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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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제목을 마주했을 때 상상했던 내용이 있었다. 띠지에 담긴 한 줄은 그런 내 상상력을 더 증폭시켰다. 내가 예상했던 바는 이웃집에 연쇄살인마가 산다였다. 물론 막상 책을 읽고 나자 내 상상이 한참 빗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물론 띠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친절한 이웃도, 악몽도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으로 책을 들었다면 그 또한 반전일지 모르겠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 해리 블레이크 모어는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입고 제대한다. 치료 후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대학에 입학하지만, 마약에 빠져 살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내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사샤를 만나게 된 해리는 삶의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된다. 해리는 어려서부터 탁 트인 자연 속에서의 삶을 동경해왔다. 반려자가 된 사샤 역시 그런 해리의 계획에 동조해 준다. 물론 현재 다니는 직장을 포기할 수 없던 터라 다행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둘은 미국 서부 아이다호주 쪽 티턴산맥 인근의 매물을 발견하고 계약을 한다. 이곳은 10년 전 부동산 투자회사가 매입한 곳으로 다행히 해리와 사샤가 제시한 금액에 매매할 수 있었다. 집 주변으로 국유림이 펼쳐져 있는지라 가장 가까운 이웃은 2킬로나 떨어져 있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70대의 노부부인 맨 스타이너와 루시 스타이너 부부였다.

짐을 정리하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어느 날, 이웃에 사는 댄과 루시 부부에게 인사를 간 해리와 사샤 부부. 그들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는다. 댄은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았기에 해리 부부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주겠다는 말을 하고, 그들은 다음에 만날 계획을 세운다. 약속 한 날. 해리의 집을 찾은 댄은 해리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인데, 절대 잊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고 거듭 이야기를 한다. 그 시간 루시 역시 사샤에게 같은 이야기를 건넨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해리는 댄과 루시를 쫓아내듯 보내고 만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건넸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오는 악령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댄 부부가 한 이야기에는 계절마다의 악령이 찾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우선 당장 봄의 악력을 설명하면서 물이 반짝하고 빛날 때는 봄의 악령인 빛의 악령이 출몰한다는 신호이므로 벽난로의 장작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절한 이웃의 뜬금없는 요구 아닌 요구에 강한 반감을 느낀 해리. 하지만 정말 댄 이 이야기 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고, 집을 방문하며 편지와 함께 루시가 전해준 장작은 요긴하게 쓰인다. 하지만 여름의 악령에 비해 봄이 악령은 장난으로 치부될 수 있을 정도다. 과연 해리 부부는 이 기막히고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4계절을 살아낼 수 있을까?

과연 댄과 루시는 해리와 사샤에게 친절하고 좋은 이웃이었을까? 루시와 댄 역시 이웃에 사는 조를 통해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하는데, 만약 해리 부부가 인사를 오지 않았어도 이 모든 위험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해 줬을까 하는 생각 또한 해봤다. 악령이 깃들인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미래를 고민하여 더 공포스럽게 만든다. 특히 신혼이나 다름없이 이들 부부는 2세 계획 등을 세워야 하는 상황인데, 자신의 자녀들 또한 악령이 깃들인 마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이 주는 공포감은 독자가 상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영상보다 극대화되기도 하고, 조용히 넘어가기도 한다. 갈수록 끔찍하고 진해지는 악령의 모습은 상상의 크기를 더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몰입되고 무서워지는 것 같다.) 영상으로 잘 담아낸다면 여름을 강타할 만한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좋아 보이는 매물이 헐값에 나온다면 역시 뭔가 의심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해리 부부가 살게 된 집 역시 그러니 말이다. 보통의 공포. 호러 작품에서 헐값에 나온 주택은 먼가 의미심장한 맛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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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알고 먹는 거니? - 그림으로 보는 우리 집 약국
최서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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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의약품 통 외에 상비약이 두 종류 있었다. 소화제인 까쓰활**와 몸살감기가 오면 먹던 광동*인데, 결혼을 한 지금도 습관적으로 이 두 약은 박스째 가지고 있다. 증상이 나타나면 무조건 먹게 되는데,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평생 갔던 병원 횟수보다 더 자주 병원을 찾게 된다. 자주 가는 병명은 단연 감기다. 기침이나 콧물과 함께 열은 정말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그러다 보니 약을 접할 기회도 많고, 나도 모르게 지식이 생기는 것 같다. 문제는 애매하거나 어설프게 아는 것이 무섭다. 얼마 전에도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고열이었던지라, 새벽에 집에 응급약을 가지고 있던 맥시부펜을 먹였다. 요즘 타이레놀 계열의 해열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이 사고로 리콜되었던 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해열제를 처방받아왔지만, 개별 포장된 약이 아닌지라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 아쉬웠다. 교차 복용도 알고, 약의 구분도 아니까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가 정말 놀랐다. 그동안 새벽에 열이 나면 먹여왔던 해열제가 빈속에 먹으면 안 되는 약이었던 것이다.

