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 회사 앞 카페에서 철학자들을 만난다면?
필로소피 미디엄 지음, 박주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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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 출근길과 퇴근길은 어떻게 다를까? 직장인에게 일요일 밤과 금요일 밤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일요일 밤이 너무 좋았다. 내일이면 출근한다!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마음이 지금까지 있는가? 결혼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배우자를 보고 설레는 마음이 있다면? 심장병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만큼이나 나 역시 그때와는 다른 형태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현 직장 14년 차다.) 애 둘의 뚜벅이 워킹맘인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도, 퇴근길도 전쟁이다. 출퇴근은 어린이집 등 하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5분에 희비가 교차한다. 어느 날은, 몇 번의 버스 환승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사무실 의자에 앉기도 한다. 방금 출근했는데 말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갑자기 마구잡이로 일이 끼어든다. 하원 시키려면 칼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늘따라 퇴근시간을 앞두고 일이 주어진다. 내 잘못이 아닌데, 덤터기를 쓰고, 욕을 먹는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본 직장인이라면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철학자들의 이름에 갑자기 확 반감이 드는가? 글쎄... 막상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가까워진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앞에서 늘어놓은 직장인에 속한다면 누구나 접할법한 상황들을 책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출근길에는 서양철학자들이, 퇴근길에는 동양철학자들이 우리의 출퇴근길을 함께한다.

출근길에 7명, 퇴근길에는 8명. 총 15명의 철학자들이 과연 직장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지혜와 사색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15개의 주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주제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출근길의 불평(나를 이용하려 하지 마)에는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와 조금은 낯선 이름의 영국 철학자 데릭 파핏이 등장한다. 사람은 내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할 때가 있다. 과연 타인을 도구로 삼는 게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등장한다. 책 속 예는 해외여행을 가게 된 동료에게 원하는 스웨터 구매를 요청했는데, 동료가 여행 직전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를 병문안 가서 그에게 스웨터 구매를 물어본다면, 그리고 빨리 나아서 꼭 스웨터를 사다 달라는 말을 했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을까? 상황을 보자마자 열이 뻗쳤다. 당연히 안되는 거 아닌가? 사고를 당한 동료의 안부가 먼저지, 그까지 스웨터 나발이 문제인가?라고 열을 낼만하다. (아마 사고당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거다.) 여기서 칸트와 파핏이 등장한다. 둘 다 비슷한 이론을 이야기하지만, 칸트가 더 극단적이다. 칸트는 순수도구원칙을 통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파팟은 타인을 이용할 때, 타인이 해를 입지 않았다면 도덕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만약 사고가 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여행을 떠나서 스웨터를 사 왔다면 타인을 도구로 삼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 예는 좀 극단적이긴 했지만, 우리 실생활에서 이래저래 자주 접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꽤 신선했다.

그렇다면 퇴근길에 기억나는 철학자는 누구일까?!잔혹(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의 한비자다. 역시 이번에도 예가 등장한다. 솔로이자 열정 많은 막내 사원.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도와준다. 근데, 그러다 보니 호구가 되어있다. 타인을 돕고자 한마음으로 희생을 감수한 것이었는데, 왜 그는 지탄의 대상을 넘어 회사 사람들로부터 잔혹함을 느끼게 되었을까? 사실 동양의 사상하면 떠오르는 게 공자인지라, 상대적으로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론들은 낯설다. 한비자나 순자 역시 그중 하나일 텐데, 우리의 직장 생활에는 한비자나 순자의 이론도 꼭 필요하다.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고 싶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희생할 필요는 없다. 그 희생이 내게 도움이 되고, 내 스스로 원하는 목적을 이루었다면 다르겠지만, 타인을 위한 희생은 잔혹할 뿐이다. 막내 사원 역시 그렇다. 그저 내가 지금 바쁘지 않아서, 딱히 약속이 없기 때문에 야근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야근을 통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게 행복하다면 몰라도, 솔로라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때론 상황을 통해 잔혹한 사회에 잔혹함으로 맞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잔혹은 위선군자들에게 대항하는 무기가 되고,

직장 내 불의나 불공평을 깨뜨리는 용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여전히 내일의 출근은 두렵고,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철학자들의 조언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조금의 숨 쉴 틈을 발견했다면, 우리도 그들 철학자들도 만족할 것이다. 직장인의 생리를 철학을 통해 풀어내었던 실제적이고, 신선한 철학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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