 법칙을 따르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과학의 숙명이다.

첫 장을 넘기며 알았다. 아... 제목에 낚였구나!!!

그렇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자연과 생태계를 책이 아닌 물리학 중에도 이론물리학, 복잡계를 다루는 과학자의 자신의 분야에 대한 소개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리학과 담쌓고 지냈던 나 인지라 첫 장부터 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몇 쪽까지 읽을 수 있을까? 가 주된 관심사였다. 다행이라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친절한 저자는 자신의 분야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나처럼 낚인 독자 포함) 사람들에게 첫 번째 조언을 건넨다. 우선은 1장을 꼭 읽고, 다음 장은 관심 가는 데로 읽으라고...^^

이론물리학, 복잡계 과학은 도대체 뭘까? 주된 포커스는 "복잡"과 "이론"에 있다. 물리학 하면 자동 떠올리는 그런 학문이 아닌, 버섯처럼 균사조직으로 여기저기 상호작용 연결망을 가지고 있는 과학의 다양한 부분을 다루는 학문을 말한다. 그렇기에 연구 분야도 생태학, 사회학, 생물학, 신경과학, 경제학, 전염병학 등 다양하다.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어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제목처럼 자연은(또는 사회는) 유기체처럼 서로 연결되며 협력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그렇기에 단순히 접근한 나는 낚였지만, 책의 제목은 복잡계 과학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복잡계 과학을 다루는 법은 의외였다. 복잡하기에 더 세밀하게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달리 전체적인 특징을 먼저 잡고, 무시해도 되는 부분은 과감히 접는다. 저자가 예를 든 스마일 이모티콘처럼 말이다.

이론물리학의 중심 주제는 대상의 근본을 파헤치면서 동시에

조감도를 보듯 대상을 멀리서 관찰하는 것이다.

내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탐구해야 한다....

이론물리학은 근본에 다다를 때까지

어떤 현상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학문이다.

이때 이론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수학, 측량, 사고실험, 그리고 인내심이다.

책을 통해 만나게 된 복잡계 과학은 얼마 전에 읽었던 크로스 사이언스(홍성욱 저, 21세기 북스)를 떠올리게 했다. 사실 세밀하게 나누어진 각 학문들을 살펴보면 어느 하나 독립적인 분야가 없다. 다른 학문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복잡계 과학 역시 그런 학문들을 연결하고 더 세분화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학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현대의 학문들은 서로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토대로 연구해야 본질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당장 우리가 지나고 있는 코로나19만 해도 그렇다. 단순히 전염병학만 연구한다고 해결될 수 없다. 그와 관련된 사회학과 도시과학, 수학과 화학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야 한다.

 

 

 

 

 

이 책의 흥미점은 1장에서 복잡성에 대해 개괄한 후, 구체적인 사례와 접목하여 좀 더 깊이 있고, 구체적인 학문의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점이다. 등장하는 사례도 참 다양하다. 역시 여러 학문과의 공통점에 집중해서 그런 것 같다. 가령 2장의 조화에서는 동기화와 관련된 각종 사례들과 학문이 등장한다. 시작은 런던 밀레니엄 브리지의 흔들림에 따른 자발적 동기화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는 생태계의 개체 수 동기화와 인간 사이의 동기화와 관련된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지루할 틈 없이 2장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3장의 복잡한 연결망은 앞에서 다루었던 버섯의 균사조직처럼 이어지는 연결망에 대한 이야기인데, SNS와 항공기, 큰 돌고래 이야기와 예방접종까지 이어진다.

4장의 임기성에도 역시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5장의 티핑포인트, 6장의 집단행동을 거쳐 7장의 협력에서는 생태계 속 진화학과 미생물학을 통한 공생(협력) 이야기를 접하며 얼마 전에 읽었던 협력의 유전자(니콜라 라이하니, 한빛비즈)가 떠올랐다. 또 죄수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경제학 이론도 접해있어서 흥미로웠다.

