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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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사는 것이다.

살아서, 살아가는 것이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것이 다 되어야 죽는 것이다.

여기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둘은 차이가 크지만, 둘은 또 비슷하기도 하다. 단지 존재한다고 느끼는 사람의 인식 차이일까 싶을 정도로 찰나에 둘은 뒤 바뀐다. 이 책을 펼쳐볼 즈음에 벌어진 믿기 힘든 참사에 내려앉은 감정이 도무지 올라올지를 모른다. 그래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Life and death라는 부제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누구도 내 삶이 언제 시작될지, 그리고 끝날지 모른다. 어찌 보면 반전이라고 표현하는 이야기들이 각 작품의 중반부를 넘어가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반전은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어있느냐다.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폴론 저축은행은 8편의 작품 중 한 작품의 제목이다. 결이 다른듯한,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작품들이 등장하지만 작품을 이어주는 유일한 주제는 삶과 죽음이다. 죽기 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이 책 안에서는 중요하다.

길지 않은 작품들도 있고, 상당한 분량이 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봐야 묘미를 맛볼 수 있다. 표제작도 좋았지만, 첫 번째 수록된 작품인 그 봄과 이중 선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봄이라는 작품은 아빠가 사망하고, 엄마와 떨어져 절에 사는 두 형제 시원과 시율의 이야기다. 어딘지 모르는 산골 암자에 살고 있는 시원과 시율은 늘 엄마가 그립다. 절에 있는 누구도 형제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지만 그나마 산적스님만 형제와 말을 섞는다. 12살 시원 역시 엄마가 그립다. 하지만 동생처럼 마냥 엄마를 그리워할 수 없다. 형이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하루, 엄마는 형제를 만나러 온다. 스님은 그날은 형제를 위해 하루 동안 그들 가족만 있도록 자리를 비워준다. 하지만 언제 왔는지 모르는 엄마는 또 언제 가는지 모르게 사라진다. 엄마가 올 때는 맛난 케이크와 시원이 좋아하는 게임팩, 시율이 좋아하는 곰 젤리와 스케치북을 사 온다. 언제 온 지, 가지도 모르는 엄마기에 시원은 혹시 엄마가 귀신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근데, 엄마가 작년에는 오지 않았다. 보살 할머니들을 통해 들은 얘기는 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오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는 정말 시원. 시율 형제를 버린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피눈물이 흐른다. 예상치 못한 결말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누구의 감정도 안아줄 수 없어서였다. 아이들을 보듬어야 할까, 엄마를 보듬어야 할까?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그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해할 수 없던 게 한순간에 풀려 허무할 정도다.

이중 선율이라는 작품은 타지에서 사망한 망자를 장례식장까지 운구하는 운구용 구급차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날은 서울에서 광주까지 시신을 날라야 했다. 망자는 얼마 전, 큰 화재로 사망한 여성이었다. 혹시 함께 타고 갈 가족이 있나 싶었는데, 친구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시신과 함께 타고 가는 게 영 내키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여성은 두려워 보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동승자는 사망한 여성의 사건을 전담했던 소방서에 근무하는 여자 소방관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려는 운전자는 150킬로 넘게 과속을 한다. 이유는 망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을 조금 더 벌어주기 위해서이다. 근데 뭔가 좀 기묘하고,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 자꾸 벌어진다. 역시 결말에 가야 이 모든 게 명쾌히 풀린다.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가다 보니 무료해진 소방관은 노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묻고, 직업 때문에 수시로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노인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나비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 나비이야기는 이 차에 타고 있는 인물들과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삶과 죽음. 그 뒤바뀐 날은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그저 책 속 한 줄처럼 삶이 사라지는 날이 죽는 날이 될 뿐이다. 언제일지 모르기에 매일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하지만, 아직 죽음이 와닿지 않는다. 삼풍사고 생존자 산만언니의 기사를 읽었다. 얼마 전 일어난 이태원 참사에 대해 묻는 연락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는 그녀의 말이 유독 와닿았다. 죽이기 위해, 죽기 위해 간 것이 아닌 그저 평범한 날이었고, 그 평범한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가 되었을 날. 책 속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사연 속에 담겨있는 그 평범한 날을 맛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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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대 뒤에 있습니다
명승원 지음 / 뜰book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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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내가 몸소 체험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배운 것들은

