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 SF와 로맨스, 그리고 사회파 미스터리의 종합소설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지혜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술의 발달로 본인의 의사(혹은 가족의 의사)와 재정만 갖춰지면 원하는 날짜까지 냉동되었다고 깨어날 수 있는 때가 도래했다. 냉동을 선택하는 이유는 상당히 다양하다. 책 속 주인공 또한 각자의 상황과 사정에 의해 냉동을 선택한다. 의류업체 사무직으로 일하는 가은은 8년간 교제한 규선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규선은 국내 유수의 냉동 전문 클리닉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규선의 회사에서는 50년 만에 깨어나는 인물 B-17903에 대한 이야기가 퍼진 적이 있다. 그가 냉동이 된 이유는 꿈속에서 만난 여성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황당한 이유로 냉동이 된 그는 자신이 지목한 날짜에 해동이 된다. 어느 정도의 적응훈련을 거친 후, 자신의 꿈과 똑같은 의상과 꽃을 준비하여 그녀를 만나러 나간다. B-17903의 본명은 기한이다. 그는 예지몽을 잘 꾼다. 취업에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학교에 유일하게 남은 윤정에게 집적이는 기한. 윤정이 큰 가방을 들고 떠나는 꿈을 꾼 후, 너의 미래를 꿨다는 감언이설로 윤정을 꼬셔 밤을 보낸다. 그리고 매몰차게 윤정을 차버리는 기한. 윤정은 그렇게 아이를 낳지만, 기한은 꿈에서 만난 다른 여성을 만나겠다는 빌미로 냉동인간이 되어버린다. 윤정은 아이를 데리고 기한의 엄마를 찾아가지만, 욕만 먹고 쫓겨난다. 둘째를 임신 중이던 기한의 누나 기연은 윤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만 남겨놓고 사라지는데...

한편, 가은은 냉동인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규선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 역시 냉동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은은 냉동인간이 된 이유를 여전히 모른다. 엄마에 의해 강제로 냉동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달 후, 부모님은 한날한시에 사망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을 스토킹하는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뿐... 규선에게 고백하기 위해 마음을 졸이던 어느 날, 한 남자가 가은의 눈앞에 나타난다. 큰 꽃을 들고 자신에게 접근하는 그를 보는 순간 그 예전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가은을 중심으로 책 속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물론 가은처럼 냉동되었다가 원하는 날짜에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중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가은이 살고 있던 집의 주인이자, 쌍둥이를 낳자마자 냉동인간이 되어 17년 만에 깨어난 주원이라는 인물이었다. 늦은 나이의 결혼과 출산을 한 주원은 아이들을 위해 아이를 낳자마자 냉동인간이 된다. 17년간 엄마의 부재를 겪으며 살았던 아들 나훈과 딸 나경은 이미 고등학생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사라졌던 엄마가 돌아왔지만, 이미 엄마가 필요한 나이는 지나버렸다. 오히려 엄마라는 존재가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주원은 자신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지만, 쉽지 않다. 엄마와 자녀들의 마음이 다르다. 아이들을 위해 냉동인간을 선택했지만, 주원은 17년간의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눈을 맞추고, 첫 발을 떼고, 엄마를 이야기할 때, 친구와 다투고 마음이 상했을 때,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몸과 마음으로 느꼈던 그때 주원은 아이들 곁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훈과 나경은 엄마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들 사이의 거리감이 책 속에 그대로 드러나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은 사랑이라고 믿지만, 상대는 폭력이라고 느끼는 스토커의 이야기가 책 속에도 등장한다. 결국 집착과 폭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랑(누가 봐도 사랑이 아니지만)을 지켜내지 못하자 결국은 복수를 선택하는 모습과 그를 피해 결국은 미래로 딸을 보내는 부모의 모습. 아무 이유도 모르고 떠나야 하는 딸의 모습이 겹쳐지며 소름 끼치도록 화가 났다. 과연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냉동 상태에게 시간이 얼마나 흐르던, 다시 깨어났을 때는 냉동인간이 된 그 시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덕분에 민증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만약 냉동인간이 등장하는 시대에 도래한다면, 얼굴만 보고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아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까? 영원을 사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 옛날부터 인간의 소원은 영원을 사는 것이었다.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 냉동인간이 되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다양한 이유로 냉동인간이 된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꽤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과연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이어질까? 냉동인간과 그들이 냉동을 선택하게 된 이유. 해동 후의 이야기들이 이어져서 읽는 내내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동안 유례없던 대 재앙인 코로나19시대를 만 3년째 살아가고 있다. 계속되는 방역수칙 변화 속에서 자영업자들은 물론, 전 국민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지원금이 나오긴 했지만, 워낙 경제침체가 심화되어 있기에 사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복지국가를 외치는 현대에 우리의 삶 또한 팍팍한데,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이 과연 복지가 있었을까?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보다 조선의 복지가 모두의 예상보다는 꽤 상당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면에서 놀라웠다. 신분제 사회 조선의 복지라... 제목부터 내용까지 신선했다.

