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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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은 튀르키예라는 이름보다는 터키가 익숙하다. 아시아와 유럽의 관문이기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튀르키예 인지라 그들의 문화가 담겨있는 작품이 궁금했다. 주인공 페리의 삶의 궤적을 통해 튀르키예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접할 수 있었고, 우리의 역사와 다르지 않은 상처들에 숨을 죽이며 읽기도 했다.

날반트오울루 가족의 늦둥이 막내딸 페리는 선박기관사 출신 아빠인 멘수르와 엄마 셀마 그리고 두 명의 오빠(우무트, 하칸)와 함께 산다. 가족이라 하지만 이들은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을 뿐 전혀 다른 가치관과 종교를 가지고 있는 멘수르와 셀마. 셀마는 이슬람에 푹 빠져있다. 광신자로 분류될 정도로 종교에 상당한 집착을 보인다. 반대로 멘수르는 종교가 아닌 현실에 관심이 많다. 자연스레 큰아들인 우무트는 급진 마르크스주의자, 작은 아들 하칸은 민족주의자가 되어 가족은 편이 갈린다. 페리는 가족을 나누는 사상과 가치관에 가슴이 아플 뿐이다. 그러던 중 큰 오빠인 우무트가 경찰에 구속되어 엄청난 고문을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고문에 의한 가짜 증언으로 오빠는 8년 4개월 형에 처해진다.) 엄마는 우무트가 구속된 것이 남편 멘수르가 알라에 반역을 했기 때문에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아빠는 자녀들을 돌보지 않고 종교에만 빠져있던 엄마의 잘못으로 치부한다. 서로를 자신의 잣대에 맞추어서 재단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족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생긴다.

 

 

 

이야기는 현재(2016년)와 과거(1980년대, 2000년대)를 교차하며 진행된다. 딸 데니즈와 함께 거부의 파티에 초대받아 길을 나선 페리는 차 안에 둔 가방을 소매치기당하고, 가방을 찾아 나섰다 부랑자에게 봉변을 당한다. 어린 시절부터 페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 보이는 '안개에 싸인 아기'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페리는 자신의 지갑 한 편에 보관 중이던 옥스퍼드 대학시절 사진과 함께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제목에 등장하는 이브의 세 딸은 무슨 의미일지 내심 궁금했다. 처음에는 페리의 세 자녀를 말하나 싶었는데, 대학 시절 함께 했던 세 여인인 페리, 쉬린, 모나를 일컫는 말이었다. 옥스포드를 소개해 주는 역할로 처음 마주한 쉬린은 페리의 가정을 보고 그녀를 혼혈이라 이야기한다. 피부색 혼혈이 아닌 정체성의 혼혈(전통주의와 현대주의가 섞여있는)을 말하는 것이었다. 튀르키예의 역사나 과거는 잘 모른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페리는 튀르키예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한다. 우리의 과거와 결을 같이 하고 있어서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해 인간 답지 못한 행동들을 해 대는 모습은 읽는 내내 괴로웠다. 단지 생각, 이념의 차이 때문에 말이다.

 

 

 

이 책의 시선은 어린 시절과 현재, 옥스포드 재학 시절을 교차하며 페리의 성장과 변화에 초점을 둔다. 아버지가 왜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는지, 아주르 교수는 왜 대학에서 퇴출되었는지, 페리는 왜 대학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는지와 같은 작품 속 궁금증 이면에 종교와 신의 존재, 철학적 사고들이 책 속에 자연스레 흐르고 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색다른 맛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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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 진화생물학 권위자 장이권의 20가지 동물의 리더십 이야기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1
장이권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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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인간사회에만 존재할까? 인간만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팔로워를 거느리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다면 인간보다 더 한 지혜와 리더십으로 자신의 무리를 이끄는 완벽한 리더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코끼리는 나이 많은 암컷 코끼리가 무리를 이끈다. 가모장사회라 할 수 있다. 80세 가까이 사는 코끼리 사회의 리더는 60세가량 된 할머니 코끼리다. 코끼리 사회는 이 리더를 중심으로 이모, 딸, 손녀, 조카 등 혈연으로 얽힌 암컷 코끼리 무리를 이룬다. 왜 코끼리 무리의 리더는 나이가 많은 암컷 코끼리일까? 바로 연륜과 경험 때문이다. 같은 리더 중에서도 나이가 더 많은 코끼리가 리더인 무리가 번식력도 높고, 위험에서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한다. 가령 물을 찾아 나설 때 가모장 코끼리는 어렸을 때 기억으로 물이 있는 곳을 발견하기도 하고, 무리에게 위험을 가할 사자나 수컷 코끼리의 소리를 더 잘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축적된 경험이 위험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침팬지의 경우 힘이 센 수컷 침팬지가 무리를 리드한다. 힘이 세면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물론 힘이 세면 리더가 되기 유리하긴 하지만, 사회성 또한 리더의 중요 자질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특히 유인원의 경우 털 고르기를 하는데, 털 고르기는 털에 기생하는 각종 기생자들을 떼어내는 역할을 한다. 기생자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는 유인원 사회에서 털 고르기는 꼭 필요한 작업인데, 털 고르기를 통해 침팬지들은 서로 유대관계를 쌓는다. 원래의 리더인 알파 수컷보다 힘이 약한 베타 수컷은 싸움으로는 알파 수컷을 이길 수 없지만, 털 고르기를 통해 유대관계를 쌓은 여러 수컷들과 힘을 합해 알파 수컷을 물리치고, 자신이 리더가 되기도 한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사회성은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대부분의 동물 사회에서 리더는 번식능력을 독점하기도 한다. 팔로워에 비해 리더가 번식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을까? 왜 팔로워들이 생기는 것일까? 책 속에는 다양한 동물들의 리더십과 팔로워십이 등장한다. 리더를 잘못 고를 경우, 목숨이 위험하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리더를 따르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리더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있다. 또한 훗날 리더가 사라졌을 경우, 무리 안에 있다면 다음 리더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리더가 없는 무리도 등장한다. 카리부라 불리는 순록의 경우 특정한 리더가 없음에도 장거리 이동을 한다. 그들은 어떻게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까? 그들은 군중심리를 이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앞에 가는 카리부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누군가 어떤 곳으로 이끌지 않더라도, 앞에 선 무리를 따라 길을 간다. 물론 그중에는 풀이 많은 곳으로 이동해 본 경험이 있는 카리부가 있다. 이동해 본 카리부를 제거하면 무리의 이동은 쉽지 않아지니 말이다.