언젠간 한 번이라도 나를 빛나는 순간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일이라도 쉽게 포기하고 가볍게 생각하지 말자.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인해 당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콘서트와 팬미팅 등 다수의 공연의 연출 감독 명승원의 에세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니, 어린 시절 나도 동경했던 몇몇 가수들이 떠올랐다. 당시 가요 TOP10이라는 프로그램 이름도... (적고 나니 나 정말 나이 많은 사람 같다... ㅎ) 당시에도 공개방송을 향한 열망은 어마어마했다. 워낙 용기도 없고, 겁도 많은 나였던지라 한 번도 공개방송을 가본 적이 없다. 그저 TV 화면을 향해 사진기를 들이대는 정도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수들의 방송을 보며 동경해왔던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기획사에 취업을 하게 된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결국 지금의 그의 길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박봉이지만 동경하는 일을 했던 그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고 한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너무 좋았고, 회사에서 자기도 했다는 정도로 일에 흠뻑 빠져있는 직원들 보고 어느 대표가 예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책 속에는 연출 감독이 되기까지의 여정과 경험담들이 가득하다. 여러 번 설명했지만, 공연기획과 공연 연출의 개념이 다르다는 정도 밖에는 모르겠다. 기획은 좀 더 비즈니스에 가깝고, 연출은 무대의 전체를 책임지고 꾸미는 일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보통의 감독들이 조감독을 몇 년 거치면서 소위 입봉을 한다고 하는데, 저자는 유일한 기획사 출신의 감독이라고 한다. 대놓고 이러저러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보통의 길과 다른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2018년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독립 프로덕션을 차린 저자는 쉼 없이 달리다 소위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한다. 그의 일과를 보면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구나! 싶을 정도기도 하다. 코로나로 한참 쉬어가는 시간이 길긴 했지만, 연말이 되면 쏟아져 나오는 가수들의 콘서트를 연출 감독하는 사람들이 50여 명이라고 하니, 정말 4~5개 이상의 공연을 준비하려면 어쩔 수 없겠다 싶지만, 그럼에도 가수의 색에 맞는 다양한 연출을 고민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의 능력 이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통해 만난 저자는 성실한 사람 같았다. 인간관계의 우위를 다지기 위해 꼼수를 부리기 보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로 포장하기 보다, 자신이 피해를 보고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진실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황을 풀어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함께 공연을 했던 아티스트들을 비롯하여 기획사들도 그의 진심을 알아줬던 것 같다.

콘서트장이나 큰 공연장에서는 늘 포커스가 스타들을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적인 공연을 해내기 위해서는 저자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P.S 여담이라면,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초록 창의 쳐봤더니 지방의 만두가게의 이름이 먼저 등장했다.(정말 맛집인가 보다.) 언젠가는 만두가게를 앞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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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불멸의 역사 - 연금술사에서 사이보그까지, 인류는 어떻게 불멸에 도전하는가 한빛비즈 교양툰 19
브누아 시마 지음, 필리프 베르코비치 그림, 김모 옮김, 홍성욱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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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불멸의 역사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은 불사신을 꿈꾼다. 죽지 않고 더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꿈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불로초를 찾아다녔던 진나라 시황제 이야기는 동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 동로마 제국에도 기독교의 첫 번째 이단으로 불리는 그노시스파에서는 육체인 물질세계는 불완전하고, 정신세계는 완전하다는 이원론을 펼쳤다. 육체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죽음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육체의 쾌락을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태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성생활이 그들을 완전하게 해준다는 이론을 펼쳤다.(기원전 2세기인데... 대단히 놀랍다.) 그 이후 이원론은 연금술로 발전한다. 연금술은 증류기를 통해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물질을 분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16세기에 이미 인조인간을 만드는 방법이 기록된 문서를 발견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불멸의 시작은 이원론에서부터 크다. 불완전한 육체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은 여러 생각을 거듭했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만이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트랜스 휴머니즘이 시작되었다.

