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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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대놓고 우신(어리석은 신)을 예찬한다는 이름이 쓰여서 반신반의했다. 대놓고 어리석은 신을 찬양한다니~이 무슨 황당한 상황일까? 싶어서다. 이 책의 저자 이름이 낯설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테지만, 저자가 쓴 서문에 등장하는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의 이름을 보고 반가웠다. 지식이 미천한 터라,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로테로다무스(에라스무스)가 인문학자이자 신학자라는 사실과 함께 상당한 지성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에 알아보지 못해서 민망스러웠다.

15~16세기 사람이니, 그 시기라면 중세이자 르네상스시대와 궤를 같이 한다. 아무리 르네상스시대가 열렸다 하더라도 신학자가 대놓고 "신"을 풍자하는 책을 썼다는 사실에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신예찬은 무슨 내용일까? 제목에 등장한 "우신"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배경지식을 살짝 얹고 나니 우신의 진정한 의미가 내심 궁금했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신의 이야기인 걸까, 아님 반어법 적인 표현인 걸까? 내가 이해하기로는 오히려 반어법 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신이라 하지만, 그리 어리석어 보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그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라틴어 원전 완역본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현대지성 클래식의 강점인 어마어마한 각주와 해제가 눈을 사로잡는다. 아마 각주가 없었다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지나갔을법한 내용들(우신이기에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수 등장한다.)이 상당하다. 초반에는 우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소위 스스로 자신의 훌륭함을 이야기한다. 요즘이야 자기 PR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시대지만(그럼에도 스스로 자랑하는 건 좀 재SU가 없어 보이긴 하다.), 무려 16세기에는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을까 싶다. 우신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극적이다. 자신의 부모와 유모, 친구의 이름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웃음이 튀어나온다. 꽤 적절한 이야기 같아 보이니 말이다. 가령 자신의 유모인 요정들은 만취와 무지이고, 시종들은 자아도취, 아부, 망각, 태만 등이다. 우신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니, 그들의 영향을 받았을 우신이 어리석은 신이라 보일만하다. 자신의 배경과 함께 인간사의 관계들(우정, 결혼, 이혼 등)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면 현자나, 지식층으로 일컬어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풍자가 등장한다. 역시나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겉멋에 보이기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종교지도자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상당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에라스무스도 한몫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소위 뼈 때리는 이야기가 상당히 등장하기에, 가볍게 웃고 넘기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우신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현실에서는 감히(?) 대적하고 공격할 수 없는 존재들을 향해 돌직구를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위치가 자리를 대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었을 500년 전 독자들은 사이다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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