책 안에는 담긴 약은 정말 다양하고 많았다. 이렇게 많은 약이 우리 주변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뿐만 아니라 이 모든 어려운 이름의 약들을 다 기억하고, 환자들이 물어올 때 적절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약사들은 얼마나 많은 공부를 꾸준히 할까 싶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약의 본래 이름은 너무 낯설다. 다행히 그 약의 성분이 들어있는 제품명이 등장하니 한결 편안하게 이해가 되었다. 특히 비슷해 보이는 약이나 헷갈리는 이름의 약들을 설명해 주는 내용 덕분에 이제는 실수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장에 있는 습윤밴드나 소독에 대한 부분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소독에 대한 부분은 앞에서 해열제에 대한 부분과 마찬가지로 무지했던 나를 일깨워주었다. 어디서 어떻게 다치든 무조건 소독을 해야 한다는 주의였는데(남편 거래처의 한 직원이 파상풍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더 철저히!) 모든 상처에 소독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소독이 흉터를 남길 수 있다는 부분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얼마 전에도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아이가 소독할 때 따가워서 싫다는 말에 병균이 죽는 거니 참으라는 말은... (미안해 딸~ㅠㅠ)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

역시 그러고 보면 아는 게 힘이라는 것!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각종 의료 관련 서적들이 많지만, 쉽지 않은 용어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졌는데, 만화로 구성되어 있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는 이 책은 아이들이 있는 집뿐 아니라 다양한 약의 활용도로 고민하는 누구라도 꼭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필수 서적으로 삐뽀 삐뽀 119 소아과가 있는데, 이 책 역시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중요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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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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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림동에서 묻지마 범죄로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묻지마 범죄가 일어났다.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더 각박해지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어간다.

조예은 작가의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역시 묻지마 범죄가 등장한다. 야무시에는 두 종류의 아파트가 있다. 씨더뷰파크 아파트와 레인보우 아파트. 전자는 소위 뜨는 동네에 돈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파트이고, 레인보우 아파트는 지은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로 이런저런 상황으로 밀리고 밀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씨더뷰파크 아파트에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난다. 일명 이사 떡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집 앞에 놓여있던 이사 떡인 꿀떡 소 안에 청산가리와 복어 독 등이 들어 있었고, 떡을 먹은 사람들 중 9명이 사망한다. 이 사고로 야무시 시장인 한정혁은 아들과 동생 내외를 잃는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조카 한도하는 큰 아버지 정혁과 살게 된다.

