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를 위한 시 - Post-BTS와 K-Pop의 미래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2
이규탁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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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아쉬움이 있다. 물론 소제목에 구체적인 주제가 담겨있긴 하지만, 솔직히 "시"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 큰 지라 시리즈로 읽는 "인생명강"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안 읽었을 지도 모르겠다. Z를 위한 시라는 제목이 사실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함께 담긴 "POST-BTS와 K-POP의 미래"라는 소제목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K-POP 붐이 시작되어, BTS로 정점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K-가 붙은 각종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령 K-푸드, K-드라마를 비롯하여 코로나 방역에도 K-방역이 붙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라 할 수 있는 K-POP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 역시 K-POP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국내 보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을 의미하는 정도의 정의가 떠오른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K-POP의 정의는 좀 더 세부적이라 할 수 있었다. 단지 외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음악뿐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든 모든 시스템을 통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에는 음악의 멜로디나 가사뿐 아니라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가수를 관리하는 소속사의 시스템 등이 포함된다.

책의 저자가 동시대 나이라서 그런지, 책 속에 등장하는 K-POP의 이야기가 한층 흥미로웠다. 음악도 시대를 탄다는 말에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같은 세대에 있다고 음악적 취향이 같지는 않다는 것 역시 동의한다. 가령 1970년대 세시봉으로 대표할 수 있는 미국 중심 통기타 음악과 남진과 나훈아로 대표되는 트로트 음악이 공존하지만, 그 둘의 음악적 성향은 많이 달랐다. 몇 년 새 트로트 붐이 일고 있지만, 트로트의 팬층은 중. 장년이 두텁지 10대 청소년들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K-POP의 세대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한국의 음악은 상당한 변화를 경험한다. 뒤 이어 나온 H.O.T와 젝스키스 등의 아이돌 그룹은 한국음악의 지형을 상당수 바꿔놓았다. 단순한 댄스 음악의 형태를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결합과 다양한 언어의 결합, 의상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을 거쳐 데뷔하는 형태 등 K-POP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H.O.T를 거쳐 2007~2012년까지의 EDM, 힙합, 팝 등의 형태의 음악 장르를 가진 2세대 K-POP이 등장한다.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 빅뱅 등이 대표적인 그룹이다. 특히 2세대의 경우 그룹 멤버의 국적이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한국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장을 겨냥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3세대 그룹의 대표는 BTS다. 동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와 중동까지 넘나드는 K-POP의 시장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인터넷 미디어 플랫폼의 확장으로 어디서나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특히 BTS의 성공 요인 4가지를 분석한 내용이 등장한다. 흙수저라 할 수 있는, 당시 거대 기획사가 아닌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한 BTS는 사실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더 큰 바람을 일으켰다. 오히려 외국의 K-POP 열광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밖에도 아미라고 불리는 다 국제적 팬클럽도 성공 요인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만난 K-POP의 성공에는 상당한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이 담겨있었다. 한순간의 갑작스러운 우연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거쳐 쌓아온 열매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K-POP이 더 많은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기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니즈에 맞는 음악적 변화와 좀 더 체계적인 관리와 세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포용력 을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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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ky829 2023-04-11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BTS의 히트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명랑걸우네 2023-04-12 10:50   좋아요 0 | URL
세상에나...큰오해를 할뻔했네요;;;감사해요^^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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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참 좋아하지만, 유달리 복잡해 보이는 시대가 되면 자연스레 손을 놓게 된다. 그러다 보니 수박 겉핥기 식의 단편적인 흐름 정도만 알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모르는 경우가 상당수다. 특히 세계사의 경우 말이다. 영국사는 글쎄... 아는 게 1도 없다는 게 맞을 듯싶다. 피의 메리와 얼마 전 세상을 뜬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니 말이다. 그래서 "명화로 읽는"이 앞에 붙어있는 이 책에 관심이 생겼다. 알고 보니 벌써 2권의 "명화로 읽는" 시리즈가 나와있었다. 합스부르크 역사에 대한 책은 제목을 본 기억이 있는데, 부르봉 역사는 출간조차 몰랐다. (3권을 읽으면서 부르봉가에 대한 언급이 돼서 궁금해졌다. 추후에 읽어봐야겠다.) 각설하고, 역사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담겨있는데다가 역사와 관련된 그림(대다수 초상화지만)이 등장하기 때문에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국사는 헨리 7세부터 시작되는 잉글랜드 혈통의 튜더가부터 스코틀랜드 혈통의 스튜어트가, 독일 혈통의 하노버가 와 그로부터 이어진 왕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영국의 왕가의 생명은 참 짧은 것 같이 보였다. 가문의 이름이 달라진 것은 마치 우리의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듯 전혀 다른 계통이 왕이 되었을 거라 지레 짐작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자면 가문의 이름이 달라졌다고 혈통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방계건 대를 건너서건 미미하게나마 혈통이 이어지고 있었고, 의회와 군주의 협의로 가문명을 바꾼 것이라 한다.

