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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양조장집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실제로 접한 적은 없지만, 양조장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술"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니 간장 양조장집도 있구나! 싶었다. (양조간장의 그 양조를 왜 생각 못 했던 걸까?;;) 이 책은 오래 대를 거쳐 이어온 가업인 스즈메 간장 양조장을 경영한 야마오 가문의 이야기다. 가슴 아픈 이야기와 함께 출생의 비밀과 반전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진 것 없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긴카는 현재 세 명의 손주를 두고 있는 할머니인데, 이야기의 시작은 50년 된 양조장을 다시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땅을 파기 시작하고, 작은 상자가 하나 발견된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모노를 입은 아이의 두개골이 발견된다. 상자를 보는 순간 긴카는 좌부동자가 생각난다. 양조장의 수호신이라 일컬어지는 파란 기모노를 입은 남자아이의 모습을 한 좌부동자 말이다. 좌부동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옛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녀가 처음 양조장을 찾았던 때의 기억부터 말이다.
화가인 나오타카와 가정주부 미노리의 외동딸인 야마오 긴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가업을 이어야 하는 아빠를 따라 나라현 가시하리시로 내려간다. 집안의 큰 아들인 아버지가 양조장을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도착한 스즈메 간장 양조장에는 할머니인 다즈코와 긴타보다 1살 많은 늦둥이 고모 사쿠라코가 살고 있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도벽이 있는 엄마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특히 시어머니인 다즈코는 대장부 기질이 있다 보니, 미노리와는 맞지 않았다. 반면 미노리는 공을 들여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재료값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요리하는 것이 금지된다. 평소에도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도벽) 미노리는 결국 병이 도진다. 대대로 양조장의 도지였던 오하라의 모자와 장갑, 펜 등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모자를 발견한 긴카가 몰래 돌려놓으러 양조장에 가지만, 긴카가 훔쳐 간 것으로 오해한 오하라는 긴카에게 크게 화를 낸다. 거기다 긴카의 친구가 아끼는 열쇠고리까지 훔친 미노리 때문에 긴카는 친구들과 사이가 벌어지고 왕따 신세가 된다. 너무 속이 상한 긴카는 울면서 양조장에 들어갔다가 기모노를 입은 남자아이가 간장병 사이로 숨는 것을 보게 된다. 틀림없는 좌부동자라는 생각에 긴카는 다즈코와 오하라, 나오타카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문제는 좌부동자는 양조장을 이어갈 당주에게 보이는 데, 아빠인 나오타카는 좌부동자를 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급기야 긴카가 본 게 좌부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다가 긴카가 나오타카의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할머니인 다즈코를 닮았다고 하는 긴카는 사실 다즈코와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그렇기에 가업을 물려받을 필요도, 그녀가 당주가 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야마오 가문의 딸이었던 다즈코 역시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데릴사위를 들였지만 그녀는 적어도 아마 오 가문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긴카가 양조장을 물려받았는지를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는 이 집안의 아픈 과거가 하나 둘 드러난다. 남편이자 오하라 도지의 아들인 쓰요시와의 이야기 또한 책에 담겨있다.
과연 양조장에서 발견된 유골은 정말 좌부동자가 맞을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유골일까?
사람은 저마다의 걱정과 근심이 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과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 밝히고 속시원히 살고 싶지만, 내 생각만 하면서 살 수만은 없기에 응어리를 가슴 깊이 숨기고 살아가기도 한다. 역시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어른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도 되었다. 하나의 큰 목표를 지키기 위한 그녀들의 선택이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 목표 덕분에 오랜 세월 가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