사실 세종대왕에 대한 복지 이야기는 이미 익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세종의 애민정신은 한글 창제뿐 아니라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의 마음이 담겨있다. 가령 출산을 한 노비에게도 100일의 휴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정말 놀랐으니 말이다. (우리의 출산 전후휴가는 90일인데, 육아휴직 없이 복직을 하게 되면 조선의 여비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조선과 현대의 대한민국은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조선은 시혜라는 단어로, 대한민국은 복지라는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신분제가 철폐된 현재기에 공급자는 복지 미공급에 대한 책임이 있고, 수요자 역시 공급자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데 비해, 조선의 복지는 그야말로 왕의 선택이고, 그에 대해 백성이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지 요구를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우리의 복지제도와 비교했을 시 제도 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현재의 국민연금의 역할을 했던 환곡(고려 춘대추납제도가 더 진화하여 이자를 받았음.)과 긴급재난 지원금인 진휼, 그리고 무료급식소인 시식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중 진휼은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휼의 담당 부처인 진휼청의 조직 구성은 호조판서(기획재정부 장관), 이조판서(행정안전부 장관), 병조판서(국방부 장관) 이 책임자로 있고, 중요사항은 국무회의에서 가장 급선무로 처리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령을 비롯한 공무원의 징계권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정말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조선 후기의 큰 문제 중 하나가 환곡의 병폐라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중간중간 호시탐탐 빼먹는 탐관오리들이 있었다는 것이 복지제도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가장 큰 병폐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노인, 아동, 여성 복지도 갖추어진 나라였다. 양반가 미혼 여성들을 위한 결혼지원금 뿐 아니라 홀아비들을 위한 결혼 장려정책도 시행되었다고 한다. 물론 조선은 여전히 신분제 사회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한 상태기에 여성에 대한 복지는 보호와 해소 정도지, 실제적인 대안을 주는 복지제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아쉽다.

저자는 책 속에서 현재의 우리와 조선의 복지제도를 비교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저 단편적인 지식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한계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명확히 꼬집고 있기에 책을 읽으면서 이해도 빨랐고 나름의 사이다 서술도 마음에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미래의 국민연금 고갈에 대한 걱정을 넘은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데, 조선의 연금제도인 환곡 역시 상당한 폐해로 결국 조선의 경제와 정치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확실한 제도 보안이 필요한 것 같다.

국민과 백성의 위치와 생각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라의 복지제도는 중요하다. 복지제도가 어떻게 정착되는지에 따라 국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복지제도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복지를 살펴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옥의 수리공
경민선 지음 / 마카롱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호기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특히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참 크다. 어쩌면 그 호기심이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과연 어디까지 이루어질까? 이 작품 속 과학은 결국 대체 현실. 증강현실을 사후세계까지 만들어냈다.