복잡계 과학을 통해 저자는 여러 규칙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한 협력과 공통점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여러 번 강조한다. 우리 머릿속과 생각 속에 가득 찬 한계와 경계선을 걷어내야 한다고 말이다. 그 한계선이 차이점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에 집중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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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상이 어떻게 성립하고 그것이 어떤 숨겨진 법칙을따르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과학의 숙명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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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비 오는 날 꽃놀이 여행을 떠났다 - 직장암 말기 엄마와의 병원생활 그리고 이별후유증
추소라 지음 / 렛츠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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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이지를 펴도 툭 툭... 청승맞게 눈물이 쏟아진다. 아이를 낳은 지 2년이 다 돼가니, 호르몬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저 주책맞게 감정이 이입돼서 그런다. 엄마라는 단어는 참 이상하다. 기쁨도, 슬픔도, 따스함도, 아픔도, 서글픔도 온갖 감정이 다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긍정적인 걸 보면, 우리 엄마가 내게 그런 존재여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엄마 故 강현숙 님과 딸 추소라다.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엄마를 생각하며 쓴 에세이다.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그녀에게 전해진 엄마의 암 판정 소식. 다행히 엄마는 잘 이겨냈다. 힘든 치료의 순간마다 가족들은 똘똘 뭉쳤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 보통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한다. 근데, 5년을 코앞에 둔 어느 날. 가족에게 찾아온 엄마의 재발 소식.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족 곁을 떠났다.

책을 통해 엄마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이, 엄마의 사진을 보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기와 같은 상황을 겪어낼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를 간직하기 위해 이 책을 냈다. 엄마의 투병기지만, 딸의 간병비이기도 한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긴 병에는 효자가 없다는데, 자녀들이 참 대단했다. 특히 큰 딸인 저자는 참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녀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참 잘 달성했다. 나중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녀는 엄마가 컨디션이 좋을 때마다, 영상통화를 통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다 만나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가 작별 인사 같아서 싫다 했지만, 상태가 안 좋아지면 그마저도 할 수 없기에 엄마를 위로하며 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 엄마가 조금이나마 편안할 수 있도록, 각종 장비나 물건을 틈틈이 챙기기도 하고, 약과 고통으로 인한 섬망이 나타날 때조차 긍정적으로 반응해 줬다. (엄마가 두려워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장 암이기에, 대변과 소변 등 뒤처리를 해야 했는데, 그때 그녀의 반응이 정말 눈물이 났다. 창피해 하고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자신과 동생들의 아기 시절을 이야기하며 엄마에게 갚을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이 남인 내가 봐도 너무 고맙고 예뻤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책을 통해 이들 가족은 엄마에게 남은 시간 동안 집중과 선택을 잘 했던 것 같다. 엄마와의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감정과 행동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물론 수시로 울컥할만한 상황들이나, 엄마를 배려하지 않는 친척이나 가족, 지인들의 모습에 화가 났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최대한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1순위로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후회했던 하나는, 엄마가 항암을 중단하고자 했을 때 엄마의 의견을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항암을 중단하면 엄마를 포기하는 기분이 들어서 한 선택이었지만,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좀 더 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같은 상황에 놓인 가족들을 위해 위로를 전한다. 당신의 선택은 숙고하고 고민 끝에 한 선택이기에 최선일 것이라는... 그러니 스스로 자책하지 말라는 말 말이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며 중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으로의 부탁도 기억에 남는다. 환자를 향한 진정한 배려와 병문안 에티켓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무턱대고 병문안을 하기보다는 미리 컨디션이 어떤지 보호자를 통해 확인해 주는 센스를 발휘하면 좋겠다는 것과 정말 환자를 생각한다면 대접받으려는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는 것 말이다. (같이 식사를 했다면 설거지 정도는 해주는 센스처럼)

