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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폴리카르포 신부님 묵상, 무심의 다스림
김종필 지음, 김혜남 그림 / 포르체 / 2022년 11월
평점 :

두 손 가득히 정성 어린 선물을 받아듭니다.
그 순간부터 그 두 손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물도 그렇거늘 뇌물은 말해 무엇하리이까.
그런즉 무심(無心)의 다스림은 온몸의 몫이옵니다.
이 책은 성 왜관에 있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사제인 김종필 폴리카르포 신부의 묵상집이다. 천주교인이 아닌지라, 수도원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책을 읽다 보니 책 속에 녹아있는 자연 속의 삶이 낯설지 않았다. 간혹 수도원을 찾아 신부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저자를 보고 일꾼으로 생각하고 물어보는 경우이다. 자연 속에 살면서 맡겨진 일을 가리지 않고 하다 보니 그렇게 보였으리라. 자신이 신부라고 하면, 대부분은 신부님이 직접 일을 하냐고 놀란다고 한다. 시작부터 뭔가 틀에 박히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책 속에 종종 등장하는 무심(無心)이 무슨 뜻일까 싶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속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단어의 의미를 깨닫고 보니, 저자의 시가 피부에 와닿는다.
사제의 글과 묵상이 책으로 엮어있기에, 종교적 색채가 주위를 맴돈다. 자연만큼이나 신을 향한 갈구와 회개의 모습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속세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인간의 본성이 그리 호락호락 놔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무심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초용 고추를 심고, 찻잎을 따고, 땅을 고르고, 큰 돌을 들어낸다. 물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무언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의 시간이 아닌, 자연과 교감할 시간 말이다. 나무를 베고, 돈을 파내기 위해서는 자연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자연에서 오래 살다 보면 그렇게 될까? 그저 빨리빨리,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의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색하고 낯설다. 그럼에도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이해가 된다.
묵상집이라는 이름답게, 책 속에는 시도 상당히 눈에 띈다. 시가 어려운 나지만, 의외로 계속 곱씹게 되는 시가 여러 편 있었다. 무심의 다스림, 무심의 깨달음이라는 부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글들이 상당수 있었다. 뜻을 알고 나니, 책 속의 글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책의 삽화가의 이름이 낯이 익다 했는데, 여러 작품에서 만났던 김혜남 작가의 작품이었다. 정신과 의사로 그녀가 쓴 글들 중에 공감되고 위로가 되는 글이 많았는데, 몇 년 전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린 따뜻한 삽화들이 책을 더 빛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자연에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살면, 지금의 욕심과 걱정들이 조금은 덜어질까? 싶었는데, 그마저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하나를 더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