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 천사와 악마 사이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안내서
마이클 슈어 지음, 염지선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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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제목이지만, 소개 글을 보며 흥미가 생겼다. 우리의 일상의 이야기를 윤리 속으로 끌어들이는(윤리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일 수도) 상황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 즈음 겪어봤거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상황이기에 말이다. 저자 소개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한 줄의 저자 소개가 필요할 듯하다. 내용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상당히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굿 플레이스"다. 넷플릭스를 안 보는 사람이기에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자꾸 언급하는 거냐?' 굿 플레이스는 넷플릭스에 방영한 윤리를 주제로 한 드라마로,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슈어는 굿 플레이스의 제작자다.

책 속에 등장하는 질문이 익숙한 이유는 일상의 질문이기도 하지만,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마주했던 이야기들도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의 질문이 그저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독자들이 철학을 좀 더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예를 등장시키지만 철학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 실존주의 등이 등장하니 말이다.

다행이라면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말장난과 유머가 난무하고, 실제적인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와있다. (팁이라면 중간중간 각주가 자주 등장하는데, 각주를 함께 읽으면 더 흥미롭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아무 이유 없이 친구의 얼굴을 후려쳐도 될까?"라는 질문을 통해 등장한다. 이 질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할 것이다. 왜일까? 내가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어서? 우리 안에 판단할 수 있는 윤리적 잣대가 있기 때문이다.(물론 친구의 얼굴을 후려친 후 친구의 반응이 두려워서 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절대적 윤리, 완벽한 윤리의 삶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정답은 노! 다. 저자는 중용을 설명하며 극단적인 자질을 예로 든다. 중용은 말 그대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간지대를 의미하는데,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위험한 상황을 보고 침만 질질 흘리며 바라보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반대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규칙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뭐든지 적당해야 좋은 것이다. 과유불급!

첫 번째 질문이 쉬웠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친구가 이상한 셔츠를 입고 왔을 때,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야 할까? 시식코너에서 몇 개나 먹어도 될까?(한 사람당 하나라고 쓰여있지만 더 많이 먹어도 될까?), 수백만 명이 굶어죽고 있는데 최신 핸드폰을 사도 될까? 등의 질문 말이다.

흥미롭지만, 읽고 나면 생각의 틀이 넓어지는 신기한 윤리의 맛을 보고자 한다면 가감 없이 추천한다. 대신 읽다가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은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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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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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접하고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지극히 정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평 설이었다. 사실 그동안 조선시대의 왕 중 가장 무능한 왕이라면 단연 "선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선조와 인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업적을 세운 왕에게 붙이는 "종"이 선조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굳이 둘 중 하나를 따지자면 차라리 선조에게 어울리겠다 싶다. 인조는 정말.... ㅠ

이 책은 인조를 중심으로, 그와는 떼려야 ?? 수 없는 전쟁이었던 병자호란과 함께 "병자호란 전 인조(1부). 병자호란 중 인조(2부), 병자호란 후 인조(3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책에 함께 담긴 1636은 병자호란이 발발한 연도를 말한다.(실제로 청의 홍타이지의 군대가 국경인 압록강에 다다른 시기는 음력 12월 8일로, 양력으로 보자면 1637년 1월 3일이기에 현재의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병자호란이 아니라 정축호란이어야 맞는다고 한다. 다시는 음력을 썼으니... 병자호란이라 불리는 것이다.)