트랜스 휴머니즘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으려는 지적 운동

 

 

초기의 트랜스 휴머니즘은 자동기계를 발명하면서 인간도 그와 궤를 같이 한다고 봤다. 기계처럼 인간도 자동 태엽으로 움직이는 기계장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거치며,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트랜스 휴머니즘의 방향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가령 인간을 도울 있는 계산기와 같은 자동 기기들이 발전하는 반면, 인간을 개량화하여 우월한 유전자만을 골라 후대로 전승하고자 하는 우생학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우생학은 결국 제1.2차 대전과 나치즘에 영향을 미쳐 수많은 전쟁을 야기하고,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영향을 미친다.(출산 전 기형아 검사도 우생학의 한 갈래라고 한다.)

불멸의 역사 속에는 전쟁이 빠질 수 없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전쟁이 인류의 상당한 해를 입히긴 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불멸의 역사는 급속도로 성장한다. 그에는 장기이식과 인공지능, 뇌인지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의 발전이 포함된다.

서술된 방대한 내용들 자체가 쉽지 않았을 내용이었지만, 만화로 접근하니 한결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술자로 컴퓨터 공학의 토대를 마련한 앨런 튜링이 등장해서 역사를 되짚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책의 중반부가 지나면서 등장한 인공지능은 과연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우생학이 만연했던 당시에는 우생학이 인류의 큰 발전을 이룰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과 암이 선명히 드러났던 것처럼 인공지능과 불멸의 역사 역시 지금 당장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과학의 발전은 득만큼 실도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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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위한 변론 - 무자비하고 매력적이며 경이로운 식물 본성에 대한 탐구
맷 칸데이아스 지음, 조은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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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냉이와의 전쟁을 통해, 나는 이 작은 한 뼘의 땅에서 내가 취한 행동과

그것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결 짓게 되었다.

또한 식물이 내가 한 때 생각했듯 마냥 평화롭고 미미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식물이란 존재가 멋지게 느껴졌다.

생명이 있건 없건 내 손에 들어오면 하나같이 죽거나 고장 나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선물하는 식물뿐 아니라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지고 오는 화분조차 전전긍긍이다. 한편, 식물을 왜 이리 약할까? 조금만 관심을 덜 쏟으면 죽어버리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식물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금 의문이 생겼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물고기를 비롯한 생물에 관심이 컸고, 그를 전공 및 직업으로 택하고자 했는데 좋지 않은 기억 이후로 동물학에서 생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고 한다. 우연히 한 동기가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공석이 된 석회암 채석장에서 채굴회사가 환경법을 잘 지키는지 확인하는 일자리를 가지게 되면서 그의 삶의 큰 변화가 시작된다.

