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 낯선 이야기 8편이 담겨있는 소설집이다. 저자의 이력 또한 특이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간 저자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은 번역해서 출간했단다. 모국어인 한국어로 쓰기보단 낯선 언어로 작품을 써서 작품과 저자 사이의 적절한 간격을 두고 싶었다는 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간격이라는 단어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펼쳐졌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낯선 언어로 쓴 작품. 그래서 작품 속 이야기는 저마다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제목 그대로 표제작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첫 번째 작품인 루오에스가 이 책의 제목을 담고 있다. 각기 다른 배경과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작품 속에 대놓고 사막이 등장하는 소설은 한 작품에 불과하지만 제목과 연결된 것 같이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막이 주는 이미지가 각 작품 속에 담겨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낯설고 분리되어 있고, 황량한 사막의 분위기와 모습이 작품 곳곳에서 느껴졌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장면이 옛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던 영상편집실에서 만난 그녀. 짬짬이 결혼식 촬영으로 돈을 벌었던 나는 오랜 시간 편집하던 영상을 실수로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방전되고 만다. 그런 그 방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근데 형체가 없다. 당황스러울 즈음 그녀가 등장한다. 밤새워서 그들은 영상을 편집하고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새벽녘 함께 방을 나선다. 그런 그녀와의 기억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잊힌 지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나는 어땠을까?
요 며칠간 유난히 날이 더웠다. 긴급 재난문자가 쉬지 않고 올 정도로 폭염의 더위 속에서 같은 제목의 작품도 기억에 남는다. 그 아이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 왠지 마음이 갔다. 그 아이는 테니스로 두각을 나타냈다. 순식간에 유명인이 된 아이는 여전히 낯선 존재였지만, 나는 그 아이의 성공을 축하하고 싶었다. 그 아이의 인기는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끓다가 식어버렸다. 어느 순간 그 아이의 추종자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그 아이의 옆에는 모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런 그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나. 더운 날 밤의 꿈이었을까, 아님 실제 기억이었을까?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모호한 그림이 작품마다 가득하다. 뿌옇게 흐리기도 하고, 모래폭풍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과연 이 작품을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저자 역시 그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낯선 외국어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SF작품이 아님에도, 자꾸 그런 느낌이 드는 것 역시 그래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