책 속에서 만난 동물의 리더십은 종에 따라 다양했다. 그들이 무리를 이끌고,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혹은 무리를 건강하게 이끌기 위해(후손을 보존하는 것을 포함) 사용하는 방법들은 흥미롭기도 했다. 리더는 불확실한 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들 역시 인간만큼이나 어려움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다양한 동물의 리더십을 통해 또 다른 리더십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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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소개서 - 45억 년을 살아온 행성의 뜨겁고 깊은 이야기 인싸이드 과학 4
니콜라 콜티스 외 지음, 도나티엔 마리 그림, 신용림 옮김 / 풀빛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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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는 자연재해 영화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 밑바탕의 감정이 가장 솔직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보통의 재난을 다룬 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황은 지진과 화산 폭발 그리고 그로 인한 쓰나미 상황이다. 과거에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을 다룬 영화가 많았지만, 서남아시아와 일본의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를 겪은 후 관련 내용을 다룬 영화들이 많아진 듯싶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구 속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좀 더 체계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얼마 전 새벽에 갑작스럽게 재해문자에 잠을 설친 적이 있다. 4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문자였다.(지진보다 재해 문자 때문에 더 놀랐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지만...) 과거 지진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었지만, 현재는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기에 과거에 비해 주의가 필요하다. 지진과 화산 폭발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과연 지구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대부분 문제가 되는 곳은 대륙판이 서로 부딪치는 지역들이다. 이웃나라이자, 과거 지진과 쓰나미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을 비롯하여 불의 고리라 불리는 지역 역시 수많은 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지역이 바로 대륙판이 서로 부딪치는 부분이다. 두 에너지 간의 충돌은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충돌로 인한 열에너지의 분출은 화산 폭발과 지진, 단층 등의 형태로 우리 눈에 보일 뿐이다. 이런 지진에 대한 감지 시스템이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밖에도 바닷속 해저세계와 인공위성 등을 통해 지구의 모습 측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구 내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우리 눈에 지구는 가만히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지금도 지구는 열심히 움직이고, 갈라지고, 뒤틀리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함께 어우러진 삽화는 딱딱할 수 있는 지구과학의 이야기를 한결 편안하게 접근해 주는 역할을 해줬다. 지구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재난 영화를 접할 때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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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장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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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지 않으면 가지런하고, 가지런한 것이 [다른] 말과 함께하면 가지런하지 못하고,

말은 가지런한 것과 함께해도 가지런하지 못하다.