영국사 속에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것은 유럽의 여러 나라와 혼인 동맹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 있는 가문 간의 결합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에스파냐를 비롯하여 프랑스 등의 왕족과의 결혼을 통해 자신의 정권을 공고히 하려 노력한다. 참 흥미로운 왕들이 많았다. 바람둥이계의 최고봉을 꼽자면 단연 헨리 8세가 아닐까? 자신의 기호(?)에 따라 왕비를 갈아치우는 그의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큰아들 아서의 아내로 데리고 온 에스파냐 왕가의 딸 캐서린은 결혼식을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는다. 결국 둘째 아들인 헨리 8세의 아내가 된 캐서린. 그때부터 헨리 8세의 여성편력은 시작된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궁녀 출신인 앤 불린을 아내로 맞이하지만,(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원래 형수였던 캐서린과의 결혼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바티칸의 허락을 받지 못한 그는 바티칸과 절연하고 국왕 지상법을 제정하여 영국 국교회를 탄생시킨다.) 그녀 역시 딸 엘리자베스만 낳는다. 물론 다른 여성(제인 시모어)를 통해 아들(에드워드 6세)를 낳지만, 그의 아내는 총 6명에 이른다. 물론 일부다처제가 아닌 일부 일처제에 따라 다른 여성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이혼을 하거나 아내를 못살게 굴어 죽이고 솔로가 된다. 튜더가(메리 스튜어트)에서 이어진 스튜어트 왕조 역시 흥미롭다. 특히 스튜어트왕조의 초대 왕이라 할 수 있는 제임스 1세는 영국 왕이자 스코틀랜드 왕(제임스 6세) 였다는 사실! 세 번째 등장하는 왕조인 하노버 가는 사실 현재 재위 중인 찰스 3세의 윈저가와 다르지 않다. 성이 바뀌었을 뿐 직계라는 사실이 놀라웠다.(하노버가의 마지막 왕이라 할 수 있는 빅토리아 여왕 사후 아들인 에드워드 7세가 왕위를 물려받지만 여왕의 아들이었기에 왕조의 이름이 바뀐 것이다.)

가계도와 그림을 통해 마주한 영국사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자신의 복수보다는 가문의 운명을 걱정하는 왕이 있는 반면, 자신의 욕심만을 차린 왕도 있었다. 훌륭한 왕이라고 오래 재위하는 것도 아니고, 악랄한 왕이라고 쉽게 망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역사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앞에 출간된 책들을 읽어봤으면, 영국사의 맥락이 조금 더 편하게 잡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도 역주행을 하는데, 역사라고 못할 일이 있을까 싶다. 영국사에 이어 다른 역사 또한 앞으로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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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거대한 전환 - AI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김수민.백선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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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핫한 단어가 뭘까? 요 근래 들어 챗GPT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챗GPT가 뭔지 잘 몰랐다.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프로그램류는 이미 과거부터 있었는데 왜 유독 챗GPT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처럼 챗GPT를 아예 모르는 독자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 활용도를 두고 고민하는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챗GPT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챗GPT를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물론 우리나라의 거대 AI 분야에 대한 내용 그리고 챗GPT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량의 AI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챗GPT가 무엇일까? 가 중요할 것 같다. 챗GPT는 오픈 AI가 출시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말한다. 2015년 샘 올트먼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7명이 합자해 세운 회사다. (현재는 일론 머스크는 손을 뗐다.) 사실 과거부터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는 있어왔다. 가령 MSN의 심심이나 빅스비의 시리처럼 질문에 대답을 해주거나, 사용자의 요청에 응답하는 형태는 과거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챗GPT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챗GPT는 단순한 대답을 넘어선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특정 단어 등을 선택해서 광고 문구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나 책이나 기사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것 등을 비롯하여 물음에 대해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다양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챗GPT는 오픈한지 5일 만에 100만 명의 사용자를 모집했다.