또 하나는 연명치료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나도 내 연명치료는 반대하지만 부모님이나 남편, 자녀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다. 저자 역시 투병 중인 엄마에게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엄마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다행이었다는 그녀의 표현을 보며 나 역시 미리 조치를 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의 빈자리는 누구보다 크다. 두고두고, 갑자기 무언가를 봐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참 많은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그녀는 비가 오는 날 꽃놀이를 떠났다고 한다. 늦었지만 강현숙 님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남겨진 추소라 님과 가족들도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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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한국사 - 시와 노래로 만나는 우리 역사 푸른들녘 인문교양 40
조혜영 지음 / 푸른들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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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민족 중 하나이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춤과 노래로 풀어낸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 가득 담겨있는 시와 노래는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현직 한국사 교사가 수업에 학생들과 흥미롭게 다루었던 주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 파트가 아닌 우리나라의 전 역사를 통해 시와 노래에 담긴 숨은 의미를 한국사를 통해 찾아내고, 풀어내었다.

노래라 하면 곡조가 있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우리의 사전에서 정의하는 노래에는 운율을 가진 시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다 노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총 6막에 거쳐 고대, 고려, 조선,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노래 28편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된 노래는 무엇일까? 공무도하가라는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봤는데, 이 노래가 고조선 시대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가 지은이라는 것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게 없는데, 이 책 덕분에 그 숨은 뜻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책 속 남편은 물에 빠져 사망한다. 남편의 사망을 본 아내는 그 자리에 앉아 이 시를 읊고 자신도 똑같은 선택을 한다. 도대체 이 백수광부는 누구이고, 왜 강물에 몸을 던진 것일까? 저자가 풀어내는 당시 시대상은 참 놀라웠다. 내가 배운 거라고는 나이 든 미친 남자일 뿐이었는데, 그 남자의 직업(제사장, 무당) 뿐 아니라 그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까지 알 수 있다니...!

고려의 노래 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리화(沙里花)라는 시도 기억에 남는다. 언제 기록되었는지는 모르지만, 100년간의 무신정권기 동안 70번의 민란이 발생했고, 원 간섭기에도 고려 백성들은 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로 먹을 것조차 없는 상황을 참새와 늙은 홀아비라는 대상을 비유로 삼아 시로 표현했다. 여기서 참새는 수탈자를, 늙은 홀아비는 가난한 백성을 의미한다. 특히 사리화라는 뜻을 사는 목이 쉰다로, 리는 근심한다로, 화는 곡식을 의미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던 부분은 또 다른 의미 깊은 상황을 표현했던 뜻이었던 것 같다.

사실 책을 읽으며 현대사에서도 많은 곡과 책들이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내심 궁금했다. 책 속의 마지막 페이지 제목에도 해방 이후라는 긴 시간을 의미했지, 현대사를 떼어서 구성하지 않았기에 말이다. 다행이라면 마지막 페이지 말미에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가 살짝 등장한다.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키 작은 대통령을 디스 하는 표현이라서,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표현이 북한을 상징하기에 등)들로 각종 금지를 붙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걸 보면 금지시킨 사람이 뭔가 구린 데가 있어 서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밖에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에 시와 노래를 보면, 그 안에 담긴 백성들과 소시민들의 울분과 상처가 보인다. 시대가 흐르고, 변화가 일어났다 해도 왜 같은 상처와 아픔, 고통의 감정은 변화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이다. 다행이라면 때론 반어적이고, 때론 전혀 상상이 안되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이름조차 모르는 그들의 시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이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때의 감정을 여전히 느끼고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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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 회사 앞 카페에서 철학자들을 만난다면?
필로소피 미디엄 지음, 박주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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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 출근길과 퇴근길은 어떻게 다를까? 직장인에게 일요일 밤과 금요일 밤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일요일 밤이 너무 좋았다. 내일이면 출근한다!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마음이 지금까지 있는가? 결혼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배우자를 보고 설레는 마음이 있다면? 심장병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만큼이나 나 역시 그때와는 다른 형태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현 직장 14년 차다.) 애 둘의 뚜벅이 워킹맘인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도, 퇴근길도 전쟁이다. 출퇴근은 어린이집 등 하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5분에 희비가 교차한다. 어느 날은, 몇 번의 버스 환승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사무실 의자에 앉기도 한다. 방금 출근했는데 말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갑자기 마구잡이로 일이 끼어든다. 하원 시키려면 칼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늘따라 퇴근시간을 앞두고 일이 주어진다. 내 잘못이 아닌데, 덤터기를 쓰고, 욕을 먹는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본 직장인이라면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철학자들의 이름에 갑자기 확 반감이 드는가? 글쎄... 막상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가까워진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앞에서 늘어놓은 직장인에 속한다면 누구나 접할법한 상황들을 책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출근길에는 서양철학자들이, 퇴근길에는 동양철학자들이 우리의 출퇴근길을 함께한다.