윤리 교과서에서 이름만 들었던 장자. 그의 이름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노장사상과 무위자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또한 시험을 위한 단편적인 지식이었기에 이 책을 보고 기대가 되었다. 물론 이 책의 번역가인 김원중 교수의 논어를 읽고 흠뻑 빠진 후로 시리즈물로 나온 동양 철학서를 전부 구매했다.(여전히 표지 말고는 열어보지 못했으나...) 어렵지 않지만, 핵심을 꿰뚫는 번역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원중 교수가 번역한 장자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방대한 두께에 사실 좀 당혹스러웠다. 8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혔던 것과 함께 원문이 같이 실려있기에 실제 원문을 빼면 400페이지 가량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겁먹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장자를 비롯한 동양철학 하면 원문이 한자이기에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독자들을 위한 배려일까? 책의 시작은 해제다.(책 말미에 해제가 있는 경우는 자주 접했는데, 앞에 있으니 오히려 이해가 더 빠른 듯하다.) 역자는 해제를 통해 장자의 기본적인 소개(본명은 장주로,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출신인데,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한다.)와 함께 33편의 구성(내편, 외편, 잡편)과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이 담겨있다.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장자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혔던 이유는 예를 통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장자 속 이야기에는 동물도,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도, 실제 인물이나 익숙한 이름도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비의 꿈이라 불리는 호접몽(제2편 제물론 말미) 뿐 아니라 물고기와 메추라기, 낚시꾼, 백정 등도 등장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장자가 왜 무위자연이나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물 흐르듯) 삶을 원했고 그런 삶이 중요하다 여겼다. 이는 삶뿐 아니라 정치에도 적용된다. 그는 군주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에 우려를 표한다. 군주를 돕기 위해 벼슬길에 나서는 제자를 향해 호랑이를 다루듯 처신을 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잡편에 이르러서는 소위 대세였던 공자이 사상을 향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평한다. 인기나 권력에 집중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니 말이다. 혹자는 장자가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보기도 한다는데, 역자는 장자가 어려운 형편에 음식을 얻으러 다녔고 그의 책을 통해 가난한 백성들의 형편과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내용을 통해 그 역시 가난한 형편에서 삶을 꾸려갔다고 해석한다.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삶을 동경하고, 그런 삶을 통해 위로를 받았던 장자의 사상은 어찌 보면 현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쇼윈도의 삶을 동경하며 SNS에 있어 보이는 사진들로 도배를 하고, 명품 구매를 위해 허덕이는 빛 좋은 개살구의 삶을 본다면 장자는 어떤 말을 건넬까? 과연 그렇게 사는 삶이 행복한가? 장자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죽음과 삶도 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로움과 해로움의 말단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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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 - 제26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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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감정이 쌓였다. 어렵기도 했고, 주인공이 헷갈리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다. 자유를 찾아서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렵다. 자유가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당장 오늘 먹을 밥조차 없는 사람에게 자유가 중요한 가치일까? 각기 다른 이야기임에도, 왜 한 사람의 이야기같이 느껴지는지 당황스러웠다. 아마 내 안에 탈북인이라는 선입견과 경계를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결혼 전 아버지는 탈북인들이 등장하는 모 프로그램을 참 좋아하셨다. 대한민국에서도 남쪽이라고 일컫는 곳에 고향을 두고 있음에도 북한 이야기나 통일에 관심이 많으신지라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틀어놓으면 어깨너머로 나도 한두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북한을 탈출해서 대한민국까지 오기까지의 여정과 북한에서 살 때의 이야기가 많았다. 얼마나 많은 고생과 목숨의 위협을 겪었는지나 그곳에서 살 때의 이야기들은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들이 말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삶에 무척 만족하는 것 같이 보였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까지 오는 여정은 책 속에서도 참 긴박했다. 물론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는 북한에서의 실상이나 탈출기보다는 그 이후의 생활에 더 포커스가 맞춰있긴 하다. 같은 건물에 사는 노인을 죽였다는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장철진. 남한 생활이 녹록하지 않고,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 부모의 반대로 파혼당한 화은은 남한에 정착해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남자와 결혼한 선숙 언니를 찾아 강원도로 내려간다. 사실 화은이 파혼당한 이유는 탈북인이라는 것과 탈북인 여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일을 한다는 뉴스 보도 때문이었다. 화은이 있는 곳으로 도망 온 철진에게 화은은 자수를 권유한다. 그가 남한으로 온 후 몇 번의 사건에 휘말렸지만 그를 내치지 못한 것은 그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탈북 전 화은의 이름은 희숙이었다. 라오스를 통해 남한으로 입국하기 전, 그녀는 샛별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다. 브로커가 요구하는 돈을 마련하지 못한 그들 중 희숙이 몸을 내주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선숙 역시 희숙에게 그러기를 독촉했다. 그리고 희숙이 그 방에서 울고 있는 날, 고열에 시달리던 샛별은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딸의 죽음에 정신을 놓은 희숙을 엎고 달렸던 것도 철진이고, 라오스 땅에 샛별을 묻어준 것도 철진이다. 선숙이 아팠을 때 약을 구해 선숙을 살렸던 것도 철진이다. 하지만 선숙은 그런 기억을 아예 잊어버린 것인지, 철진에 대한 기억을 하나도 하지 못한다.

책 속에는 화자를 바꿔가며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큰 조명상을 하는 남자와 파혼했다는 이야기가 두 번째 장의 화은이 주인공이 되면서 전말이 드러난다. 샛별 아버지 이야기도, 왜 그와 짧은 결혼생활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이야기는 그다음 이야기에 등장한다.

목숨의 위협에도 탈북을 감행한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사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맴도는 이야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부각되는 그들의 과거, 살고자 애쓰지만 쉽지 않은 생활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남한에 정착해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린 선숙과 그 과거를 이따금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화은. 그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다른 것 같이 보이지만 둘 다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한 영상을 보고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탈북을 하다 상당수가 북송되거나 제3국에서 스러져가기도 한다. 겨우 한국에 들어온 이들 중 상당수는 탈북인의 굴레에 허덕이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자신의 삶보다 호위 호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을 향해 울분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책 속의 이야기가 구슬픈 것은 그들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도 우리도 다름이 없다는 사실. 인간의 존엄성을 뭉개며 살아온 그들의 여정에 대해 최소한의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가질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저 매도하고 색안경을 끼기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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