현재 챗GPT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소스 자체가 오픈되어 있기에 누구나 활용할 수 있고, 문제점에 대해 피드백을 통해 계속 바꾸어가는 현재 진행형 생성형 AI라는 점도 강점 중 하나다. 챗GPT의 등장 이후 시장의 판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초기 투자자인 일론 머스크가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과의 상충성을 이유로 투자에서 손을 뗀 후, 오픈 AI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투자를 받게 되었다. 시작은 오픈 AI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공익적 측면) 생각이 강했지만, MS의 투자 이후 오픈 AI는 상업적이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MS는 챗GPT를 검색엔진 빙을 포함한 자 회사의 여러 프로그램에 활용하여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챗GPT가 선두주자임은 분명하지만, 방관할 수는 없다.

책 속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초거대 AI 시장 이야기도 담겨있다. 가령 네이버와 다음 카카오를 비롯하여 통신사들이 자체 개발한 AI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초거대 AI라는 것 외에 각 회사의 성격에 따라 차별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강점을 계속 개발하고 살리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또 다른 발전된 AI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소위 만능으로 보이는 챗GPT에 문제점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챗GPT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데이터가 없다면, 잘못된 데이터가 입력된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챗GPT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특정 정치적 편향성이나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특정 인종에 대한 내용을 주로 입력했을 때 일어났던 내용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거짓을 진짜인 양 표현하는 경우도 상당수 등장한다. 이를 할루시네이션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다방면의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용자가 직접 살펴보고 활용 가능한 부분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AI 시장은 갈수록 격화될 것이고, 심한 경쟁이 예상된다. 챗GPT에 열광한 이유 중 하나는 타인과의 대화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타인과의 교류가 힘들기에, 타인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AI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부디 인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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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자 안전가옥 앤솔로지 10
최현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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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아빠는 마주 앉아 꿈을 꾸고 있었다. 그건 꿈을 보는 아이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꿈이 꼭 미래 시제일 필요는 없구나. 과거의 기억이 꿈이 되기도 하는구나.

그리고 미래의 바람이든 과거의 기억이든, 꿈은 꿈이라는 사실만으로 퍽 아름다웠다.

이중생활자라는 제목의 책이 흥미를 자아낸다. 알고 보니 이중생활자라는 주제를 가진 스토리 공모전에서 수상한 다섯 작가의 작품이 담겨있는 앤솔러지라 할 수 있다. 각 소설들마다 자신의 색이 물씬 풍긴다. 초등학생이 주인공인 소설도 있고, 엄마와 딸이 주인공인 소설도 있고, 스님이 주인공인 소설도 있다. 이중생활자라는 단어 하나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중 기억나는 작품을 꼽자면 두 번째 등장한 드림 센스라는 작품과 부처핸접이라는 작품이다.

드림 센스는 지극히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책(한성 요괴 상점 속 두억시니)과 다녀온 곳(과천 서울대공원) 덕분에 더 집중해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체험학습을 가서 마주한 맥의 우리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물리고 만 이설.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했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체 물린 상처를 수습하려고 한다. 근데, 상처는 사라졌지만 몸에 이상반응이 생긴다. 바로 귀 뒤로 더듬이 한 쌍이 나온 것이다. 그날 이후로 설의 눈에 자꾸 이상한 게 보인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앞자리에 앉은 김도윤의 머리 위로 뭔가 이상한 풍선 같은 모양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입안 가득 단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갑자기 학교 안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하나 둘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중 하나가 도윤이었다. 도윤과 친하진 않았지만 바로 앞 동에 살기도 하고, 도윤의 머리 위로 올라온 이상한 것들의 정체도 궁금했던 설은 도윤의 집에 갔다가 화식조라고 불리는 담임 하신재를 보게 된다.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도윤의 머리 위로 올라온 달큼한 것은 도윤의 꿈이었고, 맥에게 물린 후(신수인 맥의 선택을 받은 것), 이설은 꿈을 감지하는 감각자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괴갑사라고 불렸던 감각자들의 임무는 꿈을 빼앗는 요괴 두억시니로부터 꿈을 지키는 일이다. 물론 화식조 역시 감각자 중 한 사람이었다. 과연 화식조와 설은 두억시니로부터 꿈을 지킬 수 있을까?