출근길에 7명, 퇴근길에는 8명. 총 15명의 철학자들이 과연 직장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지혜와 사색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15개의 주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주제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출근길의 불평(나를 이용하려 하지 마)에는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와 조금은 낯선 이름의 영국 철학자 데릭 파핏이 등장한다. 사람은 내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할 때가 있다. 과연 타인을 도구로 삼는 게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등장한다. 책 속 예는 해외여행을 가게 된 동료에게 원하는 스웨터 구매를 요청했는데, 동료가 여행 직전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를 병문안 가서 그에게 스웨터 구매를 물어본다면, 그리고 빨리 나아서 꼭 스웨터를 사다 달라는 말을 했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을까? 상황을 보자마자 열이 뻗쳤다. 당연히 안되는 거 아닌가? 사고를 당한 동료의 안부가 먼저지, 그까지 스웨터 나발이 문제인가?라고 열을 낼만하다. (아마 사고당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거다.) 여기서 칸트와 파핏이 등장한다. 둘 다 비슷한 이론을 이야기하지만, 칸트가 더 극단적이다. 칸트는 순수도구원칙을 통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파팟은 타인을 이용할 때, 타인이 해를 입지 않았다면 도덕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만약 사고가 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여행을 떠나서 스웨터를 사 왔다면 타인을 도구로 삼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 예는 좀 극단적이긴 했지만, 우리 실생활에서 이래저래 자주 접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꽤 신선했다.

그렇다면 퇴근길에 기억나는 철학자는 누구일까?!잔혹(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의 한비자다. 역시 이번에도 예가 등장한다. 솔로이자 열정 많은 막내 사원.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도와준다. 근데, 그러다 보니 호구가 되어있다. 타인을 돕고자 한마음으로 희생을 감수한 것이었는데, 왜 그는 지탄의 대상을 넘어 회사 사람들로부터 잔혹함을 느끼게 되었을까? 사실 동양의 사상하면 떠오르는 게 공자인지라, 상대적으로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론들은 낯설다. 한비자나 순자 역시 그중 하나일 텐데, 우리의 직장 생활에는 한비자나 순자의 이론도 꼭 필요하다.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고 싶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희생할 필요는 없다. 그 희생이 내게 도움이 되고, 내 스스로 원하는 목적을 이루었다면 다르겠지만, 타인을 위한 희생은 잔혹할 뿐이다. 막내 사원 역시 그렇다. 그저 내가 지금 바쁘지 않아서, 딱히 약속이 없기 때문에 야근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야근을 통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게 행복하다면 몰라도, 솔로라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때론 상황을 통해 잔혹한 사회에 잔혹함으로 맞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잔혹은 위선군자들에게 대항하는 무기가 되고,

직장 내 불의나 불공평을 깨뜨리는 용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여전히 내일의 출근은 두렵고,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철학자들의 조언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조금의 숨 쉴 틈을 발견했다면, 우리도 그들 철학자들도 만족할 것이다. 직장인의 생리를 철학을 통해 풀어내었던 실제적이고, 신선한 철학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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