또 한 명의 피해자는 한정혁의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였다. 엄마와 고시원에서 살다가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황화영은 가출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불리는 레인보우 아파트에서 거주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2천만 원을 모으는 것이다. 왜 2천만 원이 필요한 것일까? 이유는 엄마의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다. 화영은 엄마가 떡을 먹고 사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 떡을 먹다 목에 걸려 죽을 뻔한 엄마는 떡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가 꿀떡을 먹다니... 뭔가 이상했다.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밝혀진다. 유튜브로 자신이 범인이라 밝힌 남자는 자살을 하겠다는 예고를 한다. 그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에 화영은 그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이미 그는 자살을 한 후였다. 그곳에서 만난 여자 살인 청부업자 재. 그녀 역시 범인을 죽이기 위해 그곳에 왔지만 그녀가 움직일 새도 없이 자살한 범인을 보고 자리를 피한다. 화영은 재로 부터 2천만 원을 가지고 오면, 화영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부터 열심히 돈을 모으지만 쉽지 않았다. 살고 있던 아파트의 주인인 우영진은 갑자기 화영의 월세를 50% 올린다. 화영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낚시라고 불리는 일은 온라인으로 마약이나 전자 물품을 판다는 글을 올리고 그 글에 구입을 원하는 남자를 모텔로 불러 불법적인 구매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악질의 일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돈벌이 두 개를 놓친 화영은 다른 선택이 없었다. 얼마 전 길에서 주운 추억의 곰인형 테디베어 해피 스마일 베어를 들고 낚시 일을 하게 된 화영. 영진의 이야기와는 달리 그 일 때문에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 도끼까지 챙겨온 남자로부터 죽음을 당하기 직전, 갑자기 남자는 휘두른 도끼에 큰 상해를 입는다. 해피 스마일 베어가 도끼를 그 남자에게 휘두른 것이다. 곰인형이 움직이다니...! 결국 해피 스마일 베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화영은 테디베어와 함께 도망에 성공한다. 과연 곰인형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사건이 있던 날, 도하는 사촌인 도현보다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아버지 한윤혁에 의해 화장실에 갇힌다. 자신은 목숨을 구했지만, 그 일은 도하에게 큰 상처가 된다. 자신이 시험을 잘 보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죄책감 때문이다. 큰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큰아버지와는 부딪치는 일이 없다. 집 안에서 끔찍한 향을 맡고 거리로 나온 도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깨어나 보니 자신이 테디베어 속에 갇혀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홀로 남겨진 화영과 테디베어 속에 갇힌 도하. 영진의 돈을 훔쳐 재를 만나러 간 화영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털어놓고, 2천만 원을 건네며 자신이 잡길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과연 화영은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과 함께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조예은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처음 만났던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역시 제목만큼이나 특이한 이야기였는데, 테디베어 속에 들어간 도하의 이야기 역시 신선했다. 선한 이미지의 정치인 한정혁의 실체와 엄마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소년 화영. 그리고 어려서부터 비교당하며 가정폭력 속에서 살았던 도하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발전한다. 자신의 손으로 수많은 사람을 무참히 죽이면서 죄책감을 1도 느끼지 못하다 결국 자신이 죽였던 악령들에 의해 살해되고 마는 재나 불쌍한 청소년들을 착취하고 그 대가를 빼앗는 파렴치한 인간 영진의 모습은 소설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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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한국화 지음, 김주경 옮김 / 비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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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큼 낯선 이야기 8편이 담겨있는 소설집이다. 저자의 이력 또한 특이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간 저자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은 번역해서 출간했단다. 모국어인 한국어로 쓰기보단 낯선 언어로 작품을 써서 작품과 저자 사이의 적절한 간격을 두고 싶었다는 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간격이라는 단어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펼쳐졌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낯선 언어로 쓴 작품. 그래서 작품 속 이야기는 저마다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제목 그대로 표제작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첫 번째 작품인 루오에스가 이 책의 제목을 담고 있다. 각기 다른 배경과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작품 속에 대놓고 사막이 등장하는 소설은 한 작품에 불과하지만 제목과 연결된 것 같이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막이 주는 이미지가 각 작품 속에 담겨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낯설고 분리되어 있고, 황량한 사막의 분위기와 모습이 작품 곳곳에서 느껴졌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장면이 옛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던 영상편집실에서 만난 그녀. 짬짬이 결혼식 촬영으로 돈을 벌었던 나는 오랜 시간 편집하던 영상을 실수로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방전되고 만다. 그런 그 방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근데 형체가 없다. 당황스러울 즈음 그녀가 등장한다. 밤새워서 그들은 영상을 편집하고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새벽녘 함께 방을 나선다. 그런 그녀와의 기억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잊힌 지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나는 어땠을까?