아마 아이들과 함께 간 동물원에서 캥거루를 보고 싶다는 큰아이를 따라 그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화식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긴 게 너무 기묘했고, 무서울 정도로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화식조는 외모 덕분에(?) 이름까지 알게 된 케이스였다. 내가 본 화식조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그것도 두바이랑 사자를 비롯한 여러 마리의 동물들을 주고 교환한 종이였다.) 화식조였다니... 아마 그래서일까? 이 책 속에 등장한 담임선생님의 별명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치매에 걸린 주지스님 법해가 빚을 지고 잡힌 절을 구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상금이 5억 원인 오디션 프로그램 샤워 미 더 머니에 출연하게 된 지거스님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부처핸접은 랩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흥미가 없는 나조차도 빵 터지면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자신이 스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파계 당할 것을 걱정해서 가발을 쓰고 오디션에 참여하게 된 지거는 템플스테이를 한다는 명목으로 잠깐 머물다 떠난 한물 간 래퍼 무량과 오디션장에서 조우한다.(무량은 심사위원이자 마스터였다.) 결국 인기 많은 참여자들을 놓치고 무량에게 남겨진 팀원 중 하나가 바로 지거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5억의 상금을 낸 아수라 그룹의 CEO 영건이 얼마 전 절을 찾아와 협박을 일삼은 그 인간이었고,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 법해 스님이 관음전 아래 악귀들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이다. 과연 지거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우승을 하여 5억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절을 지키는 것은 물론 악귀들로부터 세상을 지킬 수 있을까?

이중생활자라는 모습으로 지구 속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물론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 물론 먹고살아야 하기에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밥벌이를 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힐끗 주변을 보며 내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더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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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
김미영 지음 / 프로방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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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다 보니, 어떤 상황이나 물건을 접했을 때 불현듯 예전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기억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는 기억이 있는 반면, 한없이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다행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기억이 조금씩 바래진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아이들의 이불을 바꿔주다가 마주한 엄마의 기억. 저자는 그 기억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고 한다. 잔잔한 에세이 속의 저자의 기억의 온도가 글을 통해 풀어진다. 어렸을 때는 받은 기억을 토대로 기억의 온도가 떠오를 테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누군가에게 준 기억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아직은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졌다. 어제도 그 전날도, 회사를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아이 둘을 하원 시켜 집으로 돌아와서 쉴 틈 없이 저녁 준비를 하고 상 앞에 앉았다. 나름 열심히 차린 밥상 앞에서 주는 대로 잘 먹는 작은 아이와 달리, 끼적대는 큰 아이를 보며 또 두서없이 화가 쏟아졌다. 급기야 식판을 치워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큰 아이의 눈 가득 담긴 눈물. 순간 미안함에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 노력에 대해, 내 시간에 대해 인정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쓴소리를 내뱉고, 감정적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훗날 그날 먹은 반찬이나 식판 등을 떠올렸을 때 아이의 기억의 온도가 몸서리칠 정도로 서늘해질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바로 풀어내긴 했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가족들을 챙기는 엄마. 그러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작가 엄마. 유별나게 힘든 사춘기를 겪어낸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 죽어도 병원에 가기 싫다고 악을 쓰는 친정엄마 앞에서 속이 무너져 내린 딸 엄마. 아픈 엄마 곁에 있고 싶지만, 돌봐야 할 아이들 때문에 발을 옮기는 엄마. 큰 수술 후 떨어진 체력 앞에 눈물 흘리는 엄마. 사실 책 속에 이야기의 시작이 엄마여서 그런지, 유난히 내 눈에는 유독 여러 엄마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엄마가 되어서일까? 비로소 보이는 엄마의 삶과 그 희생을 통해 살고 있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다행이라면 내 기억 속 엄마는 차가운 기억보다 따뜻한 기억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책 속에는 자신의 모습뿐 아니라 고마운 남편에 대한 감정도 담겨있었다. 유난히 힘들게 사춘기를 겪어 낸 딸 앞에서 잔뜩 움츠린 저자에게 남편은 "고기 먹으러 가자."라는 말로 저자를 많이 다독여줬다고 한다.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의 온도가 떠올랐다는 그녀의 고백이 참 예뻤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자면 남편과의 기억이 따뜻했던 것은 당시 유난히 힘든 시기를 겪었기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삶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뒤섞인 것이라고 한다. 좋고 행복한 기억도 있지만 움츠려들고 아픈 기억도 참 많다. 온도는 상대적이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겪었기에 다가온 봄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아픈 기억을 마냥 피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훗날 내 기억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길, 누군가 나를 생각할 때 좀 더 따뜻한 감정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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