인간의 뇌 속에서 자아를 담당하는 일명, 자아 뉴런을 찾아낸다. 죽지 않고 영생을 원하는 인간들의 욕심은 냉동인간을 넘어 좀 더 편리하고, 보관이 간편한 자아 뉴런만을 보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 대체 현실 기술로 사후세계 뉴랜드가 만들어진다. 세계적으로 건강보험이 일원화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첫 번째 사후세계의 개발지로 선정된다. 5년 전 서울의 모습 그대로... 문제는, 뉴랜드에 들어가려면 30년간 뉴랜드 발 건강보험을 납부해야 하는데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그렇다 보니 뉴랜드 입성을 위한 건강보험을 내주기 위해 결국 이생에서는 퓨어. 즉, 부양 유령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대납제가 본격화되면서 부양 유령은 급속도로 늘어난다. 게임 출장기사를 직업으로 가진 도지석 역시 자신과 엄마 그리고 7년간 사귀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여자친구 엄희진 몫까지 보험료를 내기 위해 낮에는 출장기사로, 밤에는 심부름센터 체커(게임 등 불법적 의뢰를 해결해 주는 직업)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허덕이고 있다. 동업자인 배창준 역시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몫의 보험까지 떠 맞고 있는 지경이다. 그날도 그 둘은 고객에게 받은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접속했다가 랭크 2 체커인 열목어에게 제대로 당하고 게임 정지까지 먹게 된다. 그런 그들의 사무실로 새벽 3시의 한 의뢰인이 온다. 뉴랜드의 관리사인 A.L의 컴퍼니 서버 관리 B팀의 대리인 안태규였다. 그가 의뢰한 것은 뉴랜드에 잠입해 한 인물을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문제는, 뉴랜드 서버가 보안이 철저해서 아무나 접속을 할 수 없다는 것과, 혹시나 발각되게 되면 사망 후 뉴랜드 입소가 원천 봉쇄된다는 것이다. 5배나 돈을 얹어준다는 태규의 말에 결국 지석은 뉴랜드에 잠입하는데, 태규가 찾는 인물의 흔적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지석은 자신의 여자친구 희진 또한 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태규의 아버지처럼 사라진 것은 아닐까? 결국 태규와 지석은 창준과 열목어(손지우)까지 모아 뉴랜드에 잠입하게 되고, 지석은 희진의 주소의 집이 아예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다. 행패를 부리다 결국 뉴랜드 경찰서까지 잡혀가게 된 지석은 다른 방에 갇혀있던 인물이 부르던 노래가 암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정말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읽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진정한 우군이 누구일까? 아니 살아생전에도 빈부격차로 힘들었는데, 사후세계에서도 빈부격차가 이어진다니... 정말 너무하다. 대국민 사기의 전말이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근데 뉴랜드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지, 실제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인간다운 삶은 과연 무엇일까? 이 생에서도 차별받는 삶이었는데, 사후세계까지 그렇다면 정말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

현실에서 소외되고 희망이 없는 인물들이 가상세계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너무 애처로웠다. 근데, 우리의 현실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삼포 사포 N포세대라 불리는 청년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 현실의 모습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긴 것 같아서 실제적이면서도 슬펐다. 그럼에도 책 속에 등장한 미래에 구현된 증강현실 세계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는 차별을 인간에게서 배운다 -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위해 다시 세우는 정의 서가명강 시리즈 22
고학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 명강의 22번째 주제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고학수 교수의 강의다. 얼마 전만 해도 낯설고 어색했던 AI라는 단어가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식상할 정도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과거 한 다큐멘터리에서 사람이 관심 있게 보고 지나가기만 해도 관련 정보가 핸드폰으로 자동 전송된다는 이야기에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그 이상의 빅데이터를 순식간에 주고받는 시대에 이르렀다.

사실 AI라는 단어를 보고, 이 책의 저자가 과학 분야일 거라는 예상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책의 저자는 법학교수다. 법학과 AI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내심 궁금했었는데, 첫 부분부터 얼마 전에 만났던 이야기가 등장했다. 검사 내전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법조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 판사나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들을 대체할 AI가 개발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책에도 도입부에 그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실 법조인에게 지출하는 비용이 상당하고, 판결에 대해 불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다 보니 객관적인 AI를 통한 판결이 더 믿을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어서 그런 것 같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AI가 판결을 하면, 적어도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기에 객관적이고 냉철한 (때론 더욱 공정한) 판결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그럴 수 있기도 하지만, 저자는 판례가 뒤바뀌는 경우가 계속 있는데(문화와 세대의 변화에 따라 판단이 달라짐으로), 만약 AI 판사가 판결을 하는 경우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에, AI는 직접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관련 지식을 처리하고 지원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법률보다는 통계학이나 알고리즘이나 데이터, 프로파일링 같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법률가 AI뿐 아니라, 현재 활용되고 있는 AI 기술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AI가 어디까지 개발되었고, 어느 정도의 처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1.2장에 등장한다. 3장과 4장에서는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차별과 공정성, 개인의 프라이버시, 빅 데이터 시대 속에서의 AI 윤리와 정의를 이야기한다. AI 정보로 인한 차별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의 진보와 신뢰가 어떻게 뒷받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의 식견을 만날 수 있다.