조선의 왕 중 단 두 명만 "군"이라고 불리는데, 한 명은 연산군이고 또 한 명은 광해군이다. 광해군을 중심으로 앞은 선조, 뒤는 인조다. 무능한 두 명의 왕 사이에 끼어있는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좋은데, 여러 가지 이유(폐모살제, 명나라를 배신, 무리한 공사를 벌임 등)로 쫓겨났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반정 끝에 왕이 된 인조는 우선 광해군의 측근들을 처치한다. 인조를 왕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하기로 되어있던 김류는 두려움에 반정을 일으키고자 했던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주위 사람들의 강권에 이괄이 대장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뒤늦게 합류한(그에도 사연이 있다.) 김류에게 다시 대장직을 넘기게 된 이괄은 큰일을 해냈음에도 2등 공신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괄의 난에 대한 부분이었다. 교과서에서 정말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만났던 이괄의 난의 실제 이야기를 알고 나니,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공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가족들의 목숨까지 위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그렇다고 이괄의 난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의 선조도, 병자호란의 인조도 자기 살기 급급한 나머지 백성을 두고 몽진한다. 가뜩이나 삶이 팍팍한데, 온 백성의 어버이라고 말하는 임금이 백성을 두고 자기 살길만 찾아 나선 상황을 마주했을 때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실 광해군의 폐위에 대한 부분도 폐모살제, 명에 대한 배신 등은 백성들의 피부에 와닿는 이유가 아니었다고 한다. 과도한 부역을 동원했던 것이 문제였지 말이다. 하지만 인조 역시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도망쳤다 돌아와서 민생을 살피기보다는 자신 위주의 정책들을 개편하기에 급급했으니 말이다. 시작부터 이렇게 틀어진 인조 정권은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을 마주하며 대놓고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다. 반면, 지도자의 무능에 비해 백성들은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싸웠고 자리를 지켰으니 말이다. 이 둘의 비교가 더 씁쓸함을 자아냈다.

거기에 얹힌 소현세자의 이야기까지... 참 인조는 구색 맞추기를 좋아하는 왕이었던 것 같다. 그놈의 명분이 뭐라고... 아들과 며느리까지 그렇게 냉대할 수 있었을까? 늘 역사를 마주할 때마다 느끼지만, 그때 인조가 아닌 소현세자가 왕이었다면, 인조에 의해 반정이 일어나지 않고 광해군이 계속 왕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컸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의 현재는 전쟁 상황은 아니지만, 총만 들지 않았지 여전히 우리는 전쟁통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위정자의 자질은 무엇일까? 인조의 과거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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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밀도 - 나를 나답게 하는 말들
류재언 지음 / 라이프레코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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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 둘러서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나마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같은 표현이라도 듣기 좋게, 소위 "예쁘게"말하는 것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말로 인해 관계가 틀어진 경험도 꽤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말"이나 "화법"에 대한 책을 종종 찾아읽는 편이다. 하지만 말은 체화되어야 한다는 것. 생각하고 말할 때도 있지만, 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는데 계산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얼마 전에도 오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저자의 책을 읽으며 능수능란한 언변에 놀랐는데, 이번 책의 저자 역시 변호사였다. 아무래도 예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말로 먹고사는(?) 직업인지라 다른 사람보다 더 대화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책 속의 이야기는 담백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들이 참 많았다.