채석장에서의 일 중에는 복원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일은 채굴을 마친 후 그 지역의 환경을 꾸미는 것이다. 깊이가 얕은 경우 흙으로 메우고 잔디를 심거나 못을 만들기도 하고 서식지를 복원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 말이다. 저자가 만나게 된 복원 프로젝트에는 작은 부전나비(카너 블루)를 위한 서식지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저자는 이 일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바로 곤충과 식물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태계에 살아가는 상당수 곤충들의 경우 전문종이라고 한다. 전문종이란, 아무거나 먹는 게 아니라, 소수나 한종에 의지해 먹고 번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카너 블루 나비는 콩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루피너스라는 식물만을 섭취한다. 루피너스가 사라지면, 부전나비도 같이 멸종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곤충과 식물은 생존을 위한 공생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식물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은 그저 식물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크게 보자면 생태계 전체에 큰 위협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주제로 책 속에는 저자가 경험한 다양한 식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식물이 자신만의 능력으로 주변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어떨 때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보통 침입종이라고 불리는 외래종들에 의해 원래 그 땅에 살던 토종 생물들이 위협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식물 또한 그런 종이 있다니(마늘냉이 처럼 말이다), 상당히 흥미롭고 무섭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드는 생각 중 하나가 '왜 그동안 나는 식물이 수동적이고, 약하다고 생각했을까?'하는 것이었다. 동물처럼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이기에 당연히 약하고,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 내 선입견에 경종을 울리는 대단히 놀라운 식물들의 이야기에 한참을 얼이 빠져 있기도 했다. 오히려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기에, 식물은 더 지혜롭고, 더 날렵하고, 더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어떻게든 자신의 종자를 널리 퍼뜨려야 하는 식물이기에, 자신만의 강점을 어떤 식으로 발산하는지 책을 읽어보면 정말 충격적이기도 할 듯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자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동물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토막 내고 내장을 처리한 후 식품이나 진액을 만드는 정보만 있다면 어떨까? 아마 동물권 등을 내세워 부당함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식물의 경우는 어떨까? 저자는 동물만큼이나 식물도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리고 싶어 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니 식물에 대한 눈이 달라졌다. 식물은 결코 약하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 식물 나름의 삶 속에서 지혜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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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강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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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책과 프로그램을 비슷한 시기에 본 적이 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사람이 몰리는, 최고의 인기작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그 유명한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인 1시간 넘게 대기하면서 그림을 본다고 하는데, 막상 보기엔 그림이 작기도 하고, 멀기도 해서 핸드폰 줌으로 당겨서 보는 정도로 감상을 마친다고 한다.

우리 문화유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실제 본 적이 있는 유산도, 교과서를 통해 만난 적이 있는 유산들도 있다. 단편적인 지식이나 이미지는 가지고 있지만, 지극히 텍스트로 만난 유산들이 상당수 있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세밀하게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니! 몇 번을 훑어봤던 것 같다.

책 속에는 총 3개의 큰 주제 안에서 25개의 유산들을 만날 수 있는데, 첫 번째 주제는 유네스코에 등록이 되었거나, 준비 중인 유산들, 두 번째는 우리 문화 만의 오랜 역사를 닮고 있는 유산과 인물이, 세 번째 주제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고유한 유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가 모든 내용이 한국어와 영어로 이중병기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지만, 세계에 알릴만한 특별하고 가치 있는 문화기에 병기해서 기록한 것 같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자면 백제 금동 대향로와 신라의 유리그릇, 정문경이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초등학교 재학 시절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 수능이나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문화재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고, 늘 교과서를 통해 불교와 도교의 문화가 함께 담겨있다는 글로만 배웠던 기억이 있어서 전체적인 윤곽만 떠올릴 수 있었는데, 저자에 의해 세세한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갑고 놀라웠다. 그뿐만 아니라 그다음 페이지에 등장한 신라의 유리그릇은 솔직히 처음 접하는 문화재였다. 유리와 신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고, 유리는 과거가 아닌 현대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신라시대에도 무역을 통해 로마시대의 유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정문경. 이 책이 아니라면 사람의 이름일까? 싶을 정도로 낯선 이 문화재는 청동거울의 이름이다. 청동기 기대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그리고 지배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청동거울이 떠오른다. 근데 왜 정문경은 낯설까? 정문경의 다른 이름(다뉴세문경)을 들으니 얼핏 기억이 나긴 하는데, 청동거울로 배웠던 것 같다.

청동기는 철기보다도 정말 먼 옛날인데, 이렇게 기하학적인 무늬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문화유산하면 오래된 유적이나 보물이나 국보급 문화재만 떠올리게 마련인데,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한글, 김치, 온돌, 한지와 토종개(진돗개, 삽살개)들도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한 나라의 문화재로 오랜 시간을 버티며 지냈던 유형의 문화뿐 아니라, 후계자들에 의해 계승되는 무형의 문화 그리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살아 숨 쉬는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문화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하루아침에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문화일 텐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실한 우리의 문화에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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