기본 개념은 복잡하지 않지만, 그를 이루는 내용을 이해하려는 접근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다양한 사례가 중간중간 등장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기름칠을 해줬다. 가령 기업의 블라인드 채용에 관한 부분과 더불어 얼굴을 통해 동성애자를 찾는 기술은 심히 쇼킹했다. 잘못된 알고리즘이 심각한 차별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와닿게 설명했던 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차별과 AI의 차별은 결이 다르다. 앞으로 AI는 계속 진화할 것이고, 그에 따라 문제들은 속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기술로부터 공정을 지키기 위해 계속적인 개발과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윤순식.원당희 옮김 / (주)교학도서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은 내게 영어 같다. 꽤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있지만, 실력이 향상(혹은 지식의 진보) 된다는 느낌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덕분에 가지고 있는 철학 입문서도 상당하고, 철학 입문 혹은 철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이 간다. 도입에는 흥미를 가지고(때론 의지를 가지고;;) 읽지만, 중반부가 넘어가면 흥미를 잃는 경우도 상당했다. 그런 면에서 색다른 맛의 철학 책을 만났다. 철학 책이 분명하지만, 신선하고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저자 소개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해야 할 것 같다. 저자 R.D. 프레히트는 독일 현대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겸 독일권에서 인정받는 지성인 중 한 사람인데, 현재 독일 공영방송에서 철학 방송을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내가 읽은 이 책 또한 독일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리 책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처음 책 표지에 1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말에, 독일인들이 철학에 관심이 아주 많거나(독일 출신 철학자가 상당수 있으니), 책이 흥미롭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전자는 잘 모르겠고, 후자는 맞는 것 같다.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지만... (대학시절 한 교양수업에서 비슷한 제목으로 리포트를 쓰면서 머리카락을 상당히 뽑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말의 어원(?)은 술자리였단다. 저자의 독일어판 제목을 보고, 역자 역시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책 속에는 3개의 큰 주제가 담겨있다. 첫 번째 주제 속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는 제목 그대로 상당히 철학적이자 심리학적인 주제들이 등장한다.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 나는 누구인가, 감정과 무의식, 기억이란 무엇인가처럼 정의를 논하기 쉽지 않은 내용들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강점은 곁들여지는 이야기가 흥미를 돋운다는 것이다. 가령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라던가, 드라마 등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로 주위를 환기시킨다. 그런 후 그 이야기에서 파생되는 철학적 속내를 철학자들의 이론과 주장 등을 통해 다시 한번 서술한다.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철학을 이끌어내기 위해 책 속에 담고 있는 주제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경험담 뿐 아니라 매체나 영화, 작품뿐 아니라 과학기술이나 외국의 사건들, 국제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덕분에 철학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각 분야의 전문서를 읽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두 번째 주제인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서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의 행동에 대한 철학적 정의가 담겨있다. 예전에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각 소 주제들이 등장한다. 남은 돕는 행위, 도덕, 선한 행위에 대한 보답, 살인과 낙태, 안락사와 복제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까지 현대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 서술한다. 사실 이런 질문을 우리 또한 받고, 하지만 쉽게 답을 내기 어렵기도 하다. 때론 포괄적이고, 때론 지극히 윤리적이고 민감하다. 그래서 또한 흥미롭기도 했다.

마지막 내가 희망해도 좋은 일은 무엇인가라는 주제 속에는 우리 삶을 파고드는 문제들(사랑과 행복, 신, 재산과 삶의 의미 등)에 대한 사색과 정의가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첫 장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언급하며 등장한 니체에서부터 인생의 의미에 대한 34장의 이야기 속 매트릭스와 플라톤의 이야기까지 각 주제별로 다양한 철학자와 이야기 속에서 한참을 빠져있었던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이유가, 원하는 철학 입문서가 없어서라고 했는데 책을 읽으며 그 뜻이 이해가 갔다. 또한 그의 머릿속에는 철학으로 가득 차있겠다는 생각을 나 또한 해봤다. 어떤 주제를 눌러도 마치 자판기처럼 그에 대한 철학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지만,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 뜻깊은 책이었다.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주야장천 철학의 역사만 읊어대는 책이 부담스럽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