특히 대화의 방법을 고래와 상어로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공격적인 말투의 상어식 대화와 이해하고 포용하는 고래의 대화는 듣는 사람의 마음의 변화의 차이가 크다. 상어식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게 되는 반면, 고래식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자리가 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상어식 대화의 예는 뒷장에도 다시 등장하는데 내 대화법은 그러고 보면 고래식이 아닌 상어식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 책 소개 페이지를 통해 책의 한 장면을 미리 맛보았는데, 그 소개 페이지를 읽으며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글이 있다. 바로 장모님과의 일화가 소개되었던 부분이었는데 장모님의 대화법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말의 체화를 깨닫게 되었다. 만약 그때 장모님이 상어식 대화를 풀어가셨다면 과연 어땠을까? 아마 저자는 그 이후에도 장모님과의 대화를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거래처 직원이나 우리 회사 영업사원들의 어투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격적이고 무례한 말투는 듣는 순간 마음을 닫게 만든다. 반면, 경직되고 굳어져있는 관계에도 농담과 위트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는 효과를 가지고 온다. 책을 읽다 보니, 오래전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약속된 시간에 지각을 했고, 그로 인해 큰 계약 건을 놓칠 상황이었다. 당연히 담당 거래처 직원은 늦게 도착한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때 농담을 곁들인 대표님의 한마디가 상황을 풀어냈는데, 그 말이 지금 들어도 재미있다. "우선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근데, 저희가 지각한 데는 **사의 잘못도 있습니다." 그 말에 그 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어진 대표님의 말. "저희는 사원부터 전 직원이 **사의 메일을 사용하고 있고, 오늘 출발할 때 길 찾기 역시 **사의 프로그램을 사용했거든요. **사가 알려주는 길로 왔는데 지각했으니까, **사의 잘못도 있는 거죠." 그 한마디에 미팅짱은 순간 피식 웃음이 돌았고 다행히 계약을 무사히 마치셨다고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느끼는 요즘이다.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나, 뒤끝 없는 말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뒤끝 없이 말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해서는 위해로 느껴지거나, 예의 없이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사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말의 힘을 다시 한번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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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준 너에게, 마지막 러브레터를
고자쿠라 스즈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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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콩닥콩닥 떨리는 연애의 감정을 느끼며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짧은 편지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는 것. 모든 게 빠른 지금의 시대에서 보기에는 답답하고 느린 듯 보이지만, 그런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서 설렘을 더 도드라지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갑자기 옛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다. 편지를 쓸 용기는 물론 고백을 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근데 편지가 왔다.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편지와 함께 인형도 들어있었다. 아쉽게도 친한 친구들의 장난이었지만(나중에 보니 내가 좋아했던 선배는 같은 학년의 안면이 있는 친구와 이미 사귀고 있어서 마음을 접었다.), 잠시나마 콩닥콩닥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오랜 소꿉친구 이치노세 가이토를 좋아하는 아이하라 미즈키는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쉽지 않다. 앞자리에 앉았던 리쓰와 친해진 미즈키. 리쓰는 성격도 좋지만, 예쁜 외모를 가졌다. 그리고 가이토와 우연히 만날 때마다 미즈키와 함께 있던 리쓰는 결국 가이토와 사귀게 된다. 오랜 짝사랑 상대 가이토를 졸지에 리쓰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리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미즈키는 축구부인 가이토의 경기를 몰래 볼 수 있는 명당자리인 도서관에 가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펴놓고 가이토를 지켜본다. 그날도 역시나 가이토를 몰래 보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미즈키는 마음을 꺼낸다. 근데, 마음에서 편지 한 장이 떨어진다. 미즈키가 눈에 밟혀서 꼭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편지였다. 당황스러웠다. 미즈키는 사토라는 사람이 찾는 상대가 진짜 자신이 맞는지 궁금했고, 그 편지의 답장을 "마음" 안에 넣어둔다. 그렇게 사토와 "마음"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게 된 미즈키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게 되고, 사토와 책으로나마 무언가를 주고받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사토의 정체가 누구인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어느 날, 도서 위원인 3학년 선배의 이름이 사토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편지 친구의 정체가 아닐까 의심을 갖는다. 한편, 그날도 역시 사토에게 온 편지를 읽기 위해 마음을 빼려고 다가간다. 근데 미즈키보다 먼저 마음을 꺼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문제아로 이름난 스기우라였다. 졸지에 사토와의 편지를 스기우라에게 들키고 만 미즈키. 그의 반응이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책의 시작부터 미즈키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사토의 정체가 궁금했다. 조금이라도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용의선상(?)에 올리고 관찰했다. 내가 예상했던 인물이 관련은 있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공부는 잘하지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서툴렀던 미즈키는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았다. 그랬기에 오래도록 마음을 주고 있던 가 이토에게 고백할 수 없었다. 리쓰와 친하게 지내는 사쿠라와 마이가 자신의 뒷담화를 하는 것을 듣고도 대놓고 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문제아라고 불렸던 스기우라와 편지를 계기로 친해지는 미즈키의 모습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었던 것 역시 편지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신을 바라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평범하고 자신감 없던 삶이 조금씩 변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여러 명의 사토 중 진짜 사토를 알게 되는 순간.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과연 이들은 만날 수 있을까? 한편의 순정 영화 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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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양조장집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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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접한 적은 없지만, 양조장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술"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니 간장 양조장집도 있구나! 싶었다. (양조간장의 그 양조를 왜 생각 못 했던 걸까?;;) 이 책은 오래 대를 거쳐 이어온 가업인 스즈메 간장 양조장을 경영한 야마오 가문의 이야기다. 가슴 아픈 이야기와 함께 출생의 비밀과 반전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진 것 없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긴카는 현재 세 명의 손주를 두고 있는 할머니인데, 이야기의 시작은 50년 된 양조장을 다시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땅을 파기 시작하고, 작은 상자가 하나 발견된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모노를 입은 아이의 두개골이 발견된다. 상자를 보는 순간 긴카는 좌부동자가 생각난다. 양조장의 수호신이라 일컬어지는 파란 기모노를 입은 남자아이의 모습을 한 좌부동자 말이다. 좌부동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옛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녀가 처음 양조장을 찾았던 때의 기억부터 말이다.