요 며칠간 유난히 날이 더웠다. 긴급 재난문자가 쉬지 않고 올 정도로 폭염의 더위 속에서 같은 제목의 작품도 기억에 남는다. 그 아이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 왠지 마음이 갔다. 그 아이는 테니스로 두각을 나타냈다. 순식간에 유명인이 된 아이는 여전히 낯선 존재였지만, 나는 그 아이의 성공을 축하하고 싶었다. 그 아이의 인기는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끓다가 식어버렸다. 어느 순간 그 아이의 추종자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그 아이의 옆에는 모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런 그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나. 더운 날 밤의 꿈이었을까, 아님 실제 기억이었을까?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모호한 그림이 작품마다 가득하다. 뿌옇게 흐리기도 하고, 모래폭풍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과연 이 작품을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저자 역시 그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낯선 외국어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SF작품이 아님에도, 자꾸 그런 느낌이 드는 것 역시 그래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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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평범한 가족
마티아스 에드바르드손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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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족 앞에 "거의"라는 단어가 붙음으로 책의 내용은 평범함의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였던 한 가족을 향한 광풍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가족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 같은 상황을 보아도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최선이 아닌 구속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가족은 혈연이라는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다 용서될 수 있다는 선입관 때문에 더 어긋날 수 있는 관계이고, 나아가서 가장 가까운 관계기에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하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스웨덴 서남부의 고즈넉한 도시 룬드는 스칸디나비아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였고, 스웨덴 국교회의 주교구이다. 목사인 아빠 아담 산델은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아내인 울리카는 명망 있는 변호사로 둘 사이에는 외동딸 스텔라가 있다. 18살의 스텔라는 이웃에 사는 친구 아미나와 함께 뛰어난 핸드볼 선수로 알려져 있다. H&M에서 알바를 하는 스텔라는 요 근래 들어 늦은 시간에 귀가한다. 그날도 알바가 끝난 후 친구 아미나를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는 딸 때문에 아담은 노심초사한다. 2시가 다 된 시각에 돌아온 스텔라는 2층으로 올라가서 내는 소리를 들은 아빠는 그제야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스텔라가 사라진다. 핸드폰을 놓고 말이다. 부모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돌아오지 않는 딸 때문에 아담과 울리카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얼마 후 변호사 미카엘 블롬베리로 부터 연락을 받는다. 스텔라가 경찰서에 구류되어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씐 혐의는 크리스토퍼 올센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크리스토퍼 올센이 형법 교수인 마르게르타 올센의 아들이고 사업체를 여러 개 경영하는 33세의 사업가라는 사실로 입김이 센 어머니를 둔 관계로 그 어떤 사건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했던 스텔라는 학교에서도 종종 친구들을 강압적으로 대한다는 우려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무슨 촉이었는지, 아담은 스텔라가 세탁기에 넣어 둔 흰색 블라우스가 붉은 얼룩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스텔라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그 아이를 지키고 싶었던 아빠 아담은 스텔라가 집에 들어온 시간을 조작해서 경찰에 증언한다. 그리고 블롬베리와 아내 울리카와 함께 딸을 이 모든 사건으로부터 구해낼 방법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사건은 스텔라에게 불리해지기만 하다. 아미나는 사건 당일 스텔라를 만나지 않았다고 아담에게 털어놓는다. 사건이 있던 곳에는 스텔라가 신고 있던 신발과 같은 크기의 족적이 남겨져있었고, 스텔라를 봤다는 증언자까지 생긴 상황이다.

과연 크리스토퍼 올센을 살해한 사람은 정말 스텔라가 맞는 걸까?

책에는 아버지 아담의 시선, 딸인 스텔라의 시선, 어머니인 울리카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누구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진실은 다르게 보인다. 셋의 시선이 교차하며 사건은 점점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셋의 시선이 모두 동일한 결과를 도출해 내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에 가닿게 된다. 책의 말미를 향해가면서 사건의 진짜 본질이 드러난다. 반전이라면 반전일 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목회자의 자녀들의 경우 두 가지 모습을 띄는 것 같다. 부모처럼 종교적인 사람이 되거나, 철저히 반대적인 모습을 가지거나... 정직한 목사 아버지를 둔 스텔라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기에 더 쉽게 유혹과 퇴폐적인 문화에 급속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중독적으로 빠져든 관계를 벗겨내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에게 최고의 가치를 둔 우정이 침해를 받자 다시금 올바른 시선을 갖게 된다. 그녀의 선택은 바로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반면, 부모인 아담과 울리카는 어땠을까? 부부에게 최고의 가치는 자녀 스텔라였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었던 부모의 모습 말이다.

내가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으로 두고 있느냐에 따라 사건의 본질은 달라진다. 책을 덮으며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한다.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하게 잘라낼 수 있는 가치가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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