화가인 나오타카와 가정주부 미노리의 외동딸인 야마오 긴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가업을 이어야 하는 아빠를 따라 나라현 가시하리시로 내려간다. 집안의 큰 아들인 아버지가 양조장을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도착한 스즈메 간장 양조장에는 할머니인 다즈코와 긴타보다 1살 많은 늦둥이 고모 사쿠라코가 살고 있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도벽이 있는 엄마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특히 시어머니인 다즈코는 대장부 기질이 있다 보니, 미노리와는 맞지 않았다. 반면 미노리는 공을 들여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재료값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요리하는 것이 금지된다. 평소에도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도벽) 미노리는 결국 병이 도진다. 대대로 양조장의 도지였던 오하라의 모자와 장갑, 펜 등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모자를 발견한 긴카가 몰래 돌려놓으러 양조장에 가지만, 긴카가 훔쳐 간 것으로 오해한 오하라는 긴카에게 크게 화를 낸다. 거기다 긴카의 친구가 아끼는 열쇠고리까지 훔친 미노리 때문에 긴카는 친구들과 사이가 벌어지고 왕따 신세가 된다. 너무 속이 상한 긴카는 울면서 양조장에 들어갔다가 기모노를 입은 남자아이가 간장병 사이로 숨는 것을 보게 된다. 틀림없는 좌부동자라는 생각에 긴카는 다즈코와 오하라, 나오타카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문제는 좌부동자는 양조장을 이어갈 당주에게 보이는 데, 아빠인 나오타카는 좌부동자를 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급기야 긴카가 본 게 좌부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다가 긴카가 나오타카의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할머니인 다즈코를 닮았다고 하는 긴카는 사실 다즈코와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그렇기에 가업을 물려받을 필요도, 그녀가 당주가 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야마오 가문의 딸이었던 다즈코 역시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데릴사위를 들였지만 그녀는 적어도 아마 오 가문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긴카가 양조장을 물려받았는지를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는 이 집안의 아픈 과거가 하나 둘 드러난다. 남편이자 오하라 도지의 아들인 쓰요시와의 이야기 또한 책에 담겨있다.

과연 양조장에서 발견된 유골은 정말 좌부동자가 맞을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유골일까?

사람은 저마다의 걱정과 근심이 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과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 밝히고 속시원히 살고 싶지만, 내 생각만 하면서 살 수만은 없기에 응어리를 가슴 깊이 숨기고 살아가기도 한다. 역시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어른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도 되었다. 하나의 큰 목표를 지키기 위한 그녀들의 선택이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 목표 덕분에 오랜 세월 가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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